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2006-01-05 19:45]

새해 첫 여명을 앞둔 1일 오전 4시30분 경기 안산시 원곡동 편도 5차선
도로. 승합차 한 대가 지하도 입구를 들이받았다. 타고 있던 5명이 중태에 빠졌고
조수석 탑승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두스만타(24)의 ‘코리안
드림’이 꺾이는 순간이었다.

두스만타는 2003년 6월부터 안산 원시동에 있는 섬유 제조업체 H사에서 일해왔다.
하루 11시간씩 공장일을 해야 하는 고된 생활이었다. 하지만 두스만타는 게으름 피울
줄 모르고 웃음을 잃지 않는 밝은 청년이었다. 힘든 기색 한 번 내지 않고 월급 100만원
가운데 80만원을 꼬박꼬박 고향으로 보냈다. 같은 공장의 스리랑카인 동료 로하나(28)는
“두스만타가 매월 송금일이면 ‘돈 보냈어요.’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가족에게 전화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향에서 작은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53)와 어머니(48), 남동생(22),
여동생(16)은 장남인 두스만타가 벌어주는 돈으로 부족한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했고,
그 덕에 다섯 가족이 살기엔 좁기만 했던 집을 넓힐 수도 있었다. 올 5월 말 산업연수생
비자가 만료되는 두스만타의 꿈은 고향에 돌아가 비디오 가게를 남부럽지 않은 규모로
키우는 것이었다.

사고는 월피동 스리랑카인 불교 사원에서 동료들과 밤새 새해 첫날 행사 준비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일어났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한줌 재로 고향에 돌려보낼
수 없었다. 주검이나마 온전히 보전해 고향으로 보내기 위해 쌈짓돈을 털었다. 회사의
스리랑카 동료 17명을 중심으로 안산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공동체에서 모금이 시작되어
400만원 가까이 든 부패방지 처리비와 영안실 이용료, 비행기삯 등 비용을 충당했다.
공장의 한국인 동료 70명도 230여만원을 보태 월급과 퇴직금을 합하여 500만원가까이
위로금을 마련하였다. 서울보건대학에서는 교통사고로 심하게 훼손된시신을 무료로
복원하여 주었다. 두스만타의 주검은 5일 오후 9시 비행기를 타고 스리랑카로 떠났다.

글 이재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