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보수적인 법원, 성매매 사건에만 관대"하다는 진중권을 비판한다

민성노련 간사  이 선 희


지난 6일 진중권은 “성매매 행위를 금품수수가 있었거나 도덕적 판단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 11월 29일자 판결(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2단독 정종관 부장판사)에 대해, 자신이 진행하는 '진중권의 SBS전망대' 칼럼을 통해 법원의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진중권은 "평소에 매우 보수적인 법원이 성매매와 관련해서만 대단히 리버럴하다"며 "성인이 자발적 의지에 따라 성행위에 들어가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문제의 초점은 의지의 자발성 여부로, 정부장 판사의 논리는 핀트가 어긋났다"고 지적하고, "성매매에 금품수수가 수반된다는 것은 그 행위가 경제적 필요에 의해 여성에게 강요된 것임을 함축"하고 "성매매의 불법화는 성병이나 성문란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조치가 아니라, 성매매를 사실상 강요된 성행위로 간주하자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진중권의 이같은 주장을 보는 나의 심경은 매우 당혹스럽다. 왜냐면, 나는 지난 9월 27일 SBS 라디오 "진중권의 SBS 전망대"에서 민성노련 간사 자격으로 9월 24일 공식 출범한 민성노련 노동조합과 관련하여 결성된 경위 및 설립 배경 등 성노동자 운동에 관한 폭넓은 대화를 진중권과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통해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성노동자 운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논하는 나의 얘기를 경청했으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마음속으로는 성거래에 절대 반대하는 성도덕적 교조주의자였다면, 아무리 직업적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하더라도 민성노련과의 인터뷰 기획을 거절했어야 마땅했다. 민성노련의 생각이 공중파를 탄다는 것은 성매매 특별법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또한 진중권의 성도덕적 이념을 사수하는데도 위험한 요인이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터뷰를 진행했으니 진중권은 자신의 가치와는 달리 직업적인 것(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기회주의자로 결국 이 프로그램의 작가인 허경진 씨의 원고만 읽은 셈이 된다.

진중권이 "문제의 초점은 의지의 자발성 여부“라고 한 것은 자발적인 성노동자들의 의지를 간단하게 폄훼한 것이며, ”성매매에 금품수수가 수반된다는 것은 그 행위가 경제적 필요에 의해 여성에게 강요된 것“이라고 한 것은 ‘빈곤’이 원인인 점은 지적했음에도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려는 혐의가 숨어있어 사회과학을 공부했다는 그가 한 말로는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다. 또 "성매매의 불법화는 성병이나 성문란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조치가 아니라”며 판결문을 비난한 것은 정 판사가 주류 여성계가 강변하는 도덕적 관념보다 성노동자에게 물리적 환경(질병관리 측면)을 중시한 관점을 놓친 것이다.    

나는 여론주도층 인사인 진중권이 “성매매를 사실상 강요된 성행위로 간주하자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라고 결론지은 것이 여성권력자들의 목소리에서 그대로 복제된 것임을 알고 사회에 미칠 파장이 우려스러워 고민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성거래’에 관한 인간 진중권의 생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왔다. 진중권은 성거래에 관한 정리된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채, 단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포퓰리즘에 기대어 마구 떠들고 있었다. 참고로 지난해 10월 15일 지승호(서프라이즈)가 진중권에게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지승호) : 그럼 간통죄나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마전 합헌 판정도 났는데요.
(진중권) : 국가에서 왜 사생활을 간섭하죠? 절반의 피해자는 여자 아닌가요? 정실부인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의 대립(웃음), 간통죄를 인정하는 법은 헤라여신(웃음), 봉건적인 축첩 제도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지금은 보편적이지 않잖아요?
(지승호) : 소위 공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강자씨의 경우 “여성계를 설득시키기 너무 힘들다. 매매춘 소굴에서 경찰 입장에서 일을 해보면 그런 말 안할 것이다. 성을 파는게 나쁜지 누가 모르나? 너무 이분법적이다. 엘리트적이고, 귀족적이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유시민씨도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매춘여성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도록 경찰이 도와주는 것도 불법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강자씨도 ‘제한된 공간에서 매매춘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규제주의’라고 강조하면서 공창이란 단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진중권) :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둘 다 논리가 맞고,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도덕적 명분이냐? 현실이냐?’겠죠. 전 양쪽에 ‘대안을 갖고 있느냐?’ ‘규제주의로 착취를 없앨 수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한, 하나의 고려해볼만한 해결책이라고는 봅니다.


진중권은 이 자리에서 국가에 의한 사생활 간섭에 반대하며 가족이데올로기(정실부인)의 시대적 모순을 헤라여신까지 등장시켜가며 비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거래에 대한 합법적 규제주의에 대해 ‘개인적’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긴 하지만 ‘고려해볼만한 해결책’이라고 신중하게 권하고 있다. 이 글은 비단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의 대립만이 아니라 ‘성거래’ 또한 기존의 가족제도를 절대선으로 우상화하는 전근대적 틀이 아니라면 성노동자에 대한 극도의 ‘오명과 낙인’이 생겨날리 만무하다는 점을 잘 암시하고 있다. 정 판사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정종관 부장판사의 판결을 문제삼은 진중권은 사실 정 판사의 핵심논리를 다 놓치고 있다. 판결문은 “성행위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고방식은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변화에 수반된 급격한 성도덕의 변화에 의하여 이제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국민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도덕이라는 기반을 상실하였다... 계약동거가 성행하며, 프리섹스나 그룹섹스를 하더라도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에서, 단순히 금품의 수수가 수반된다는 이유만으로 성매매만은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부도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실현 불가능한 현행 법률을 근본적으로 재고해보기를 제안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정 판사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성담론’과 ‘성거래’에 관한 생각들은 유럽의 비범죄주의나 합법적 규제주의를 채택한 나라에 사는 지성인들과 논리와 맥락에서 일치하며, 더욱이 여성권력자들이 전횡하는 억압적인 국내 현실에서 이런 발언(판결)을 내놓은 용기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부합하며 크게 존경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내 언론에서 흔하게 ‘진보인사’라고 불리는 진중권이 “성매매를 사실상 강요된 성행위로 간주하자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라고 여성권력자들과 입을 맞춘 것은 성매매 특별법이 ‘성매매 음성화 및 효과 별로’(71.24% 네이버 2004.10)라는 시민들의 절대 다수 여론을 무시한 무지의 소치이며, 오직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하여 권력과 보조를 맞추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어 그에게 맹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전국의 성노동자들은 법에 쫓긴 나머지 위험이 현저하게 높은 음성 성매매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남은 성노동자들은 도시재개발 사업을 등에 업고 집창촌을 향해 쳐들어오는 여성권력자들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성노동자운동에서 철거민운동까지 함께해야 하는 고민속에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민성노련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연대해 힘을 주고 있다. 이들 사회단체들은 ‘진보’의 이름에 걸맞게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사회 양극화’ 문제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민중운동들이 ‘성거래’와 관련한 대안임을 잘 인식하고, 주체적이며 자발적인 민중 성노동자들을 동지와 자매로 맞이하고 있다.

우리 민성노련은 아무쪼록 이 땅의 지성인들은 정종관 부장판사의 이번 판결(“성매매 행위를 금품수수가 있었거나 도덕적 판단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없다”)을 계기로, 진중권과 같은 친권력형 포퓰리즘적 발상을 지양하고 국제적 수준의 ‘성거래’에 대한 폭넓은 공론화에 나서 반인권 악법인 성매매 특별법 폐지 및 대폭 개정에 함께 하기를 기대해본다.


2005. 12. 13

민주성노동자연대  http://cafe.daum.net/gksdu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