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인권상담소 생겼다

[매일신문 2005-05-23 14:15]  

8년 전 한국인과 결혼한 메르뚜나스 나리따(39·여)씨는 자녀를 셋이나 낳고도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한 채 쉼터로 도피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술만 마시면 그와 자녀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국적을 주겠다던 남편은 한 달 전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떴다.

필리핀으로 돌아가기엔 면목도 명목도 없다.

아무도 마늘을 까며 하루 몇 천원의 품팔이를 하고 있는 나리따씨를 보호해주지 않고 있다.

22일 오후 3시 중구 남산동 구민교회에서는 최근 국제결혼 피해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대구이주여성인권상담소(053-256-0696)'를 열고 개소식을 가졌다.

평소 외국인 체류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가 이주여성에 대해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

외국인노동상담소 김경태 목사는 "국내에 이주노동자와 장기 체류자들의 국제결혼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 정책도, 민간단체의 지원도 빈곤하기 때문에 우리 손으로 이들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며 "문화의 차이, 언어 갈등, 생활 습관에 대한 오해 등이 결혼 후 불거지면서 약자인 이주여성이 국적도 취득하지 못한 채 내쫓기는 사례가 주변에 너무 많다"고 말했다.

상담소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에 3천400쌍의 국제결혼 커플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이 낙태, 강제출국에 따른 부부 이별, 경제적 문제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외국인 인권보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권미혜 변호사는 개소식에서 "낯선 땅에서 약자의 삶을 살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문화 격차에다 사람 차별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임신한 지 7개월 만에 이혼당한 중국인 송모(25)씨는 한 달 전 쉼터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시누이가 '국적을 얻기 위해 동생과 위장결혼한 여자'로 결혼 직후부터 그를 매도하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남편도 시부모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단돈 10만 원을 가지고 출입국사무소를 뛰쳐나온 그는 만삭인 배를 움켜쥐고 이곳 쉼터로 도망했다.

아이의 출생신고도 할 수 없다.

국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남편의 호적에 올려주기만 해도 좋으련만. 송씨는 아직도 가족이 그립기만 하다.

서상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