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시행 5년, 이주노동자 절망은 더 커져
일부 악랄 사업주 허위신고, 미등록자로 전락
김용욱 기자 batblue@jinbo.net / 2009년08월12일 12시08분

고용허가제 시행이 오는 17일로 5년을 맞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의 절망과 한숨소리는 줄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은 11일 오전 세종로 정부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에게 직장 이동의 자유와 동등한 노동권 보장 △이주노동자를 일회용 부품 취급하는 고용허가제 전면 전환 △이주노동자 임금 삭감하는 숙식비 공제 중단 △이주노동자 인간사냥 단속 중단 △ 미등록 이주노동자 통보의무 조항 폐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던 고용허가제는 지난 5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더 옭죄는 역할을 해왔다”면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대폭 제한해 사업주들의 권한만 보호하는 위선적인 제도임을 지난 5년간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이 3회로 제한되고 이동시 사업주 승인을 요구해 사업주들이 악용하기 쉽다. 이런 제도의 문제점 때문에 공동행동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할 수 있는 무한 권한을 가짐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었다”면서 “일부 악랄한 사업주들은 직장 변경 승인 요구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훼방하기 위해 허위로 이탈 신고를 해 이주노동자들을 미등록 신분으로 내모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밝혔다.


또 구직기간을 2개월로 제한해 체류자격을 상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전락하는 것도 문제다. 공동행동은 “노동부가 ‘구인 수요가 구직자보다 많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지난 2008년 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구직기간 제한 때문에 체류 자격을 상실한 이주노동자가 2,448명이 이른다”며 “정부의 입장은 이들 개인이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어 취업에 실패한 것이니 한국에 체류할 자격이 없다는 자본의 비인간적 논리”라고 비난했다.

공동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용허가제로 고통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공개하기도 했다.


필피핀 이주노동자 A(28, 남)씨는 경기도 군포시 소재 0정밀에 다니다 상습적인 임금체불 때문에 직장이동을 선택했지만 2개월의 구직기간이 만료되어 어쩔수 없이 다시 0정밀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시 2개월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고용지원센터는 A씨에게 이미 이전에 두 번 직장이동을 한 것 때문에 이 업체를 나오면 출국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A씨는 비자유지를 위해 임금체불을 감수해야 할지 업체를 나와 미등록으로 일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B(35, 남)씨는 3번째 직장 변경한 업체에서 해고돼 강제출국 당할 입장에 놓였다. B씨는 2007년 5월에 입국해 2009년 4월께 3번째로 직장이동을 한 0정밀에서 계약체결 후 일하다 일이 서툴고 임금체불 문제 등으로 회사와 다퉜다. 이 일이 있은 후 업체는 B씨에게 일방적인 해고 통지를 했다. B씨는 임금체불 문제로 노동부 진정한 상태지만 문제해결 때까지 출입국에 G-1비자로 변경했고 임금 수령 후 비자만료로 출국을 생각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온 C씨(여, 33세)는 매달 급여에서 고용보험료를 납부 했지만 해고후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C씨는 2008년 6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일하다 최저임금 문제로 다투다 해고당했다. 해고를 당하자 C씨는 지역고용지원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했지만 미가입자로 분류된 사실을 알았다. 매달 고용보험료를 공제했다고 문제제기를 하자 '이주노동자는 임의가입자로 최초 고용보험 가입 시 별도로 신청서를 작성했어야 한다'는 말만 들었다. 고용지원센터는 소급적용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업주의 무단이탈 신고로 체류 자격을 박탈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인천시 서구 가좌동에 위치한 휴대폰 부품 제조업체에 근무하던 필리핀 여성노동자 D씨와 E씨는 회사에서 부품 검사 작업을 2년간 했다. 경기가 안 좋아지자 회사에서는 인원을 감축하고 D씨와 E씨에게 그동안 했던 ‘검사’작업에서 여성이 하기 힘든 ‘탈수’작업으로 업무배치를 조정했다. 그러나 ‘탈수’작업으로 인해 일이 힘들었던 D씨와 E씨는 2009년 6월 중순께 회사에 사업장변경을 요청했다. 사업주가 6월말에 사업장을 변경해준다고 하자 두 여성노동자는 사업주의 이야기를 믿고 6월 30일에 ‘고용변동확인서’를 사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여러 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사업주가 회사에 자주 출근하지 않아 사업주를 만나기 어려웠고, 회사직원들은 사업주에게 그런 말을 들은 바가 없다며 계속 일을 하라고 종용했다. B씨와 E씨는 사업주의 말을 신뢰하여 7월 1일부터 일을 나가지 않고 사업장을 변경해주기를 기다렸지만 사측에서는 무단결근을 했다는 이유로 고용지원센터에 일방적으로 이탈신고를 했다. 결국 두 여성노동자는 미등록자로 전락하게 됐다.


공동행동은 “이주노동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인종, 피부색, 지위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보편적인 평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 정책의 과감한 전환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