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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5-07-18 15:03]  

“한국은 기회의 땅이기도 하지만 참 살기어려운 곳” 疸떪㈎?36)은 2년 전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왔다. 그곳에서 그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던 엘리트였다. 하지만 한국에선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조차 기피하는 3디 업종에서 일하는 최하층 외국인 노동자다. 그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기도 했지만 이중의 멍에 속에 살아야 하는 ‘참 살기 어려운’ 곳이다.
 “모두들 이렇게 얼굴이 ‘하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건물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수도관에서는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저녁 7시만 되면 쥐죽은 듯 캄캄해지는 가나와는 달리 한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모습이 너무 놀랍더군요.” 동경해 마지않던 풍경이었다. 하지만 곧 검은 피부를 경계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를 움츠러들게 했다. 전철 안에서 옆에 앉은 어린이가 “엄마, 괴물이야”를 외치며 사정없이 울어댄 경험 뒤로는 전철 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졌다.

경기도 파주의 한 화학공장에서 일하는 그의 근무시간은 저녁 7시 반부터 아침 7시 반까지다. 흑인 동료 4명과 함께 일하는 동안 사장은 아예 공장 문을 잠근다. 언제 단속반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컨테이너박스 숙소에서 오전에 잠시 눈을 붙이고 오후엔 텔레비전을 보며 소일하다가 출근 채비를 한다. 유일한 낙이라면 일요일 인근 교회에서 같은 흑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흑인들에게 시키는 일은 따로 있어요. 가죽·염색·고물·폐차일 같은 것이죠.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은 힘이 달려 그런 일을 잘 못하기도 하거니와 웬만해서는 그렇게 힘든 데는 안 가려고 하죠.” 그의 취업을 도운 파주 한길교회 김영두(62) 목사의 말이다.

흑인 노동자는 국내에 3천명 가량 있다. 다른 대륙에서 온 노동자보다 ‘더 지저분하고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편견이 이들의 설자리를 좁게 만든다. 그나마 아프리카인들의 보금자리였던 한길교회도 불법 건물이라는 이유로 내년 8월이면 철거당할 위기에 놓였다.

요즘 단속이 강화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인 사장의 신경이 바짝 날카로워졌다. “정글의 너희 나라로 돌아가 굶고 살아”라는 욕설을 듣거나 따귀를 맞는 경우도 있지만 이쯤은 참아야 한다. 임마누엘은 “자존심 상할 때가 많지만 월급 제때 주는 것만도 어디냐는 생각에 꾹 참고 넘긴다”며 “그나마 피부색이 덜 ‘어두운’ 동남아 동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고 말했다.

임마누엘은 조국에서는 국립 가나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그에게 벗어나고픈 ‘천형’으로 여겨졌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외국의 풍경과, 외국에서 돈 벌어 가나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탈출하고픈 욕망이 점점 커졌다. 결국 친구 소개로 관광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왔다.

 “떠나올 때 아내와 세 아이에게 몇년만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올해 8월에 비자가 만료되지만 한국을 떠날 수는 없어요. 가족의 미국행 비행기 값을 마련하려면 앞으로 2년 정도는 돈을 더 벌어야 하거든요.”  그는 월급 100만원을 받는다. 가나에선 중상 정도 계층인 교사 월급이 우리 돈으로 15만원 가량이다. 그는 월급 가운데 생활비 20만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내에게 보낸다. 외국인 노동자, 그것도 흑인이라는 이중의 멍에가 얹힌 그에게 행복은 언제나 미래형이다. 손은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