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난 인종차별, 백인 닮고 싶은 한국인들
인식하기 어려운 '비백인 제3세계 국가'에서의 인종차별
10.03.20 16:13 ㅣ최종 업데이트 10.03.20 16:14 보노짓 후세인 (news)
21일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보노짓 후세인 전 성공회대 교수가 인도에서 기고를 보내왔다. 후세인 교수는 지난 2009년 버스 안에서 한국인 승객으로부터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 이를 모욕행위로 기소했다. <편집자말>

서구화와 함께, 우리는 또한 국가 경계들을 가로지는 이주가 여러 층위에서 증가하고 있음을 목도해 왔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인종적이고 종족적인 증오를 선동하는 행위들이 또한 극적으로 증가해 왔다. 아시아의 미디어들은 대개 서구 국가들에서 인종적으로 학대당하는 아시아인들에 대해 보도한다.

 

가장 최근의 극적인 사건은 지난 1년 동안 호주에서 인도 학생들에게 가해진 끔찍한 인종주의적 폭력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이주자들에게 가해지는 인종주의적 차별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도에 있는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에 대해서건 한국이나 일본처럼 발달된 아시아 경제 내에서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건, 우리는 손쉽게 이것을 한켠으로 밀어놓거나 기껏해야 알기에는 껄끄러운 것으로 여긴다.

 

인도와 한국 같은 사회는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다. 최근 나는 뉴델리에서 공부하는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이 그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들에 대해 응한 일련의 인터뷰에 함께 했다. 그 학생들이 "Kala Bandar"(검은 원숭이)라는 고함을 듣고, 끊임없이 경멸당하고 조소를 받고, 식당에서 주는 우유와 같은 평범한 것들을 거절당하고, 집 임대를 거부당하고, 전철에서 자신들 옆에 앉는 것을 거부한 인도인 여행객들에 의해 열등하다고 느끼게 되고, 잠재적 범인으로 취급당해 경찰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는 등의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이 직면하는 인종차별의 전체적인 배치는 실제적인 폭력부터 계속되는 인종주의적 언사, 응시, 비웃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런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 대부분은 흑인이 다수인 국가에서 비백인 제3세계 국가로 왔기 때문에 인종과 인종적 정치학의 틀을 가지고 인도에 오지 않았다가 그들이 인도에서 맞닥뜨린 차별적인 대우에 놀라게 되었을 뿐이다.

 

3년 전 내가 한국에 갔을 때 나 또한 내가 인종주의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 또한 비백인 제3세계 국가에서 비록 경제적으로 발전되었다 할지라도 또 다른 비백인 아시아 국가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자들(그들 대부분은 공장 노동에 종사한다)은 열등한 존재로 경멸당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그들은 작업장에서 학대당하고, 끊임없이 "검둥이 자식", "아랍", "냄새 나" 등등의 고함소리를 듣는다. 동/남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은 옷차림새가 엘리트 상층계급의 지구적 기술인재라는 명확한 이미지를 유발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끊임없이 대중교통이나 다른 밀폐된 공공장소에서 생리학적 폭력을 겪게 된다. 그들이 대중교통에 타면 대부분 적대적인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때때로 폭력적인 응답이 돌아올 수도 있는데, 일례로 나는 버스가 부천시 종착지에 도착했는데 잠이 들어있었다는 이유로 버스 기사에게 걷어차인 적이 있다.

 

침묵을 용기있게 깨뜨리려 하는 모든 운동에 주저하지 않아야

 

흥미롭게도 도시에 사는 교육받은 자유주의적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러한 태도와 실천들이 인종주의를 구성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꺼려한다. 인도에서는 논쟁이 아프리카인들이 인도에서 대우받는 방식은 인종주의가 아니라 많은 수의 인도인들이 자신들과 다른 배경 출신의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잘 모르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아마 아프리카와 무역, 문화적 연계가 더 많아지면 인도인들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비슷하게 한국의 많은 사람들과 미디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맞닥뜨리는 차별을 한국의 역사적 동질성과 타 문화와의 비친숙성에서 기인하는 지방적이고 개별적인 태도의 문제로 설명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인종주의는 본질적으로 서구의 것이고 '우리' 비백인들에 대해 백인들이 가하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차별적인 실천이라는 대중적인 인식의 징후이다.

 

여기서 유럽의 식민지 프로젝트가 백인들은 가장 우월한 인종이고 흑인들은 인간 위계의 바닥에 있다는 것을 확립한 이른바 인종적 과학이라는 것의 전체 장치를 만들어낸 역사적 과정들을 폭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는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인종화된 위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새겨진 인종적 세계관이다.

 

우리 사회에서 백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폭넓은 신체적 감각에서 뿐만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는 권력까지)은 최고의 것이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있는 화장품이 미백 크림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또한 놀라우리만치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백인 서구인들과 보다 더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쌍꺼풀 수술과 코 성형수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 않다. 따라서 "백인"과 보다 더 비슷해지려는 것은 특정한 신체적 특징을 획득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구적 위계에서 특권을 가진 사회적 위치를 점하려는 것이다. 또한 뉴델리나 서울의 길거리에서 백인 서구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흠모를 알아채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흠모는 때로 신체적 위협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많은 백인 서구인들이 이에 대해 불평하고 이를 전도된 인종주의로 간주한다.

 

다른 한편,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이주자들은 그들의 실제의 혹은 상상된 신체적 특정에 더 어두운 피부, 냄새 등과 같은 부정적인 함축이 부여됨으로써 '자연적인 타자'로 재현된다. "열등한" 이주자들은 또한 강력한 섹슈얼리티, 무지, 범죄행위에 대한 자연적 경향 등을 가진 하나의 집합으로 재현되면서 구분된다. 이러한 재현들은 대개 "열등"하다고 인지된 이주자와의 일상적인 마주침을 통해 구성된 고정관념과 이미지, 속성, 설명들의 그리 일관되지 않은 조합을 통해 재생산되고, Kala Bandar(인도에서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의 경우에 사용된 '검은 원숭이'), 깜둥이(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에 사용된 '흑인')와 같은 대중적인 담론적 용어들에 의해 다시금 강화된다.

 

오는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은 일반적으로 말해 아시아 사회가, 그리고 특별히 시민사회그룹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인종주의를 면밀히 파헤치고, 심문하고, 인식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 날은 또한 인간 조건들의 지위를 낮추고 떨어뜨리는 이 모든 조건들에 대항하여 단단한 기반을 다질 기회로 여겨져야 한다. 이 조건들은 인간이 창조적인 작업을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대부분 부정의와 불평등, 차별의 경험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 인종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착취와 불평등, 부정의를 둘러싼 침묵을 용기있게 깨뜨리려 하는 모든 개인들과 행동계획들, 운동들에 동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