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세계를 뒤흔든 열흘>(존 리드, 책갈피, 2005)



1917년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혁명을 기록한 모든 책들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히는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 드디어 출간됐다.
  이 책의 최대 미덕 중 하나는 기자 특유의 생생한 묘사다. 존 리드는 혁명 러시아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와 그 주변 도시들, 혁명의 두 번째 격전지였던 모스크바까지 곳곳을 누비며 이 책을 썼다.
  레닌, 트로츠키 같은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참호의 병사들, 공장 노동자들, 비참한 처지의 농민들까지 러시아 혁명의 수많은 주인공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또한 존 리드는 미국인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귀족, 반혁명 장군들의 노골적 속내에서부터 케렌스키, 사회혁명당, 멘셰비키 같은 ‘온건’ 사회주의자들의 은밀한 고백까지 담아낸다.
  그 결과, 존 리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박노자 씨가 추천사에서 밝힌 것처럼 “스탈린과 그 후계자들의 독재가 왜곡하고 정권 유지의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전용한 1917년 혁명의 진실한 모습…혁명 러시아가 거의 하나의 입체적 그림처럼 다가온다.”
  
  쿠데타?
  
  우파들은 1917년 10월 혁명이 “볼셰비키의 쿠데타였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부 좌파들, 특히 자율주의자들도 이런 가정을 공유한다.
  이 책은 이런 주장들을 반박하는 데 유용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공한다. 아마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신의 지적 타락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볼셰비키가 주도한 10월의 무장 봉기는 노동자, 병사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이 점은 봉기 직후, 존 리드가 인터뷰한 사회혁명당원의 고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당시 사회혁명당은 볼셰비키에 반대해 반혁명을 도모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대중이 따르고 있는 것은 볼세비키죠. 우리에게는 추종자가 없습니다.…우리에게는 동원할 만한 병사들이 없어요.”
  볼셰비키당은 “대중 의지의 궁극적, 정치적 표현”이었다. 봉기를 결정하는 과정은 인위적이지도, 그렇다고 매끄럽지도 않았다. 봉기 보름 전에 열린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대한 묘사는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지식인들 중에는 오직 레닌과 트로츠키만이 봉기를 지지했다.…투표 결과,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은 일단 기각됐다! 그때 한 노동자가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떨고 있었다.…‘페트로그라드 노동자를 대표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우리는 봉기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소비에트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겠다면, 우리와의 관계는 끝날 것입니다!’ 몇몇 병사들이 그에 합세했다.…그래서 투표가 다시 이뤄졌고, 결국 무장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이 통과됐다.”
  우파들은 러시아 혁명을 놓고 “볼셰비즘의 야만적 공격에 맞선 고결한 사람들의 투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는 “폭력혁명과 평화로운 제헌의회 사이의 대립”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볼셰비즘의 위험이 분명해지기 전에는 제헌의회를 반대했”다. 존 리드가 인터뷰한 러시아의 대자본가 스테판 게오르그비치 리아자노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헌의회가 조금이라도 유토피아적 경향을 내비친다면, 무력으로 제헌의회를 해산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지배자들은 대중의 불만을 진압하기 위해 독일군을 끌어들이려 했다. “대다수의 유산 계급은 혁명보다 독일군이 더 낫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1917년 러시아가 직면한 선택은 ‘폭력혁명이냐 평화로운 제헌의회냐’가 아니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것이었다.
  10월 혁명은 무엇보다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러시아 노동자, 병사 들의 민주적 결정이었다. 혁명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쟁을 벌이는 한 장갑차 부대 병사들에 대한 묘사는 매우 감동적이다.
  “나는 이 병사들처럼 사태를 이해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연설을 경청했다. 병사들은 고민하며 눈썹을 찌푸렸고,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과 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사의 얼굴을 한 위대한 거인들처럼 보였다.…넓디넓은 러시아 각지에서 수많은 노동자, 병사, 수병 들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결정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마침내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결의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바로 그것이 러시아 혁명이었다.”
  
  스탈린
  
  이 책은 1980년대에 ≪세계를 뒤흔든 10일≫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처음 출간된 바 있다. 당시 군사 독재 정권의 검열 때문에 대폭 생략됐던 내용들이 이번에 완전 복원됐다. 1백 페이지 분량의 부록과 후주가 되살아났고, 12장 농민대회 부분이 추가됐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생략됐던 부분을 복원해 페이지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두려워한 것은 남한이나 서구 지배자들만이 아니었다. 레닌이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추천”한 이 책이,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는 금서가 됐다.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혁명 과정에서 실제로 별로 한게 없는) 스탈린 자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스탈린은 이 책을 두려워했다.
  레닌이 이 책의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독자들은 1917년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책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념들은 광범한 논쟁을 불러왔다. 그러나 개념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에 앞서,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존 리드의 책은 노동자 운동의 근본적 문제인 이 개념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혀 주고 있다.”

김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