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서

이주노조 탄압의 전주곡인가,
아노아르 위원장 강제 연행을 강력히 규탄한다

1. ‘이주노동자도 인간’이라는 너무나도 단순한 진실에 관한 외침이 또다시 무참히 짓밟혔다. 지난 13일 밤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 아노아르 위원장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강제 연행됐다. 당시 아노아르 위원장은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자신의 거주지 주변 지하철역에서 막 나가려는 순간 역 출입구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30여 명에 의해 강제로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2. 연행된 후 호송된 차량 안에는 아노아르 위원장의 연행 관련 서류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아노아르 위원장을 연행하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는 지난 3일 민주노총 기자회견실에서 진행된 이주노조 창립 기자회견 당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사진을 찍는 등의 불법사찰을 자행하다 적발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주노조 창립 후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주노조를 겨냥해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을 계속 실시하겠다”고 단속추방의 의지를 밝혔고 노동부 역시 “이주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언론을 통해 흘려왔다.

3. 이번 아노아르 위원장 강제 연행은 이주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하기 위한 노동부와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공동합작이다. 노동부는 이주노조가 제출한 노조 설립 신고서에 대해 △임원 전체 명단 △조합원 명부 △총회 회의록을 보완 요구하며 노조 설립 허가를 지연시켜왔다. 법무부 역시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예제도’라는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미등록의 신분이 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추방”만을 앵무새처럼 반복적으로 되풀이해왔을 뿐이다. 출범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이주노조의 위원장을 표적 연행한 이번의 행위는 명백히 이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4.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3D 업종’에 종사하며 온갖 고된 일을 떠맡으면서도 노예노동과 다름없는 노동권 침해와 인종주의에 근거한 차별/폭력, 심지어는 온갖 종류의 성폭력 등에 시달려왔다. 이주노조는 바로 그러한 반인권적 상태에 놓여있던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조직한 이주노동자들의 결사체다.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를 통해서 노동3권을 획득하고 인종주의에 의한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며 온갖 종류의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누구나가 누려야할 당연한 인권의 목록 중 하나다. 헌법 제6조 제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그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2003년 7월 1일 발효)’은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해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며 제26조에서 ‘노동조합 및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및 기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타의 조직의 집회와 활동에 참가할 권리’와 ‘노동조합 및 위에 지적된 조직에 자유로이 가입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대법원 또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또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상의 노동자에 해당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대법원 1997.8.26. 선고 97다 18875 판결) 우리는 등록/미등록 혹은 합법/불법의 기준을 근거로 내세우며 인종적 적대와 외국인(특히 제3세계 출신) 혐오증을 교묘히 조장하며 이주노조 및 이주노동자들을 탄압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로서 인권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5.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반인권적 단속 추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체류 자격의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산업연수생제도는 오히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구조적으로 양산해왔다. 게다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이주노동자들을 노예상태로 내몰고 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더욱더 확대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철저히 정부의 정책에 의한 결과다. 그동안 소수의 ‘합법’ 이주노동자와 다수의 ‘불법’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동시에 활용하는 전략은 정부의 정책으로 지지되어 왔다. 정부는 ‘단기 로테이션 정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필요한 기간 동안만 일하게 하고 돌려보냄으로써 거주와 정착에는 반대해왔다. 이로써 양산되는 다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불법’을 무기로 값싼 노동력 시장으로 관리해왔던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양산을 조장해온 정부는 이제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스페인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은 최근 70여만 명의 ‘불법’ 이주노동자를 ‘합법’으로 전환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5년 동안 ‘불법’ 이주노동자에 대해 모두 6차례의 양성화 조처를 시행해왔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 단속 추방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노동권에 대한 침해와 이주노조에 대한 탄압은 언제라도 잠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모색에 지금이라도 정부가 하루빨리 나서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05년 5월 17일

광주인권운동센터, 군경의문사진상규명과폭력근절을위한가족협의회, 다름으로닮은여성연대, 다산인권센터, 대항지구화행동,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의련, 사회진보연대, 새사회연대,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라미 변호사, 안산노동인권센터,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인이동권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지문날인반대연대,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이상 24개 단체 및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