네팔에서 다시 만난 미누
18년간 한국에서 살다가 졸지에 강제 추방당한 미누 씨를 네팔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걸었던 길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118호] 2009년 12월 21일 (월) 10:05:58 네팔·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미노드 목탄 씨(한국명 미누·38세)를 만난 것은 12월 초순 네팔 중부 굴미 지역 탐가스라는 도시의 조그만 레스토랑에서였다. 이주 노동자인 그는 18년간 한국에서 살다 하루아침에 강제 추방되었다. 이날 미누 씨는 검정 점퍼 차림이었다. 서울에서 강제 추방되기 전 다행히 친구들이 보호소로 옷가지 등을 가져다줘 그나마 한국 옷을 입고 서울을 떠나왔다고 한다. 안 그랬으면 정말 슬리퍼 바람으로 네팔에 도착할 뻔했다.

네팔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으나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맑아 저 멀리 안나푸르나가 시원하게 보였다. 그는 “한국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갑다. 마치 가족 같다”라며 인사했다. 한국에서 추방되어 낙담하고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미누 씨는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유창한 한국말 솜씨나 얼굴 생김새는 흡사 한국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는 “이제는 오히려 네팔 말이 서툴다. 친누나가 카트만두에 사는데 내게 네팔 말을 더듬는다고 놀린다”라며 멋쩍어했다.

   
ⓒ정정호
미누 씨는 안나푸르나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에서 “네팔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운동을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콘서트 준비 중 갑자기 추방당해”


그는 한국 음식과 한국 친구들을 많이 그리워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단다. “강제 출국된 지난 11월23일은 강산에 콘서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가 열린 날이었다. 우리 밴드가 그날 출연하기로 해 친구들은 모두 거기에 가 있었다. 출입국관리소(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직원이 보호소 상담실로 부르기에 그냥 의례적인 상담이라고 생각했다. 난데없이 ‘빨리 한국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어디 연락도 못하고 상담실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급하게 출발 준비를 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동안에도 내가 언제 어디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지조차 몰랐다. 공항 도착 후에야 타이를 경유해 네팔로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출입국관리소 직원 3명과 같이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비로소 한국을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그는 타이 공항에서 10여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정부에서 급히 추방하느라 직항 티켓을 구하지 못한 듯했다.

미누 씨는 비행기 안에서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 친구들이 나중에 내가 떠난 사실을 들으면 얼마나 놀랄까 하는 생각에 더 마음 아팠다고 한다. 그날을 회상하는 미누 씨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미누 씨는 네팔 공항에 내릴 때 네팔이 낯설어 보였다고 한다. 수중에 한푼도 없어 한국 친구에게 연락해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카트만두에서 한국산 물건을 사서 가족에게 서울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가족에게 불법 체류자로 잡혀서 쫓겨났다는 말을 하기 싫었다. “나중에는 결국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18년간 헛되이 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아버지 표정이 내내 어두웠다. 그래서 포카라에 있는 아버지 집에 오래 있지 못했다.”

   
ⓒ정정호
미누 씨(오른쪽)는 김영미 편집위원(왼쪽)에게 “한국인을 보니 반갑다. 마치 가족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여자친구 있었지만 결혼 포기


미누 씨는 사전적 의미에서 불법 체류자가 맞다. 하지만 18년간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이주 노동자 문화운동을 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10여 년 전 한국으로 온 이주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폭력과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 때리지 마라! 욕하지 마라! 우리도 인간이다”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주노동자운동협의회를 조직해 이주 노동자 인권을 찾기 위해 싸웠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첫 계기였다. “방송에도 나오고 격려도 받았다. 뜻을 함께하는 한국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자랑스럽다.”

미누 씨는 이 캠페인을 계기로 이주 노동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그전까지 이주 노동자라고 하면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다. 미누 씨는 인디밴드를 조직하면서 노래를 통해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미누 씨는 이주 노동자의 생소한 문화와 한국 사회의 문화 사이에서 다리 구실을 했다. 그는 5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민을 위한 위성방송 MWTV에서 일해왔고 재작년부터 2년간 대표를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한국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나는 국적을 얻기 위해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었다. 결국 결혼을 포기했다.”

이런 미누 씨는 18년 만에 갑자기 강제 추방된 진짜 이유를 무엇이라고 알고 있을까? “불법 체류자 주제에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그들에게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미누 씨는 어느 사회든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삶의 질이 높아져야 그 사회 질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불법 체류자도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다문화를 외치면서 다문화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선진국을 외치며 다문화를 보호한다고 하면서 정작 한국에 있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은 배려하지 않는다.”

미누 씨는 그가 한국에서 18년간 한국 사회에서 한 일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주었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14년 이상 그 나라에 체류하면 영주권을 준다. 미누 씨는 강제 출국 직전에 강제퇴거 명령 이의 신청을 했다. 그러나 평가를 받기도 전에 추방이 됐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미누 씨가 한국에서 사회활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며 공로상을 보냈다.

미누 씨는 네팔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운동을 할 계획이다. “아마 하늘이 나를 네팔로 보낸 이유는 여기서 인권활동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도 이주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문화활동을 찾아보고 있다”라며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주 노동자를 위한 미디어 조직을 꾸려볼 계획이다. 그는 언젠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너는 자존심도 없니? 너를 쫓아낸 나라로 돌아가고 싶냐?고 했지만 한국은 내 삶의 터전이고 18년간 살아온 내 동네다. 내가 걸었던 길과 친구들이 한국에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즐겁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