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밴드 "노래를 멈출 수 없어요"
오는 21일 대학로서 손현숙 & 스탑크랙다운 인권콘서트 개최
텍스트만보기   김대홍(bugulbugul) 기자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 기계 사이에 끼여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의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 영화에서 본 미국상가처럼 외국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 선진조국의 종로거리엔 나는 ET가 되어 얼마간 미친놈처럼 헤매이다 /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 박노해 '손무덤' 중에서

▲ <밥 자유 평등 평화> 기획단과 한국민족음악인협회가 주최하는 손현숙 & 스탑크랙다운 인권 콘서트. 21일 서울 대학로 정림마당에서 열린다.
ⓒ 민음연
시인 박노해가 1984년에 펴낸 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렸던 시다. 저임금과 장기간 노동에 시달렸던 그때로부터 20~30년이 지났다. '귀족 노동자'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국의 노동조건은 좋아졌다. 그렇다면 기계에 팔이 날아가도 아무 말 못하던 그 시절은 과연 사라졌을까.

오는 21일 서울 대학로 정림마당에서 열리는 '손현숙 & Stopcrackdown 인권콘서트-밥자유평등평화'는 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날 무대에 설 스탑크랙다운(Stopcrackdown)은 이주노동자 밴드다. 네팔 출신인 미누(보컬)와 버마 출신인 소모뚜(기타), 소띠하(베이스), 꼬네이(드럼) 그리고 인도네시아 출신인 해리(키보드)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됐다. 2003년 12월, 태평로 성공회교회 농성 천막에서 인간다운 권리를 외치던 이주노동자 몇몇이 의기투합해 만들어졌다.

당시 농성장에서 외치던 구호, 스탑크랙다운(탄압을 중단하라)은 팀 이름이 됐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미누는 한국에 온 지 13년째다. 지금은 동대문 봉제공장에서 일한다. 소모뚜는 불법 체류자 신분이다. 버마 민주화를 간절히 소망한다. 꼬네이는 체류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하다. 해리는 지난해 4월 초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됐다. 한국에서 결혼한 소띠하는 예쁜 딸까지 낳았다. 요즘 산업연수생들에게 일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이 이번 공연에서 박노해의 '손무덤'을 부른다. 과거 한국 노동자들이 겪었던 현실을 고스란히 자신들이 이어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여 잘 가시게'라는 노래도 부를 예정이다. 얼마 전 사망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에게 바치는 노래다.

▲ 이주노동자 밴드인 스탑크랙다운.
ⓒ 스탑크랙다운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설 손현숙은 민중 록그룹 '천지인'에서 '청계천 8가'를 불러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는 2004년 정기공연을 준비하다 명동성당에서 투쟁하던 스탑크랙다운과 만났다. 이후 '2005 노래마라톤'에서 공연을 하며 교감을 나눴다.

그는 하반기 싱글 앨범에 담길 곡을 부른다.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가 대표곡. 이번 공연의 취지와 잘 어울린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버마 노래 '어머니의 집으로'를 번안해서 부를 계획이다.

▲ 손현숙과 스탑크랙다운.
ⓒ 민음연
손현숙과 스탑크랙다운은 이번 공연을 통해 국적을 넘어서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질문을 던질 방침이다. 이번 콘서트를 개최하게 된 이유다.

"서로 소통하는 문화의 향기는 언어와 피부색을, 그리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섭니다."

이들은 피부색을 따지며 너와 나를 가르는 세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날 행사에서 신곡 '사랑으로 함께 해요'를 선보이고, 문화노동자 연영석이 우정출연해 '코리안드림'을 들려준다. 또한 다큐영상 '이 땅에서 이주노동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네팔의 민속춤 등이 어우러질 예정이다.

한편 행사수익금은 아시아인권연대의 '꼬마도서관' 건립사업에 쓰인다. '꼬마도서관'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이동도서관. 기금을 모아 고정 공간을 만든다는 게 주최 측의 생각이다.

"이주노동자 정책에도 양극화 나타나"
[미니 인터뷰] 스탑크랙다운과 두 번째 무대 마련하는 손현숙

- 2005년 노래마라톤에서 스탑크랙다운과 공연한 뒤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공연의 연장선상에서 마련된 행사인가?
"노래마라톤 이전에 이미 같이 하기로 했는데, 행사가 잡히면서 함께 하게 됐다. 지난해 공연 반응이 좋아 다시 한 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있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서 좀더 이주노동자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이주노동자들은 직업상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연습을 했나.
"주로 일요일만 연습했다. 나머지는 평일 9~10시에 만나서 연습하고…. 같이 연습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 공연을 계기로 서로 더 움직이게 됐다."

- 이번 공연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밥·자유·평등·평화'다. 구체적으로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인식을 바꿔보자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초대해서 한국 관객들이랑 만나게 하는 교류의 장으로 기획했다."

- 요즘 이주노동자 문제가 언론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탄압은 계속되고 있지만, 언론에 많이 알려지면서 한편에선 유화정책이 이뤄진다. 이번에 우리가 문예진흥기금을 받았는데, 그런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선 양극화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스탑크랙다운이 현재 이주노동자 밀집 공단 지역에 찾아가서 야외 공연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단속이 심해지면서 관객 동원이 힘들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서 고심 중이다."

- 다큐영상은 어떤 내용인가.
"집회에서 보이는 이주노동자 말고 다양한 그들의 모습을 담았다. 한국 여자랑 결혼해서 사는 모습, 공장해서 노동하는 모습, 활동가로서 지내는 모습 등. 그 영상물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이주노동자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김대홍
손현숙 & 스탑크랙다운 인권콘서트. 5월 21일(일) 3시/6시 대학로 정림마당. 02-735-8035.
2006-05-0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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