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앞 이주노동자에게 “그냥 가라, 가” [2009.05.22 제761호]

[초점] 단속 과정 인권침해 여지 키우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추진 중, 외국인 지문 날인도 부활할 듯



▣ 임인택  


        



당국의 강제 단속 중 숨지거나 동영상이 폭력적인 단속 장면을 포착하지 못하는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또는 불법 체류자는 이 땅의 뉴스 대상이 아니다. 지난 4월8일 대전에서 단기비자로 불법 취업한 중국인 여성 2명이 단속됐다. 이 모습이 지역 일간지 영상카메라에 잡혔다. 출입국 공무원은 여성들에게 욕을 했고, 단속 승합차에 태운 뒤 목울대를 손아귀로 가격하고 있었다. 대전출입국관리소 쪽은 “제압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할 순 있다. 하지만 차량 안에서는 수갑을 채운 상태이기 때문에 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화면 속 여성은 울며 양복 입은 단속 직원의 손을 붙잡고 허리를 숙이며 때리지 말아달라 애원했다. 수갑은 없었다. 대놓고 거짓말이다. 이처럼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야, 사회는 겨우 공분을 일으킨다. 물론 그래도 정부의 사과는 없다.
  

» 정부의 강제 단속 중 부상을 입은 재중동포 노동자 심지휘씨가 수원의 한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5월14일 현재 치료비가 2천만원에 이른다. 병원비가 계속 늘어나자 자살까지 시도하려 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지난 4월20일 재중동포 출신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심지휘(39)씨는 단속에 쫓기다 6~7m 옹벽 아래로 떨어져 머리가 깨지고, 오른쪽 팔다리에 골절을 입었다. 안면이 붉게 물든 채 일어나지 못했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 친구 집에 가는 길이었다. 다세대주택이 통째로 단속되면서 친구 5명이 붙잡혀갔다. 심씨는 도망친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옹벽 아래 빈터로 뛰어내린다. 출입국관리 공무원 2명 가운데 1명이 다가왔다. 몰골을 보고선 단속을 관둔 채 “그냥 가라, 가” 말한 것을 심씨는 기억한다. 고약한 ‘관용’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이 위험했다”는 병원에서 그의 치료비는 현재 2천만원이 되었다. 뉴스는 되지 않았으므로 아는 이가 드물다.



4년 전 인권위 개정 권고와 거꾸로







출입국관리법이 오는 6월 개정될 예정이다. 법무부가 지난 4월 입법예고한 개정안이 6월 국회에서 통과될 공산이 크다. 국가인권위는 2005년 6월 불법 체류자 강제 단속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며 법무부 장관에게 관련법 개정을 권고했다. “단속 및 연행의 권한과 요건,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특히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형사사법 절차에 준하는 수준의 실질적 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정확히 4년 만이다. 법무부는 그간 불법 시비가 일었던 단속 관행에 제동을 걸기보다 오히려 인권침해 여지를 키울 개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무관심한 세상을 틈탄 새하얀 거짓말도, 무분별한 당국의 몹쓸 관용도 그만큼 쉬워진다.
무엇보다 외국인은 입국과 외국인 등록 때 지문날인을 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관리 정책이 무원칙한 행정편의주의에 기대고 있음을 정부가 자인한 꼴이다. 외국인 지문날인 제도는, 정부 스스로 2004년 폐지했던 것이다. “잠정적 범죄인으로 취급하면서 발생할 수많은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경계했던 시민사회·학계의 목소리는 5년 만에 짓밟힌다. ‘지문날인’은 그 사회 인권지수의 깃대종이다.

현행법에 없던 불심검문 관련 조항도 생겨난다. 단속공무원은 불법 체류 의심자를 무조건 정지시켜 신분증을 요구하고 질문을 할 수 있다. 마구잡이식 단속의 ‘시작’인 불심검문이 비로소 합법화된다. 반면 이후 단계를 통제할 규정이나 단속 대상자의 권리를 적시한 규정은 현행법이 그렇듯 개정안에도 빠져있다. 불심검문에 이은 임의동행 강제라는 불법 단속 관행이 더욱 고착되고 악화될 것이란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 지난 4월8일, 불법 취업한 중국인 여성이 단속 승합차에 끌려가 출입국관리소 공무원으로부터 목울대를 가격당하고 있다. 이 모습이 지역 일간지 영상카메라에 잡혔다. 중도일보

  



현행법에서는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으로 의심될 경우, 보호명령서·긴급보호서 제시없이 사실상 임의동행을 강제해왔다. 늘 불법 논란이 뒤따랐다. 지난해 그런 단속 관행을 위법으로 판시한 판결도 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 신청자가 낸 소송에서 “출입국관리 공무원들이 보호명령서·긴급보호서 제시 없이 임의동행을 요구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지만, 임의동행을 거부하는 자에게 그와 같은 물리력을 행사할 근거나 권한은 없기에 적법한 공무 집행이라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법원의 이런 지적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단속공무원이 강제퇴거 의심자를 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재량을 허용한 것도 현행법 그대로다. 결과적으로 불법 관행을 ‘키워온’ 단속공무원의 권리만 키운 것이다.

대전에서 단속된 중국인 여성은 안간힘을 쓰며 ‘임의동행’을 거부했으나 차량 안에서 폭행까지 당했다. 상의가 거의 벗겨지듯 끌려갔다. 개정안은 이 여성이 동행을 거부할 권리를 담지 않았다.

당초 법무부가 추진했던 개정안은 영장 없는 가택 및 공장 출입조사까지 합법화하려던 것이었다. 지난해 입법예고를 추진했다 사라졌다. 하지만 이런 조차는 이미 관행화돼 있다. 지난해 11월 경기 마석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 280여 명은 가택과 공장에 진입해 토끼몰이를 하듯 단속을 펼쳐 논란이 일었다. 이정원 이주노조 교육선전차장은 “단속이 되풀이돼도 체류자가 크게 줄었다는 흔적이 없고, 한국 또한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게 현실인 만큼 단속 위주의 접근을 체류 자격 부여라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체류 자격 부여 등 접근 방식 변화 필요”


단속 위주의 방식이 양산하는 부작용은 고스란히 사회의 짐이 된다. 이미 불법 체류자들을 상대로 석방 등을 돕는 법무 브로커가 생겼다. 불법 체류자들에게 가짜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판매하는, 그들만을 위한 신종 범죄도 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공장이 밀집한 수도권 등지에서 지역 단위로 단속이 이뤄지자, 지방으로 흩어지거나 낮엔 숙소에 머물다 밤에 일을 하는 형태로 변화해왔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출입국관리법 개정의 핵심은 인권 지향적이냐 아니냐인데, 굳이 강압적인 단속 절차로 인권 원칙을 위배하면서까지 개정안을 추진하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5월5일 “대한민국이 아시아 지역의 인권 선도국”이라고 말했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시민포럼(WFC) 개막식 기조연설이었다. “외국인 노동자 이주와 국제결혼 증가 등으로 많이 늘어난 국내 체류 외국인이 아무런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수원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인 심씨는 중국에서 1천만원을 들여 3년 전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제 그는 고향에 있는 부인에게서 치료비를 받아야 할 판이다. 그 부담에 입원실에서 뛰어내리려다 겨우 제지됐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 친구 집을 찾아가기 하루 전으로, 3년 전 브로커에게 거액을 건네주며 한국행을 결정하기 전으로. 하지만 거꾸로 가는 것은 한국 정부의 인권시계뿐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