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한국을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 거주자들과 여행자들의
얼굴과 지문 생체정보를 수집하려는 계획에 대하여
전국 인권단체들이 김경한 법무부 장관에게 보내는 편지


김경한 법무부 장관님께


우리는 당신과 법무부가 새롭게 입법예고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기 위하여 이 편지[항의서한]를 씁니다. 개정안은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여행자들과 거주자들의 얼굴사진과 지문을 채취하고, 검사하며, 범죄수사에 이용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제도가 외국인에 대한 적대를 불러일으킬 뿐인 매우 위험한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대의 효과

법무부의 보고서대로, 미국과 일본이 이미 이와 같은 제도를 시행중에 있으며, 유럽연합도 동일한 제도를 논의 중에 있습니다. 9/11 테러 이 후 미국이 시작한 새로운 제도는, 테러와의 전쟁을 홍보하고 국경을 넘어 이주하면 안 된다고 국가가 판단한 사람들을 걸러내고 있습니다. 법무부도 동일한 논리를 내세웁니다. 어쩌면 얼굴사진과 지문을 이용해 출입국심사를 진행하는 보이지 않는 장막 속에서 ─ 내국인들이 당당하게 통과하는 동안에 외국인들은 굴욕적인 신체검사를 받게 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내국인들은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사실 우리 모두는, 외국인들을 불신하고, 검사하고, 적대시하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적대입니다. 우리는 이미 외국인들을, 나와 국적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며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새로운 출입국심사는 그러한 경향을 더욱 더 심화시킬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당신의 2세들이 혹은 그 2세들이 세계를 여행할 때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전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세상의 모든 국경에서 지문을 찍는 신체검사를 진행하고 있을까요? 환대가 아니라 불신으로 손님을 대하고, 친구가 아니라 적을 만드는 제도 속에서 안전보다는 전쟁이 일상이 될 것입니다.

법무부가 새로운 출입국관리법을 입법예고하고 며칠 뒤, 미국에서는 모든 여행자들에 대해서 알몸스캐너를 이용한 출입국검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2004년 지문채취를 시작한 미국은 2007년부터 그 범위를 열 손가락 지문으로 확대하였습니다. 이제는 알몸스캔입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하려 할까요? DNA검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은 과연 점점 안전해지고 있는 걸까요? 오히려 미국 의회는 이 프로젝트의 실패를 매년 보고하고 있습니다. 법무부의 검토보고서와 다르게 미국 의회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4년 동안 13억 달러가 투입되었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스템은 3~4%의 지속적인 판단오류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시스템이 다운되어서 수천 명의 여행자들이 밤새 공항바닥에 억류되어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차마 실패를, 새로운 프로젝트가 효과 없이 예산만 축내고 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점점 더 강력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실패선언을 지연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미국은 이미 여행자들이 가장 방문하기 싫어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미국을 싫어하는 만큼, 미국인들도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불신과 적대 속에서 바라봅니다. 어쩌면 이러한 적대가 미국과 테러집단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면서 미국과 테러집단 모두가 억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일류시민과 배제된 자들

다음으로, 지문찍기와 신체검사가 수행할 실질적 효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문찍기를 이용한 검사의 맞은편에는 입국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 ─테러리스트 혹은 과거의 범죄자들─ 의 리스트, 즉 블랙리스트가 존재합니다. 이 편지가 쓰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미국은 1,181,565명이 등록된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같은 목적의 블랙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국도 새로운 출입국심사제도가 시작되면 위와 같은 블랙리스트의 관리를 시작할 것입니다. 어쩌면 벌써부터 관리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이 리스트에 들어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 리스트에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 미국과 그의 동료 국가들이 적 혹은 문제인간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보다는 무슬림이, 자본가보다는 노동자가, 백인보다는 유색인이, 비감염인보다는 감염인들이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관리할 블랙리스트에는 아마도 동남아나 중국의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리스트는 당연하게도 차별로 이어집니다. 국가는 스스로가 세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서 이러한 리스트를 관리ㆍ운영하고 출입국심사에 적용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차별과 차별의 끊임없는 재생산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한국의 몇몇 활동가들이 일본에서 개최되는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기 위하여, 일본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일본에서의 출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왕성한 정치활동[노동운동]을 했던 활동가들이고, 일본에서 정치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추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일본의 출입국심사대 공무원이 어떻게 한국에서의 활동경력에 대해 알고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아마도 양국 간에는 그러한 내용의 정보를 교환한다는 약속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미국과는 그와 같은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비자면제의 대가로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범죄경력자들의 지문정보를 요구했고, 그렇게 넘어간 지문정보들은 지금 이 순간 미국의 출입국심사대에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국민의 지문정보를 그렇게 넘기는 정부가, 당연히 새롭게 보유하게 될 외국인들의 지문정보도 다른 국가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결국에는 각 국이 보유하고 있는 블랙리스트를 서로 교환하고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될 것이고, 세계는 하나의 기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일류시민과 배제된 자들. 누군가는 공항의 VIP라운지를 이용해 국경을 넘는 동안에, 누군가는 출입국공무원들에게 잡혀서 폭력과 폭언을 당하다 강제추방을 당해 국경을 넘게 될 것입니다. 데이터베이스는 폭력이자 권력이고 차별입니다. 우리 모두 그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기 위해서 숨 막히는 복종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문찍기와 범죄수사

마지막으로, 당신과 법무부가 채취하는 지문들을 범죄수사에 이용할 예정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매우 놀라고 있습니다. 외교통상부가 전자여권에 지문을 삽입하기 위하여, 지문찍기가 인권침해라고 인식되어 있는 것은 "지문과 범죄를 연관 짓는 막연한 관념에 근거한 것"이고 "지문은 본인확인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거짓말로 국회와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는 동안에, 법무부는 지문을 범죄수사에 이용할 것임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주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지문채취가 시행되고 논의되고 있지만, 범죄수사에 이용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국가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부 국가에서는 본인확인의 용도 이외에 범죄수사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 국민의 지문을 채취하여 매우 손쉽게 범죄수사에 이용해오던 관행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OECD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그 목적이 명확해야 하고, 보관기관과 폐기시점이 정해져 있어야 하며, 정보주체에게 열람ㆍ정정ㆍ삭제 등의 권한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수집한 지문이 언제 폐기되고, 누가 관리ㆍ감독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정보주체의 권한 등은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범죄수사를 위해서 사용할 계획임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문을 수집하고 있는 이 국가의 폭력성과 그것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범죄수사에 사용하는 이 국가의 관행을 전 세계에 고발할 것입니다. 새로운 개정안이 이러한 제도를 외국인들에게 확대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 이상, 다른 나라의 정부들과, 세계의 인권기구들도 이 사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과 법무부의 새로운 계획을 철회할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한국이 시작하고 나면, 중국, 인도, 동남아의 국가들, 중동의 국가들도 동일한 제도를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지문을 찍어야 되는 세계가 살만한 세계는 아닐 것입니다. 지구별의 어떤 여행자도 그렇게 굴욕적인 방법으로 지구를 여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행자들을 정중히 맞이할 수 있습니다.



출입국관리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반대하는 전국 17개 인권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불교인권위원회,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전북인권교육센터,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광주인권운동센터, 새사회연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인권운동사랑방, 다산인권센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