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한국어 학원비만 월급의 2~3배"
기사입력 2009-05-10 12:03




【자카르타=뉴시스】

지난 9일 오전 8시(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판카실라 대학. 수십여대의 오토바이가 속속 캠퍼스로 몰려든다. 대형버스 20여대도 잇따라 들어와 20,30대 인도네시아인들을 쏟아낸다. 모두 5회 인도네시아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다.

이날 판카실라 대학에서는 한 교실에 40명씩 모두 30개의 교실에서 시험이 치러졌다. 시험은 11시30분부터(현지시각) 듣기와 읽기 각 25문항씩 70분으로 진행됐다. 2년 만에 치러한 한국어시험에는 9일부터 이틀 간 4만1756명이 응시했다.

서부 자바 반동지역에서 온 삐안씨(27)는 4살 짜리 딸과 임신 중인 아내를 인도네시아에 남겨놓고 한국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

그는 "정리해고가 점점 늘고, 회사들은 근로자를 직접고용하기보다 아웃소싱(하청)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며 "기계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한 달에 150만 루피아(18만원)를 받고 있지만 하루하루 버티는 수준이다. 장래를 위해서는 현재 수입으로 힘들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집을 사고, 개인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일하는 아유씨(24·여)는 한 달에 250만 루피아를 받을 정도로 인도네시아에서는 비교적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그는 "주변에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며 "한국 다녀온 사람들이 지적으로 많이 성장해 있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경험과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우선 비용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들은 고용허가제에 따라 한국어 능력시험에 반드시 거쳐야 한다. 국내 송출은 구직 신청, 국내 기업과 근로계약 체결, 비자발급, 사전교육 등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현재 2만2000여명의 인도네시아 근로자가 국내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자카르타 땅그랑 지역에서 온 데비따씨(22·여)에 따르면 두 달간 한국어 시험을 준비하면서 300만 루피아(35만원)가 들었다. 인도네시아 통상임금 수준이 105만 루피아(12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어학원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빚을 내거나 가족들이 돈을 모아야 할 정도로 비용이 비싼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일단 한국에서 취업하기만 빚을 갚고, 저축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때문에 한국행을 희망하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해 말부터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근로계약이 취소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한국은 올해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를 지난 해의 1/3이 규모로 대폭 줄였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우만선 고용지원팀장은 "국내 기업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비자를 발급받아 교육 중인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이 취소 통보를 받는 사례가 10월 이후 급증하고 있다"며 "빚을 내어 한국어 학원을 등록하는 등 비용을 마련했다가 힘들어하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 한국어 학원에 등록해 한국어 공부를 하는 것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바뀌면서 민간기관이 개입할 여지는 줄었지만 여전히 "한국어시험에서 송출까지 책임져주겠다"고 수천만 루피아를 받아챙기는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카르타에서 한국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진려 원장은 "인도네시아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한국어 학원은 30여곳에 불과하고, 수백여곳이 비공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을 다녀온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이 동네에서 그룹을 만들어 한국어시험에서 송출까지 모두 다 해결해주겠다면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부 자바인 마자랭가 지역에서 온 이완(30)씨는 "주변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며 "수천만 루피아를 들여 시험이며 자격증까지 다 따주겠다고 사기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업인력공단은 한국어능력시험 접수기간 중 고용허가제 사업 설명회를 갖는 등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제대로 된 한국어시험을 가르치기 위해 인도네시아 송출보호청과 한국어 강사를 양성해 교육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송출보호청 와얀 만디 송출국장은 "폐업하는 기업이 늘고, 특히 제조업 분야의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한국이 경제위기에서 먼저 벗어나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을 많이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국현기자 lgh@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