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평 부스·탄광 병원… 대한민국 인권 리포트
[한국일보 2006-03-10 18:51]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정부가 인권 보호를 표방하면서 법적, 제도적 장치가 갖춰지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어느 정도일까.

‘길에서 만난 세상’은 우리나라 인권의 실상을 담은 현장 보고서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연재물을 모은 것으로, 차별받고 소외된 사회 약자의 기록이다. 당사자의 생생한 육성이 묻어나오고 일상에 안주하려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저자 박영희는 시인, 오수연과 전성태는 소설가이며 사진은 김윤섭이 맡았다.

주차 관리원 신모씨. 지하주차장 입구 0.3평 가량 되는 좁은 부스가 그의 일터다. 사흘에 하루 24시간 근무, 나머지 이틀은 주야간 교대 근무. 이렇게 해서 버는 실수령액이 월 77만원이다. 냉난방도 안 되는 그 공간에는 신씨 말고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종로 1가에서 0.75평 신문 가판점을 하는 김형주씨. “감옥이 따로 없지. 이 안에 갇혀서 세상 구경 못하고. 갑갑해. 30년을 이 안에서 지내다 보니 아픈 몸만 남았어. 발을 제대로 못 뻗으니 무릎이 성치 않고, 조그만 창으로 손님을 맞아야 하니 목이 또 안 좋아.”

신정4동의 김씨 할아버지. 오전 8시30분 할머니와 집을 나선다. 지하철을 타고 탑골공원을 찾았지만 오래 있기는 어렵다. 나무 의자가 돌 의자로 바뀌는 바람에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불편하다. 할아버지는 1990년부터 탑골공원을 다녔다. 그때 나이 예순 일곱. 할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인데 고향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공원을 찾았다. 1ㆍ4후퇴 때 가족을 남겨두고 내려왔는데 할머니에게 숨기고 처녀 장가를 들었다.

내외는 10년 전부터 점심을 먹지 않는다. 악착 같이 돈을 벌었지만 아들이 다 날렸다. 그 아들은 마흔이 넘었지만 결혼도 못한 채 함께 살고 있다. 가족이 있어서 생계 보조금은 받을 수 없다. 점심은 그래서 끊어버렸다. 둘의 외출은 끊임없이 걷는 것이다. 앉아 있으면 먹는 것 생각나고 심사가 복잡하니 무릎이 허용하는 한 걷는다.

경로우대증이 있어서 고궁은 무료다. 종묘 창경궁 경복궁 서울역사박물관 이렇게 들르면 오후 네시 반이다. 할아버지는 오래 사는 게 수치스럽다고 고백한다.

일제시대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일본 여자들. 필자들은 고민 끝에 그들을 찾아간다. 가해국 출신이지만 한국에서 이들은 소수자로 인권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서울 외곽 허름한 단칸방에 혼자 사는 아오키 츠네 할머니. 일본 삿포로 출신으로, 일제시대 한국인 하숙생과 결혼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시집 형편은 끔찍했다. 남편은 술독에 빠졌고 손찌검을 했다. 한국전쟁 동안 할머니는 구걸로 아이를 키웠다. 남편을 피해 집을 나왔으나 아이들 때문에 일본에 가지 못하고 대신 막걸리 집을 냈다. 집도 장만했지만 이번에는 둘째 아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을 두고 나간 어머니라며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욕설을 퍼부었다. 할머니는 아들을 피해 서울로 도망쳤다. 26년 전이다.

할머니와 같은 일본인 처들은, 현행 국적법에서 비켜나있다. 양국 어느 정부도 국적 정리를 해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쪽바리’ 소리를 듣지 않도록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할머니도 많다. 이들은 한국인을 사랑해서 한국에 왔다. 하지만 애국주의와 자민족주의, 국가와 개인, 과거와 현재가 한데 섞여 우리 사회는 이들을 껴안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적 노동자, 노동 착취에 시달리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힌 한국의 무슬림, 낯선 문화 속에서 남편과 살고 있는 동남아 출신 여성, 진폐증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광부, 중국인 노동자와 경쟁하는 여성 봉제 노동자, 생태계 보호라는 미명 하에 생계를 위협받는 어부의 삶도

책에 나오는 약자의 모습이다. 문화적 소외를 겪는 농촌 청소년,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0교시 수업에 참가해야 하는 청소년 등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인권 약자들이다. 각 글의 말미에는 ‘못다한 이야기’ 코너가 있어서 작가들이 느낀 감상과 뒷얘기를 담았다. 이웃에게 관심을 보이고 타인의 인권도 존중하자고 책은 말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아이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405 news scrap 민주노총, GS칼텍스 '불매운동' 총력 선포 5
MTU이주노조
2006-04-03 8736
404 news scrap 안산이주실천연대 이주노동자 탄압중단하라
MTU이주노조
2006-03-28 8757
403 news scrap 두바이 세계최고층 건물 건설현장서 폭동 10
MTU이주노조
2006-03-27 8782
402 news scrap 전비연·한비연,이주노조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7
MTU이주노조
2006-02-22 8789
401 migrant worker 노동자는 역사의 주인이다 7 file
MTU이주노조
2006-01-27 8798
400 migrant worker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 - 홍세화. 8 file
MTU이주노조
2005-12-29 8802
399 news scrap [기사]이주노동자 인권탄압 규탄 기자회견 20051206
MTU이주노조
2005-12-06 8811
398 news scrap '근로계약'이 '노예계약'이 돼선 안된다 7
MTU이주노조
2006-01-28 8812
397 news scrap 韓-우즈벡 '전략적동반자' 선언
MTU이주노조
2006-03-31 8814
396 news scrap 12.30 Interview with MTU in K. Times 10
no chr.!
2005-12-30 8817
395 propaganda [051030유인물]10월30일 투쟁대회때 사용할 유인물입니다. 7 file
MTU이주노조
2005-10-26 8822
394 news scrap 민주노총, 비정규직 법안 통과 막기 위해 끝장집회 한다 9
MTU이주노조
2006-03-02 8824
393 news scrap 하늘로 간 24살 ‘코리안드림’ -보도 출처;[서울신문] 6
이노방
2006-01-06 8840
392 news scrap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인간사냥’ 6
MTU이주노조
2006-03-01 8841
391 news scrap 죽음의 단속추방정책을 걷어치워라 6
MTU이주노조
2006-03-05 8841
390 news scrap [기사 사설]인권위조차 외면한 ‘이주노동자 인권’ 8
MTU이주노조
2005-11-29 8845
389 migrant worker 글로벌 사회 속 노동의 그림자 6
MTU이주노조
2006-02-15 8847
388 news scrap 법무부 자진귀국 프로그램 시행 후 ② 중국동포 50만명 입국 전망
MTU이주노조
2006-03-03 8848
387 news scrap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 '구멍' 5
MTU이주노조
2006-02-06 8849
386 news scrap 이주노조 아노아르 위원장 일시보호해제 신청 기각돼
MTU이주노조
2006-02-09 8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