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은 기본권을 보장받고 있는가”

고용허가제 시행 5년 토론회 열려
  
배문희  



고용허가제 시행 5년을 맞아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돌아보고 개선방향을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부터 3시간에 걸쳐 국가인권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고용허가제 시행 5년,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은 보장받고 있는가’라는 주제의 토론이 열린 것이다.

국가인권회의의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학계, 정부부처, 시민단체, 법조계 관계자들이 패널로 참석해 고용허가제에 대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신임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축사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들이 많다”며 “시민단체, 학계, 정부가 다각적인 협력 속에서 문제를 풀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고려해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주민의 권익 보장에 앞서 내국인의 인력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 고용허가제 5주년 토론회     ©배문희  


“고용허가제는 위선의 법” VS “내국인 보호 위한 선진적 제도”

첫 발제를 한 전형배 강원대 교수는 “현 고용허가제에서는 인권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며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인권침해의 폐혜를 막기 위해서는 인권적 요소를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 교수는 ▶입국 시 충분한 사전 정보 제공 ▶최초 근로계약 체결 기간 동안의 체류 보장 ▶동일가치노동의 동일임금 보장 ▶인권침해 사용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사용 제한 ▶체류기간 중 고용보험 의무가입 실시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정훈 변호사는 고용허가제를 “위선의 언어와 법”이라고 규정하며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를 통해 타인에게 노예와도 같은 삶을 강제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적 관행을 아프게 성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에 제한을 가하는 현 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는 내국인 고용 보호를 위해 제한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종속적 노동을 강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한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정말 안되겠느냐"고 물음을 던지며 ”우리 사회가 이런 근본적 물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 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이주 노동자의 취업기간을 3년으로 못 박았다가 5년으로 개정한 것에 대해 “뒷북치는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불합리한 행정으로 이주 노동자뿐 아니라 사업주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사업장 이동과 구직기간 제한은 이주 노동자들에게 족쇄가 되는 핵심사항”이라고 지적하고 숙박비 공제 문제에 대해서도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양혜우 전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소장은 이주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이주 노동자를 위한 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교육 실시 ▶근로계약서를 해당 국가의 모국어로 작성할 것 ▶산업 재해에 대한 예방 및 대책 마련 ▶이주 노동자의 주거환경 개선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 보장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논의하기에 앞서 자국민의 이해득실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토론이 뜨거워졌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교수는 “고용허가제를 이주민들의 인권의 문제에 치우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며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인의 고용보호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 고용허가제가 완벽하진 않지만 내국인 노동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선진국의 경우도 이주노동자 고용정책에 있어서 불평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하창용 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 사무관은 “애초에 이주노동자 고용정책은 내국인력 보호를 위해 만든 제도”라며 “이주노동자 고용정책의 수립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사정과 형편, 내국인력 보호를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한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내국인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재취업 기간 역시 2개월이면 양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주노동자로 인해 근로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임금도 오르지 않아 내국인 노동자가 피해를 입고 있다”며 “현 고용허가제는 내국인력 보호를 위한 선진적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중석에서 발언한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박경서 소장은 “이주노동자 때문에 내국인력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건설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부터 개선해야지 이주노동자 탓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둔 태국인 이주노동자 K씨가 참석해 그간의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어 테스트 점수가 낮아 원하던 공장에 못가고 농장비자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일도 힘들었지만 사업주의 성적인 농담과 접촉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