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전교 어린이 회장이에요. 투표로 뽑힌 회장이라니까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미용사로 일한다는 한국계 여성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런 딸을 키우는 엄마의 기쁨이 생생했다. 불법체류 노동자로서 불안감에 시달리던 10여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다는 행복감. 그를 마음껏 축하해주는 순간 느닷없이 까무잡잡한 영광이 얼굴이 떠올랐다.

●1만명 학교 못가고 떠돌아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의 합법 체류를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엄마 아빠랑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라고 말하던 6살짜리 스리랑카 소년 영광이. 눈빛이 유난히 초롱초롱한 영광이도 한국의 초등학교를 신나게 다니며 부모의 자랑과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서툰 한국어, 집단 따돌림,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등으로 학교를 포기한 채 길에서 떠도는 외국인 노동자 자녀가 1만 명을 헤아린다는데…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미성년인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 지고 있어 참 반갑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인 김해성 목사는 외국인노동자의 미취학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연다. 부모가 방문을 바깥에서 잠그고 일하러 가면 온종일 혼자 방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의 ‘꽉 막힌 어린시절’을 차마 모른 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 교육청이 시흥과 안산 지역 초등학교에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특별학급을 설치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한국말과 문화에 서툰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의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정착. 확산되면 참 좋겠다. 영어와 미국생활에 낯선 외국학생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길라잡이자 쉼터의 역할도 하는 미국의 ESL 프로그램처럼.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합법적 체류자격이다. 국내 18세 이하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자녀는 2만여 명에 이른다.

그들의 고통을 방치할 경우 비자를 받은 적도 없고 국경을 넘어온 일도 없는데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는 기막힌 아이들은 계속 늘 수밖에 없다. 그 아이들의 삶이 한국에서 불행하게 일그러져 버리지 않도록 보살피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한국교회인권센터. 기독교사회연대회의. 불교인권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종교단체, 경기여성단체연합, 그리고 유니세프 등 1백25개 시민단체와 기구들은 ‘이주아동 합법체류 보장 촉구 연대’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면서 관련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거리캠페인, 공청회, 공동행동의 날 등을 진행한다.

●특별학급 설치 소식 반가워

1989년에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을 보장하고 있다.

모든 어린이는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인종. 국적과 상관없이 차별 받지 않아야 하며, 어린이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는 어린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도 명시되어 있다. 일본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자녀에게도 유치원부터 초.중등 교육까지 무료로 제공한다.

미국 역시 교육과 의료서비스 등 모든 기본권을 보장한다. 심지어 부모들에게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기회를 주어 자녀를 좀더 건강한 시민으로 기르도록 돕는다. 한국도 지난 1991년 이 협약에 비준한 만큼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마땅히 지켜야 한다.

유니세프가 꿈꾸는 ‘모든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은 지구촌 가족 모두의 소망 아닌가. ‘모든 어린이’에는 이주노동자 자녀들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김경희ㆍ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세계교육부장

  

입력시간 : 2006/03/09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