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역 새 이민법 반대시위

   지난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청 앞에는 50만여명의 인파가 도로를 가득 메우는 이례적인 광경이 벌어졌다.

   1970년대 이 지역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 규모를 뛰어넘는 이번 집회는 미 하원이 지난해 12월 통과시킨 새 이민법에 항의하기 위해 라틴계 이민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것이다.

   LA타임스 등에 따르면 주로 멕시코 출신인 이들은 미국과 멕시코 국기를 흔들고 “차별 반대” “외국인 혐오 이제 그만” 등의 구호를 외치며 평화 시위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이 나라를 세운 것이 이민자들인데 이제는 사회의 최약자라는 이유로 걸핏하면 괴롭힘을 당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시위에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 시장, 길 세디요 상원의원 등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한국 교민들도 동참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고교생 수천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참가했다. 덴버, 새크라멘토, 샬럿 등에서도 수천~수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미국 내 이민자들이 반발하는 새 이민법은 그동안 미국 내 불법체류자들을 규율해온 민법적인 성격의 기존 이민법을 한층 강화해 이들을 중범죄자로 취급하는 형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에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 ▲불법체류자를 돕는 교회·종교단체에 대한 처벌 ▲미국·멕시코 간 국경선 3분의 1 구간에 걸쳐 새 장벽 설치 조항 등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이민자들이 특히 반대하는 부분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거나 도와준 사업주·종교단체 처벌 조항이다.

   로마 가톨릭 LA 대교구장인 로저 마이클 마호니 추기경은 각 교구 신부들에게 이 법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이자고 촉구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도 “선량한 사마리아인은 물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조차 범죄인 취급을 할 수 있는 새 법안 내용은 내가 이해하는 성경과 배치된다”며 논의에 뛰어들었다. 에드워드 케네디 민주당 의원처럼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1천1백만 불법체류자 모두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이도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 사이에는 최근 일자리 부족과 안보 논란 등의 영향으로 불법체류자에 대한 혐오 정서가 강화됐으며 일부 주는 이들에 대한 운전면허증 발급 중단 등 공공 서비스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이 와중에 공화당 주도의 하원이 새 이민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새 법이 이민자들에게 주는 거부감을 줄이고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일시 이주노동자(Guest Worker)’ 확대안을 법안에 포함시키려 애를 써왔다.

   일시 이주노동자란 외국인으로 정식 체류허가증을 발급받지 못한 채 최장 6년간 미국에 머무르며 닭농장, 건설현장 등에서 미국인들이 맡기 꺼려 하는 일만 하는 노동자로서 이미 일부 실시되고 있다. 이번 안은 불법체류자들이 5년 내에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일시 이주노동자 또는 영주 희망자로 신청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 내에서도 각자 입장에 따라 이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공화당의 주요 지지층인 재계는 저임금 노동자의 필요성을 이유로 이 제도에 찬성하는 반면 또 다른 지지층인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범법자들을 구제해줄 수는 없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찬성하는 측은 존 코닌 상원의원(텍사스) 등 국경지대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다. 코닌 의원은 요즘 자주 언론에 나와 “이민 때문에 강해진 미국은 일하려는 이민자들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도록 하자”며 부시 대통령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의원들은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을 의식, 이에 반대하거나 “찬반 어떤 입장을 취해도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게 돼 있다”며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새 이민법은 28일부터 상원의 심의를 거칠 예정이다.  

〈손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