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kisa/section-002001000/2006/01/002001000200601021835357.html 삶의 속살 포섭 못한 ‘진보담론’이 위기 불러

[한겨레 2006-01-03 12:00]    





[한겨레]


2006년 내내 진행될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의 첫 자리는 신년특집 대토론회였다. 지난해 12월23일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는 오후 1시30분부터 시작해 장장 7시간 동안 진행됐다. 1부에선 ‘대안을 향한 성찰’ 2부에선 ‘선진을 향한 대안’을 큰 주제로 잡았다. 진보개혁진영의 현 주소를 짚고, 미래를 향한 구체적 대안을 고민해 보았다.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선진대안포럼의 각종 학술대회 및 초청토론회의 기본적 문제의식을 다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전체 11명 실행위원 가운데 김명인(인하대), 김유선(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김호기(연세대), 박명림(연세대), 양현아(서울대), 임지봉(건국대), 조현연(성공회대), 조희연(성공회대), 홍성태(상지대) 교수 등 9명이 참석했고, 해외에 머물고 있는 박태균(서울대), 이일영(한신대) 교수는 따로 발표문을 보내왔다. 포럼 실행위원은 아니지만 고병권(수유+너머 대표), 신정완(성공회대) 교수도 함께 참석해 인문학과 경제학 분야의 고민을 보탰다. 이 시대 진보개혁진영을 대표할만한 소장학자들의 열띤 토론 내용을 이틀에 걸쳐 나눠 싣는다.


과거 발전모델 수명 다했는데 새 대안 막막
현실 적합성 갖춘 대중적 진보·개혁 의제 못내놔
정치 중심 벗고 삶의 다양성 담을 새틀 고민해야


김호기= 진보라면 새로운 것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되는데, 국민들의 눈에는 이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 위기를 검토할 경우, ‘담론’과 ‘세력’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진보 ‘세력’은 위기라고 보기 어렵다. 중도적 개혁세력까지 포함하면 87년 이후 지속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오히려 위기는 세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담론’의 위기다. 과거의 것은 죽어 가는데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담론의 위기다.

조희연 = 현재의 위기는 전환적 위기다. 민주개혁을 시대정신으로 했던 87년 체제가 포스트 87년 체제로 이행하면서 발생한 전환의 위기다. 전환의 위기는 양면성이 있다. 우선 실패의 위기는 아니다. 성공의 위기인 지점이 있다. 87년 6월 항쟁에 내재된 민주개혁 의제가 일정 수준에서 실현됐다. 과거사 청산 등이 그렇다. 전환의 위기는 새로운 의제가 존재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민주세력이 신자유주의 개발국가의 담지자가 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났다. 자유주의적 민주화세력이 민주적 정당성을, 신자유주의의 추동을 위해 활용하면서 신자유주의의 하수인이 되는 형국이다.

박태균 = 진보는 지금까지 너무 안이했다. 진보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진보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한 채 진보의 깃발만을 내걸고 있었다. 대중적 공감대를 얻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 사회적 담론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구태의연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지만, 진보는 이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특별한 대응이 필요없을 정도로 ‘뉴라이트’의 내용이 형편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가 대중적 공감대를 갖고 대응할 만한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두 가지 중요한 방향이 필요하다. 하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서양의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한국적 현실에 맞는 이론을 계발해야 한다. 한국적 현실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둘째 대중성의 획득이다. 진보는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만으로 자신들의 만족을 구했다. 대중들은 좀 더 쉽게 다가가는 언어들을 원하고 있다.

이일영 = 진보개혁 세력은 80년초 신군부에 패배한 이후 꾸준히 성장해서 87년 이후에는 불패의 가도를 달려왔다. 그런데 그 세력이 가진 이념은 앙상한 것이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고민이 새로운 이념과 대안으로 전환·숙성되지 못했다. 그 인식의 지체는 개탄스러울 정도다. 80년대 후반 이후 세계경제가 중대한 전환을 하고 있다. 금융·무역·투자의 세계화가 큰 흐름이 됐다. 한국의 경우 외부적으로는 대외관계·남북관계의 판을 새로 짜야 하는 조건에 처했으며, 대내적으로는 종래의 발전모델이 더 이상 잘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다. 진보개혁 세력은 정치적 승리를 통해 조금씩 권력과 제도에 접근해갔으나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진보와 개혁의 의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고 실체다.

고병권 = 진보세력이 과연 고정된 실체인가. 진보 세력의 재구성을 생각해야 한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해 온 세력이 이제부터 신자유주의에 대응해 대안을 사고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런 사고 속에서는 새로운 진보 세력, 가령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우리 시대 다양한 소수자들의 자리가 없다. 진보 세력을 재구성하려는 사고가 빠져 있는 것이다. 이른바 ‘진보세력’의 가장 큰 위기는 새로운 진보를 정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조현연 = 진보의 정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 생각은 있는데 합의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집합적으로 개념을 정의할 수 있는, 동의할 수 있는 진보를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진보의 위기가 한국사회의 위기와 함께 간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공동체적 가치가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개인이 사회 불안에 대한 짐을 모두 짊어지면서 사회의 위기, 진보의 위기가 오고 있다. 그것이 핵심이다. 다수의 사람이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데 여기에 답을 주지 못하면 진보의 재구성 계획은 설득력을 지닐 수 없다. 현실의 고통의 원인을 찾으면서 진보를 재구성해야 한다.



김명인 = 담론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의 전통적 담론을 재현하는 건 의미가 없다. 진보담론의 스펙트럼이 자유주의부터 급진주의까지 넓어지고 또 그 안에서도 분화가 이뤄졌다. 따라서 지금은 진보세력 간의 최소 강령적 합의 같은 게 중요하다.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문제의식이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이 사회의 미래 형태나 경로에 관한 일정한 합의가 어디까지 가능한가가 이야기 돼야 한다. 세력 재구성과 관련해선, 과거처럼 통일성과 위계를 지닌 조직이 아니라, 최소 강령적 합의에 기초한 연대의 틀 속에서 각자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을 해 나갈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천의 측면에서 보면, 국가주의적으로 포획되지 않는 주변적·경계적·해체적 저항을 하는 길과 권력에 참여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생산적 긴장 속에서 역량을 배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지봉 = 87년 헌법은 군사정권 하에서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억압받은 데 대한 항의로서의 자유주의적 측면이 있다. 동시에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한 데서 출발한 민주주의적 성격도 강하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두 성격은 이후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각각 발전했다. 자유주의는 재산권을 중심으로 기득권층의 기득권 보호 논리로 발전했다. 이것이 성장주의와 결합하면서 보수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 사회개혁을 모색하는 입장으로 발전되면서 진보세력을 형성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를 진보의 위기라고 보기보다는 이제 보수와 진보가 뚜렷이 분화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생산적으로 경쟁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게 옳을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진보세력의 연구와 논의가 과거회귀적 성찰에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사회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 제시에 취약했다.

박명림 = 한국의 진보담론은 크게 세가지 점에서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우선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나타난 탈냉전 이후 세계사적 수준에서 진보담론의 재구성이 요구되고 있다. 둘째, 한국 진보담론의 재구성은 민족문제와 직결되어 있는데, 통일문제 및 북한의 현실에 대한 곤혹스러움이 있다. 북한의 체제 이데올로기는 현재 총체적인 파탄을 맞았다. 셋째, 한국 사회 내부의 정치·경제적 해결 과제가 적지 않았는데, 민주화 이후 교착국면에 빠져버렸다.

양현아 = 과거의 과제는 청산되지 않은 채, 새로운 과제들이 중첩적으로 제시되면서 우리 사회의 시대착오성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진보진영이 갖고 있는 발전의 구도, 국가에 대한 틀은 무엇인가. 땅값, 집값, 과도한 교육 경쟁, 저출산, 고령화 등은 모두 기존의 진보담론에 잡히지 않았던 영역이다. 진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사실 이상하고 촌스럽다. 뭐가 진보인가. 진보를 어떻게 단수로 말하나. 아직도 정치담론 중심의 진보담론은 우리 삶의 속살을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징병제, 노동, 비정규직, 빈곤, 노인가구, 가족, 저출산, 아동방치 등이 진보 담론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지금같은 방식으로는 진보담론이 여전히 삶과 괴리될 것이다. 여성·노동자·장애인 등 현실의 ‘복수성’을 포착하기 위해선 ‘하나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잘못이다. 앞으로의 진보 패러다임은 새로운 지평에 서야 한다. 정리/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구체적 정책담론 생산·소통 절실
김명인 교수 발제문 요지

진보세력 또는 진보담론이 위기에 빠졌다는 말은 이제 진부한 레토릭이 돼버렸다. 민주화라는 제한된 성취는 오히려 진보세력과 진보담론의 해체를 가속화시켰다. 일부는 자유주의적 현실권력에 참여했고, 일부는 우경화·보수화했고, 일부는 전통적 운동권에 잔류하고, 일부는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일부는 비판적 관조주의에 침잠해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급속하고 강력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그램은 ‘87년 체제’의 취약성과 한계를 전면적으로 드러냈다. 진보적·대안적 의제들은 하나하나 폐기처분되고 있다. 극단적 시장주의 속에서 자본의 신성불가침성이 재확립되고, 노동계급은 유연화라는 명분 아래 자본에 하염없이 종속돼가고, 공동체적 연대성을 비롯한 민주적 가치들이 허무주의적으로 희화화되고,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야만적 시장논리의 절대화 앞에서 공동체사회의 비전도 사라지고 있다.

이에 대한 ‘진보세력’들의 정체성 혼란과 현실 대응력 빈곤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진보적 지식인 사회부터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쳐 불행과 고통에 대한 구체적 진단과 처방을 마련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담론 실천의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과거처럼 높은 추상수준과 낮은 현실적응성을 특징으로 하는 담론생산의 상아탑을 벗어나 구체적·대안적 정책담론을 생산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소통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해 온 민주적 역량과 결합해 세상을 구체적으로 바꿔나가는 ‘실천궁행’의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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