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_

 

3월 8일 여성 노동자대회와 펭귄워크에 함께 합시다!

 

 

만약 우리가 남성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면,

산전산후 휴가를 받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면,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성(Sexuality)과 수태를 조정할 권리가 있다면,

그것 모두는 바로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0년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3.8 여성의 날 기념대회 연설 중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루저스 광장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행렬이 광장에 이르고 무장한 군인, 경찰들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그녀들이 외치는 구호 소리는 더욱 크고 높아졌다.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자본주의의 발달과 동시적으로 발생한 경제공황 속에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하며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것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정작 인간이자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다. 3월 8일 시작된 여성들의 저항은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미국 섬유노동운동과 여성 참정권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로 정했다. 세계 여성의 날은 20세기 산업국가에서 열악한 노동현실에 분노한 여성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했던 것을 기억하고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도모하고자 여성운동진영이 의식적으로 노력한 성과였다.

 

 

 

그리고 2012년 3월 8일 서울역 광장

 

104년이나 지난 지금은 어떨까? 2009년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이 남학생을 넘어섰고, 여성 정치인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르는 시대지만, 일하는 평범한 여성들의 삶은 그다지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이 비정규직 여성인 청소노동자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최저 임금이 아니라 먹고 살만한 임금을 보장하라’며 집단교섭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는 상사의 성희롱을 문제제기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해고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대리인, 노조, 여성단체들이 연대해서 1년 넘게 투쟁하고 여성가족부 앞에서 197일간의 농성 투쟁을 진행한 끝에 가해자를 처벌하고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싸움은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104주년을 맞는 올해 3월 8일 여성의 날에는 서울역 앞 광장에서 여성노동자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 곳에 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간병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생활임금 쟁취, 성희롱 금지법 제정, 비정규직 철폐 등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요구할 것이다. 대회가 끝난 후 이어지는 가두행진에서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펭귄워크’를 준비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한 경찰관이 “여성들이 성폭력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매춘부(슬럿·Slut)처럼 옷을 입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여성들이 야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행진했던 ‘슬럿워크’를 본 따서 진행하는 것이다. 펭귄은 새끼 양육을 암컷과 수컷이 동등하게 분담하는 동물인데, 이런 펭귄을 상징물로 삼아 ‘펭귄워크’를 하면서 여성에게 재생산 노동을 전가하거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3.8 여성노동자 대회와 펭귄워크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여성의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힘차게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다.

 

 

 

* 선거를 빌미로 여성을 이용하지 말라

 

총대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복지정당을 자임하며 각종 복지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이 중에는 여성들의 표를 얻기 위한 다양한 보육정책, 일자리정책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제시되는 것들이 오히려 여성들의 일자리를 더욱 불안정하게, 더 저렴하게 만들고 있다면 ?

경제위기 시대에 보육/간병/요양/활동보조 같은 사회서비스 영역은 국가의 복지로 담보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희생, 특히 여성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보육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하고는 예산 확충이 충분히 되지 않자 곧 바로 보육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면서 그녀들의 희생을 강요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정부가 작년부터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일·가사 양립 정책(유연근무제)도 문제가 많다, 정부는 일·가사 양립 정책을 통해 여성의 업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출산과 육아 등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가족 내 돌봄노동이나 재생산노동을 여성이 혼자서 전담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대해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이를 여성의 역할로 더욱 강조하고 떠넘기고 있다. 그 대가로 여성 직무들을 파트타임의 유연한 일자리로 만들어 주겠다고 선심 쓰듯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는 여성 일자리의 저임금과 불안정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보육비를 지원해주겠다며 여성 보육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복지정책이나, 여성들이 더 완벽하게 가사노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정책은 ‘여성을 위한 대안’이 아니다. 여성 공약이라고 하는 것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는 440만 명의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바꿔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사탕발림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할 것이다. 선거 시기 여성의 환심을 사려는 정책들을 정확히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런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 성폭력문제 해결 촉구한다

 

작년 유난히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부터, 고려대학교 성폭력 사건, 그리고 올해 초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까지. 학교, 직장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성폭력은 여성들에게 일상적인 폭력이 되고 있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 범죄 양형기준을 높이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계속해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성폭력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 해결을 원한다. 성폭력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 여성을 대상화, 상품화 하는 사회적 구조 등 다양한 원인 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계속해서 발생시키고 조장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반대하고 고쳐가야 할 것이다. 성폭력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사회를 만들자.

 

 

 

* 여성노동자 투쟁을 지지한다

 

비정규직, 불안정노동 문제는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지만, 특히 여성들의 경우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비율이 더 높다. 여성 10명 중 6명은 비정규직이고, 여성의 임금은 남성에 비해 40% 정도가 낮다. 그리고 경제위기가 있을 때 여성들은 당연하다는 듯 해고 1순위가 되기도 한다. 이런 차이는 여성들이 낮은 임금을 받고 쉽게 해고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이유는, 여성은 남편의 수입을 보충한다는 통념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집에서 돈 안 받고 하던 일을 나와서 돈 좀 받으면서 하면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여성을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집과 사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재생산노동은 이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여성이 가족 내에서 가사노동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돌봄노동을 하던 여성노동자가 제대로 된 임금을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여성이 이 사회를 쓸고 닦기를 멈춘다면, 이 사회는 결코 제대로 굴러갈 수 없을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은 성별을 빌미로 여성에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고,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는 투쟁이다. 집단교섭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대학 청소노동자들을 비롯해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자!

 

 

* 진보진영의 반페미니즘적인 행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지난 2월 29일 진보통합당에서 비례대표 명단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명단 중에 ‘2008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무마하는데 일조한 정진후 전교조 전 위원장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정진후 전 위원장은 2009년 전교조 위원장으로서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의 책임자였지만, 가해자들의 명백한 사건 은폐 시도에 대해 ‘혐의없음’이란 결론을 내리고, 가해자들이 전교조에 헌신한 점을 들어 매우 경미한 ‘경고’ 조치를 결정함으로써 피해 생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다. 이러한 전력 때문에 정진후 전 위원장의 비례대표 영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거셌음에도, 당 지도부는 그를 비례대표로 확정했고, 이를 철회해 달라는 피해자의 요구에 정진후씨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성폭력 사건 해결 원칙인 ‘피해자 중심주의’를 두 번 훼손하고, 여성권을 철저하게 등한시하는 행보다. 통합진보당이 당강령에 쓴 것처럼 ‘여성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보장하고, 성을 매개로 한 폭력과 착취를 근절’하려는 정당이라면, 이러한 행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이른바 ‘나꼼수 비키니 시위 사태’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던 정봉주 의원이 허위사실 유포로 수감되었을 때,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가슴에 정봉주 응원 메시지를 적은 뒤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비키니 시위’를 했었다. 나꼼수에서 ‘정 전 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는 발언으로 이 시위를 독려하면서 문제가 되었고, 한 여성카페에 ‘여성은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논쟁이 촉발되었다. 진보를 자처하는 남성들이 정치 이슈를 부각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동원하는 행태는 여성의 성을 대상화하고 수단화하는 행위이다. 게다가 해당 발언이 문제가 된 후에도 진지한 성찰과 반성 없이 자신들의 잘못을 미화하기에 급급했던 것에 많은 여성들이 실망하고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여성과 남성 간의 진정한 동지적 관계는 우선, 우리사회의 여성문제를 해결하면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고리를 끊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