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

비한국계1)를 중심으로

윤혜진

1. 시작하는 글

1980년대 말 이후 약 15년 동안 한국의 3D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의 대부분은 외국으로부터 한국에 건너온 이주노동자2)이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는 지난 한 세기 이상 동안 한국의 경제, 특히 중소기업의 경제를 지탱할 수 있었던 생산 기반층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이 불법체류(미등록) 신분이기 때문에 사회․인권적으로 소외된 마이너리티(minority)로서 한국 내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 상담 및 지원을 위한 종교 및 인권 단체들은 이주노동자가 겪게 되는 인권유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단체들은 노동 상담과 산재 상담 등을 하면서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복지에 관하여 고민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가 이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논의 및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연구의 주제들은 대부분 사회적, 인권적, 노동권적 혹은 선교적 관점에서 접근되어 논의된 것으로3) 문화에 대한 관점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하여 연구된 바는 아직 없다.

이주노동자들의 나라별․종교별 공동체 모임이나 지원 단체의 행사는 일종의 문화적 결집력에 의해서 형성되고 있기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화적인 접근은 그들의 실제 한국에서의 삶 자체를 투영할 수 있다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안산, 마석 등 다국적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지역들에서는 한국의 문화와 차별되는 새로운 문화권이 형성되고 있고 중국 동포들이 주로 밀집되어있는 가리봉동 지역에는 중국인 상가 및 음식점이 중국간판을 이루어져 있으며, 이외 다른 지역들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밀집형태들은 한국 내의 또 다른 문화권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문화는 한국인과 이주노동자의 입장에 따라서 문화전파나 혹은 문화적응의 측면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이 두 측면 모두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문화적 소통이라는 의미 안에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이제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문화적 관점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내의 다국적 민족이 이루고 있는 음악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음악문화를 좀 더 역동적인 고리의 연결로 투영해 볼 수 있는 논의가 될 것이며, 이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에 대한 좀 더 다양하고 의미 있는 관점을 제시할 것으로 본다. 주요 연구 내용은 이주노동자의 현황과 실태를 문화의 수용과 갈등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주노동자 음악문화를 논의함으로써 한국의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입장에서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문화 간의 소통에 대하여 밝히는 것이다. 본 연구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제 2장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현황과 실태; 제 3장 이주노동자의 문화충격과 적응; 제 4장 이주노동자 문화의 의미; 제 5장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 제 6장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문화 간의 소통; 제 7장 마무리하는 글.

2.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현황과 실태

한국은 80년대 3저 호황4)과 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상황으로 인해 국민소득이 상승하게 되면서 국내 노동인력들의 3D업종 기피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3D업종의 인력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5) 외국 인력이 3D업종에 불법 취업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출입국에 대한 규제 완화, 한중수교 이후 중국 거주 교포의 모국방문 등의 허용, 그리고 1991년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사증 발급 등에 관한 업무지침’에 근거하여서 현지 고용 인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외국인노동자대책 협의회 2001: 139-40).6)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으로는 단순기능 외국인력 수입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3D 업종의 인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 인력을 도입는 것은 불법이었다. 오늘날 현재 약 35만 명에 이르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불법 체류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외국인노동자대책 협의회 2001: 100-1 ).7)

1)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현황

법무부(출입국관리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표 1>,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숫자는 2002년 말 현재 336,955명에 다다르고 있으며, 이 중 해외투자법인 연수생 (Industrial trainee) (외국인 노동자 대책 협의회  2001: 141)8)이 35,799명, 산업연수생(Employment trainee)이 13,027명, 그리고 나머지 약 287,629명은 모두 등록되지 않은 불법체류자(미등록자)이다. 하지만 2001년 7월 법무부, 노동부 등 관계기관의 자료에 의하면 총 16만 7천 190명의 산업기술연수생 조차도 약 20%인 3만 4천 62명이 연수현장을 이탈하여 합법적인 신분을 포기하고 불법노동자를 선택하였다(외국인노동자대책 협의회 2001: 100-1 ). 즉 연수기관인 중소기업은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의 고용이라는 인식 아래서 그들에게 저임금을 지불하였는데, 이른바 코리안드림을 가지고 한국으로 건너온 산업연수생인 이주노동자에게는 불법선택만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법무부의 통계 수치에서 나온 연수생 신분의 노동자 또한 불법노동자의 신분으로 전환되어가고 있으며, 불법노동자의 수치는 집계된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곳곳에 형성되어있는 이주노동자의 밀집지역은 대부분 불법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2)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나라별․성별 분포

나라별로 이주노동자들의 분포를 살펴보면<표 1>, 중국 169,972명, 중국 조선동포  84,670명, 인도네시아 24,117명, 태국 22,028명, 필리핀 21,992명, 베트남 19,082명, 그리고 방글라데시 18,008명 그리고 기타 몽고,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이란, 카자흐스탄, 미얀마, 그리고 그 외 나라들이다.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압도적인 분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시아주계이며 남녀성별에 있어서 여성은 전체 이주노동자의 34.9%에 이르고 있다.10)

<표 2>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나라별․성별 분포 현황 (2002년 현재)11)



3)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자녀 현황

현행법상 자녀동반이 금지되는 산업연수생 보다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노동자)12)들이 한국 내 자녀들을 동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국가인권위원회 2002: 199), 특히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약 3천 명이며 그 중 취학연령층은 약 1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인 부모가 불법으로 미등록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동들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것은 UN이주노동자권리조약 제 30조(자녀의 권리)13)를 위반하는 것 일 뿐 아니라 도의적인 차원에서도 묵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 NGO단체들 및 정부 기관들이 이주노동자의 자녀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법적으로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학교의 양해로 학교수업을 받는 경우도 있고 이주노동자 자녀들만을 위한 초등학교가 임시적으로 설립되고 있다. 재한몽골학교는 일반 초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초등학교 및 중학교) 교육을 위해서 1999년도에 세워진 것이다. 한편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국제교육진흥원은 지난 7월 25일 저소득 외국인들의 자녀교육에 도움을 주기 위해 2004년 3월 서울 대학로 진흥원 건물 안에 ‘지구촌학교’를 개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진흥원은 불법체류자의 자녀도 교육 기회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중국·몽골·동남아 출신 불법체류자의 자녀를 최대한 수용할 방침을 밝혔다. 교육내용은 해당국 초등교과, 한국어로 진행되는 체육·음악, 한국문화체험 등을 다중언어로써 진행하고 해당국의 수업시수에 맞추어서, 이들 자녀들이 귀국 뒤 편입이나 상급학교 진학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로 했다(문화일보 2003. 7.26).

2001년부터는 정부가 불법체류자(이주노동자)의 자녀에게도 일반 국내 학교 취학을 허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주노동자의 취학연령층의 자녀들은 단지 10%만이 학교 교육을 받고 있을 뿐 90%는 교육권리가 박탈되어있는 상태에 있다. 불법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생기는 것은 한국사회와 학부모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배타의식으로 불법이주노동자 자녀의 일반 국내 학교 취학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 자녀의 취학은 10%대 139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2001년부터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의 자녀에게도 국내 학교를 개방했지만, 1천여 명의 취학 연령 대 어린이 가운데 국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은 불과 139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생략) 학교 급별로는 초등학생이 131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과 고교생은 각각 6명과 2명이었다. (중간생략) 30만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는 3천여 명이고 이 가운데 취학 연령 대는 1천여 명으로 추정돼 10명에 8~9명꼴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한겨레신문 2003. 9. 24).

3. 이주노동자의 문화충격과 적응

1) 이주노동자의 한국 유입에 따른 이국인의 문화충격 및 적응

제 2장에서 간단하게 기술한 바와 같이,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수치는 1980년 대 말 이후에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노동자)의 비율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상당부분이 아시아계라고 할지라도 한국에서 그들이 부딪히는 문화적 충격은 매우 크며, 그 적응과정은 노동의 성과 및 한국 생활의 성패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무엇보다도 이주노동자가 비합법적 신분인 미등록상태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합법적인 신분의 다른 외국인과는 현격하게 다른 양상의 문화적 충격과 적응을 가지게 되며 또한 사회약자로서의 모든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국에 적응하게 되는 불균형적 현상을 내포하게 된다. 호프슈테드(Geert Hofstede)는 한 사람의 외국인이 새로운 문화환경과 만났을 때 심리적․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어떠한 형태로든 ‘문화충격’을 체험하는데, 마치 낯선 이국문화 속에 들어와서 유아기적인 정신상태를 가지고 새 환경에 대한 적대감, 고통, 혹은 무력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이국 문화환경을 경험하는 타국인은 문화적응곡선을 가지게 되는데, 즉 단계 1은 황홀감의 시기로서 짧게 지나가는 기간이며 단계 2는 문화충격(cultural shock)의 시기로서 실제 이국생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단계 3은 문화적응(acculturation)시기로서 현지의 사회에 적응하면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갖게 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단계 4에서는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정신적 안정상태(stablestate)를 갖게 되는 것이다(Geert Hofstede 1995: 298-9).

이 마지막 단계인 안정상태가 타문화 적응이 완결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이때 나타나는 것이 타문화배척, 혹은 무조건적 순응의 극단적인 형태 등으로 드러날 수도 있으며, 또는 타문화와 자국문화의 공유로 타국에서의 새로운 자국문화를 생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충격과 그에 따르는 적응과정에서 일어나는 신체적․정신적 발병인 ‘고향에 대한 향수병’은 문화적응의 안정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지라도 항상 타국인이 보균하고 있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적응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에는 고든(Gorden Milton)에 의해서 발전된 동화이론(assimilation theory)(설동훈 1996: 11)14)과 갈등이론(conflict theory)으로 대별되는데. 동화이론은 이주노동자가 타국 적응 초기에는 현지 내국인과 갈등을 가지기도 하지만 점차 그들의 문화․언어 등을 잃고 결국엔 유입국 사회에 동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이론은 이주노동자가 소수민족 밀집거주지역으로(ethnic enclave)서 그들만의 집단을 형성하여 주류사회와 갈등관계적 위치에 서 있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Heisler 1992: 623-45; Feagin 1989: 25; 이번송 외 1995: 26-8).15)

호프슈테드(Hofstede)와 고든(Gorden)등이 제시하는 문화적응이나 동화 및 갈등이론은 이국인이 타지에서 문화충격과 적응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문화권에 동화될 수도 있고, 갈등관계로 대립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다른 합법적인 이국인(여행객 및 방문객)과는 달리 이미 사회 약자의 신분을 가지고 한국문화에 타의적으로 적응하는 면이 강하기 때문에 문화적응의 현상은 동화 보다는 갈등구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구조가 한국인과의 대립구조보다는 소수 민족들 간의 단결과 결속을 강하게 한다(설동훈 1995: 11).16)는 점에서 본다면, 이주노동자와 한국 문화 간의 갈등구조는 이주노동자 특징적인 개별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인 이주노동자 공동체 결집의 필요성을 야기 시켰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동화이론에 따라 이주노동자가 한국 문화에 적응을 한다면, 그들이 자국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한국의 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라갈 것이며 결국에는 심리적․육체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는 이주노동자들 개별적인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일정 노동 기간 이후에 본국에 돌아갔을 때에 극심한 정체성 혼돈이 일어날 수가 있는 우려가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표 2>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인들이 한국에서 겪게 되는 문화충격과 적응의 과정은 유럽과 아시아 간의 동서양의 문화대립처럼 표면적인 극단성으로 나타나지 않을련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좀 더 면밀하고 민감한 문화적 요인들과 연합되어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아시아권의 각기 문화에서 개별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전통적인 관습과 정통성의 유지는 일련의 터부(Taboo), 종교적 혹은 문화적 금기사항 등과 연관되어있다. 더욱이 불법이라는 불안전한 신분으로 3D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는 문화충격 및 적응단계에서 타의적으로 문화적 관습이나 종교적 실천내용을 어겨야만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아시아계(비 한국계) 이주노동자의 한국 문화 적응은 한국사회의 소수자의 차별 극복이나 각기 소수문화 전통의 유지의 두 문제들을 함께 극복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이주노동자의 한국문화적응 과정에서 나타난 소수민족별 공동체 형성

한국 내의 이주노동자들 중에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Muslim)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쏼라 Salah)를 드리는 종교적 행위가 있으며, 하랄(Halal)17)을 거치지 않는 고기와 알코홀은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절대 먹지 않는 종교적 금기가 있다. 그러나 주로 한국의 3D 업종에서 근로기준법에 상정된 근무시간 이상을 일하는 대부분의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이 하루 다섯 번의 기도시간을 지키거나 하랄을 거친 고기를 매번 구해서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종교 생활을 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고 있는데, 이들에게 있어서 안정과 평안을 주는 장소는 모스크(Mosk 이슬람사원)이며,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믿음과 행위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한국사람이 아니라 같은 무슬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밤이면--그것도 주말 연장근무가 없는 때--인천, 수원, 성남 등지에서 일하고 있는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으로 모여서 하룻밤을 자고 일요일 예배까지 드리고 또 다시 고된 일상의 장소로 돌아간다. 이 기간 동안 많은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은 종교생활 뿐 아니라 한국 생활에서의 충격과 적응, 그리고 어려움 등을 함께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공동체 모임을 가지게 된다.

다른 종교에 비하여 종교적 금기가 많은 이슬람 외에 주로 천주교를 신앙으로 가지고 있는 필리핀 이주노동자에게도 주일미사는 종교 모임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힘든 노동과 생활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모임의 성격을 띠게 된다.

한편 이주노동자들은 종교적 모임과는 별개로 소수 민족별 공동체 모임을 결성하고 있다. 초기에는 종교단체 및 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 등과 같은 이주노동자를 돕는 센터들의 지원으로 나라별 공동체가 결성되었지만, 이후에는 개별적이고도 능동적인 이주노동자들의 참여와 인식으로 나라별․지역별 공동체가 생겨나게 되었다. 1992년 9월 필리핀 공동체(Filipino Community)와 삼빠기타 필리핀 공동체(Sampaguita Philoppines Community)를 시작으로 1993년 네팔인 자문위원회(Napalese Consulting Commitee: NCC), 1995년 3월에는 '중국노동자협회'를, 그리고 그 이후 방글라데시 협회(Bangladesh Association)와 미얀마협회(Myanmar Association) 등이 결성되었다. 이주노동자의 64.6%가 자국인의 정기모임을 갖고 있을 정도로 약 35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나라별․지역별 공동체를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다(설동훈 1995: 170-3). 흥미로운 것은 한국계나 산업기술연수생과 같은 비교적 안정된 신분의 이주노동자보다 비한국계나 미등록이주노동자(불법체류이주노동자)들이 공동체 모임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불법신분의 이주노동자의 심리적 불안감과 불안정함이 자국 커뮤니티 구성 및 자국의 문화형성, 혹은 이주노동자들 간의 연대로 이끌게 되었으며 특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나 문화는 타국에서 자국 민족간의 연대를 견고하게 이끌 수 있는 매개체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이주노동자 문화의 의미

1) 한국 문화에 있어서 이주노동자 문화의 의미

한국은 아시아의 국가들 중에서 문화적 동질성으로 형성된 나라라고 볼 수 있는 반면에 중국과 베트남과 같은 국가들은 확실한 지배문화집단의 존재와 이질적인 소수문화집단을 가진 나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싱하라와 타밀의 두개의 큰 문화의 대립과 함께 이슬람교도와 베다와 같은 소수 문화집단이 존재하는 스리랑카, 중심문화집단과 다른 여러 이문화(異文化)집단으로 구성된 태국, 네팔,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들, 그리고 여러 소수 문화집단이 병존하는 필리핀과 인도 등(아오키타모츠(靑木保) 2002: 85-8)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이 속하는 대부분의 아시아권의 나라들은 한국의 단일한 문화 형태와 다르게 이중적 혹은 다중적 문화형태를 가지고 있다.

위와 같은 이문화 공존을 가지고 있는 여러 소수 문화권에 속해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내에서 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자국의 문화를 가지고 유지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주 생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50-60대의 한국민에게는 이제까지 유지해왔던 단일 문화적 전통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었고, 이에 반해 20-40대의 한국인은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구호 혹은 열린 사고로 인해서 이주노동자의 문화를 거부감 없이 지켜볼 수 있다고 파악된다. 실제로 50-60년대의 장년층이 사회중심 세대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에 들어서 이주노동자의 축제라는 이름으로 문화행사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의 시대적․사회적 관점의 변화 뿐 아니라 사회활동의 중심세대가 교체되어가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관련한 지원 및 도움을 주는 센터들이 주로 20-40대에 의해서 형성되어왔고, 특히 20대-30대의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관심과 참여를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한국 문화에서 이주노동자 문화를 한국 안의 소수 문화로서 인식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2) 이주노동자의 문화에 대한 논의

음악문화라는 개념은 청각적 생산물인 음(音)과 이러한 음을 공감각적 연결과 깊이로 이끄는 악(樂)이 종교, 사회, 철학 등으로 일구어진 문화적 특성과 총체적으로 연합되어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의’ 음악문화라고 하는 것은 음악을 그 대상과 주체의 이중적 관계로 설정하여 파악해야 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단일 문화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주노동자의 유입으로 새로운 복합 문화권을 내포하게 되었다. 엄격히 말하면 한국의 경제 운영 원리에 의해서 단순근로자층이 한국노동자에서 이주노동자로 이전됨에 따라 사회구조에 변화를 가지게 되었고,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불법체류)의 신분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언급해오지 않아왔을 뿐 한국 내 이주노동자 집단은 한국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구성체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이들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관심으로 증폭되게 됨에 따라 다방면의 지원과 도움이 모색되는 동시에 이주노동자가 비공식적으로 형성한 한국 내 특수한 문화가 점차로 공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문화가 한국 문화권 안의 소수민족의 문화라기보다는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변방에 숨죽이고 있는 사회약자의 문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들의 문화는 이주노동자들의 한국 내 생존과 안정을 위한 단결 및 결집성에 의해서 특수하게 형성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소수민족의 문화의 의미와는 구별되어야한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문화를 이루는 주된 내용은 주로 나라별․종교별 구성되는 공동체 모임에서 연행되는 음악문화(주로 노래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의 노동의 힘든 삶을 위로하고 공동체적 결집성을 나타내는 가장 현실적 수단이 바로 음악(노래)이기 때문이다.

5.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18)

한국 내 이주노동자에게 있어서 음악은 미학적으로 향유하는 대상이나 예술적 감성의 깨달음을 위한 대상이기 보다는 타국 삶의 여정을 위로하는 향수병 치료제이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정신적 탈출구라고 할 수 있다.

나라별 공동체 모임이나 전통 행사는 자국에 대한 억눌려왔던 그리움을 함께 나누는 공간인데, 주로 자국의 음악과 노래가 그 주를 이루게 된다.

한국에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비교적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그들이 자국문화나 음악을 유지하고자 하는 측면은 전통문화에 대한 고수나 정통성 유지라는 신념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기 보다는 한국에서의 노동과 삶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자국 전통(민족적․개인적)이 주는 편안함에 대한 추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자국에서 자국음악을 즐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타국에서 듣는 자국의 음악은 상상치 못할 편안함과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있어서 음악에 대한 정서라는 것은 자국에서의 안정된 상태에서 감응하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심리학적 정서 이론의 중심적 명제인 “정서 즉 정감은 반응하려는 경향이 저지되거나 금지될 때 발생한다”(Leonard B. Meyer 1991: 13.) 에서 주지하는 바를 염두에 둔다면, 아마도 타국에서 자국의 음악을 접했을 때 일어나는 정서적 감응은 자국에서보다 강하게 일어날 것이며 이러한 감응에 대한 동질감은 타지에서의 자국 공동체의 결집을 강하게 엮어내는 데에 주요한 부분을 담당할 것이다.

한편 나라별 공동체 모임과는 별개로 여러 나라별 혹은 종교별 공동체가 함께 어우러져서 이주노동자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행사가 열리게 되면, 그들의 공통되는 문화적 고리는 다름 아닌 한국 대중가요이다. 한국어의 의미를 정확하게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의 타지생활을 위로할 수 있는 감성적 선율을 지닌 한국 대중가요는 이주노동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 문화 중의 하나이며, 이를 통해서 이주노동자들 간의 소외감과 설움을 서로 함께 보듬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에 복수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민’에 대하여 사회 소수자이면서 약자로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있어서 ‘노래’라는 것은 한국의 노동과 삶의 현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음악 문화의 내용이며 한국음악문화와 이주노동자 문화간의 문화 소통의 매개체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의 문화행사에서 공연되는 춤과 음악에 있어서 자국의 노래와 한국의 대중가요는 행사의 핵심이자 그들 음악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이주노동자의 공동체 모임은 나라 및 종교에 따라서 형성되는데, 이들 공동체 모임의 특성과 맞물려서 그들의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선 나라별 공동체 모임이나 전체 이주노동자 모임에서는 자국의 노래와 한국 대중가요가 음악문화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종교별로 형성된 공동체 모임은 그 성격에 따라서 향유하는 음악문화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나라별 음악 특징에 따라 드러나는 특성과는 구분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한국 내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종교 생활의 실천 및 적응이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를 형성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종교의 기능주의적 접근에서 볼 때 종교가 사회통합의 요건 중 하나라는 점은 자명한 것이며19) 이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결집과 공동체 모임의 결성의 요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바이다. 본 장에서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를 각국의 문화적 특성과 연관한 종교문화권에 의해서 구분하고 또한 이주노동자의 세대구분으로 살펴봄으로써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를 논하고자 한다.

1) 종교 문화권 구분20)에 의한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

(1) 카톨릭 문화권에 속해 있는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 필리핀

카톨릭 문화권에 속해 있는 대표적인 곳은 필리핀이며 이곳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카톨릭을 종교로 가지고 있다.

국내 필리핀 이주노동자 공동체의 위원회 구성을 보면 예배위원회, 음악부(ministry), 봉사위원회, 청소위원회, 뉴스위원회, 스포츠위원회, 오락위원회, 교육위원회, 응급위원회, 구호물자위원회 등으로 구성되어있다(설동훈 1995: 171 재인용).21) 여기서 예배 및 음악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요 위원회의 내용으로 설정이 되어있는 것은 카톨릭 예전인 미사(Mass)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음악, 특히 노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사를 이루는 미사음악 뿐 아니라 특별 찬송의 경우 CCM이나 팝송(pop song)을 원어(영어)로 그대로 부르거나 따갈로어(Tagalog Language)22)로 번안한 것이 많다. 특히 그들은 CCM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이 원어나 따갈로어로 부른다고 할지라도 선율을 공유하여 한국인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이 있다.

특히 필리핀의 자국음악은 카톨릭 의식음악과 서양 클래식음악이 중심적이며, 현대로 들어오면서 미국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스며들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필리핀인이 즐기는 음악은 평균율로 조율된 만돌린(Mandolin), 기타(guitar), 그리고 건반악기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자국어인 따갈로어와 함께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 팝송을 부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음악문화이며, 한국에서는 서구적 선율과 서정적인 느낌을 가지는 한국 대중가요의 선율에 쉽게 친숙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필리핀 공동체의 행사시에는 영어 팝송이나 한국 대중가요를 부르는 문화가 형성되어있는데, 한국의 대중가요 중에서는 신곡이 아니라 주로 ‘만남’처럼 90년대의 잔잔하고 편안한 선율의 가요가 선호되는 경향이 많다.

그러므로 카톨릭 문화권에서 서구의 음악을 즐겨온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내에서 한국 대중음악이나 미국 팝송, 그리고 CCM 등을 접하면서 특별한 이질적 요소를 느끼지 않고 그들의 음악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23)

(2)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이슬람 문화권의 나라들은 방글라데시, 아프카니스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카자흐스탄, 터키, 모로코, 이집트 등이다. 인도네시아, 스리랑카와 터키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비교적 자유롭게 기독교, 천주교, 불교, 혹은 힌두교를 믿는 경우를 볼 수 있으나, 나머지의 국가들에 속한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무슬림(이슬람교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 중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데에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는 집단은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이주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제 4장의 2절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슬람의 성전(聖典)인 코란(al-quraˉn, the Koran)의 가르침에서 지시하는 종교적 의식(행위) 및 금기사항이 한국의 문화적 형태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슬람교도들에게 음악에 대한 논쟁은 이슬람 출현 직후부터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교조 무함마드는 대중음악은 허용했으나 예술음악은 반대했다는 것이 음악사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정수일 2002: 258). 정통이슬람 법에 의하면 종교의식에서 음악은 금지되어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정통 수니파24) 이슬람 국가에서는 현행법상으로 기도시간을 알리는 하루 다섯 번의 외침인 아잔(Adhan)과 코란의 낭송 외에 음악이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이슬람 출현 이전에 구전으로 전해오던 민속음악에 그리스와 페르시아 등 주변국들에서 유입된 음악을 접목시키어서 새로운 이슬람 음악을 창출했고, 종교적 축제에서 부르는 찬가 등이 발전한 것을 볼 때에(정수일 2002: 257)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음악의 역할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피즘(sufism)의 영향을 받은 파키스탄의 카봘리(Quawali)라는 음악은 알라와 무함마드를 찬양하는 노래양식인데, 정통 수니파의 이슬람교도들은 이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파키스탄의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하여서 매주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에 모이는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은 힘든 시간을 내어서 먼 길을 달려온 독실한 신자라고 볼 수 있는데,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들은 자신들이 카봘리나 민속음악을 전혀 즐기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25) 어떤 면에서 본다면, 자국에서 종교음악 외에 즐겼을 지도 모르는 세속음악에 대한 부정은 타지에서의 어렵고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방법을 엄격한 이슬람 법도에 맞추어 나감으로써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인들 중에서도 이슬람 법도를 엄격하게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나 모로코, 터키, 이집트 등 서구 문화에 이미 개방되어왔던 이슬람 국가에 속한 이주노동자들은 자국의 민속음악이나 한국의 대중가요를 즐기고 있다.

특히 방글라데시는 1974년에 인도에서 독립되기 이전까지 벵갈지역(인도 동부 주)의 일부로서 현재 인도의 벵갈주를 포함하여 대(大) 벵갈 (Great Bengal)로 불렸던 지역이다. 따라서 언어도 벵갈주에서 사용하는 벵갈어(Bengali)를 사용하며 라빈드라드상기뜨(Rabindranath Sangit)26)를 주요 음악문화로서 여기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Sonar Bangla(Golden Bengal)"는 타고르 시인에 의한 것으로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방글라데시 민속음악은 인도 벵갈의 민속음악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인도의 힌디영화27)는 방글라데시의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도의 영화가 주로 춤과 노래로 이루어진 일종의 음악극의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무슬림 방글라데시 일반인들이 종교생활 외에 실제 일반적 삶의 여흥에서 춤과 노래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실제로 한국에 있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공동체 모임이나 기타 관련 연말행사에 있어서 그들 자국의 전통음악, 민속음악, 그리고 영화음악 등 흥겨운 노래 선율과 춤이 항상 어우러지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방글라(Bangla)의 어순이 한국어와 같고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는 대체로 한국어를 빠르게 습득할 뿐 아니라 감성을 표현하는 방식 및 정서가 한국인들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주노동자들 중에서 한국생활에 적응을 가장 잘 하며 한국인들과도 비교적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가요를 어느 정도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때 표현되는 정서가 한국인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이태원의 모스크에서 열리는 예배(Salah)에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과 각기 근무 장소 및 개인 숙소에서 개별적으로 --기도시간이 허락되는 경우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음악에 대한 사고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우선 전자는 절실한 교도이거나 혹은 자국에서는 음악을 즐겼을 지라도 한국에서의 어려움을 종교적 믿음으로 극복하고자 신앙을 보수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어떠한 음악도 즐기거나 듣지 않는다. 하지만 후자에 속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의 바쁜 노동과 삶에 의한 스트레스를 각종 모임에서의 노래와 춤으로 해소하는 경우가 많다.

(3) 힌두 및 불교 문화권에 있는 이주노동자

위에서 서술한 카톨릭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과는 달리 불교 및 힌두 문화권에 속하는 이주노동자는 자국의 음악을 중심으로 음악문화를 형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힌두문화권에 있는 인도, 네팔 일부, 스리랑카 일부 등의 이주노동자들 모두는 힌디영화에서 나오는 춤과 노래를 대중적인 음악문화로서 자국에서 향유해 왔으며, 이들은 노래와 춤을 즐기고 표현하는 데 익숙해 있다. 이들은 한국음악(전통 및 현대음악, 대중가요)을 알고자 하는 것보다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힌디영화에 나오는 노래와 춤이 한국에서의 그들의 음악문화를 거의 독점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으로 건너오는 이주노동자의 이동을 통해서 힌디 영화 비디오 등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으며, 인도 유선 TV를 연결해서 뉴스 및 영화를 시청하고 있다. 힌디영화는 단순히 힌디문화권 외에 이슬람 문화권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대중문화 코드 중의 하나라고 평가될 정도로 대중적인 파급력이 매우 강한 것이다.28) 특히 힌디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재미있는 노래 선율과 이 느낌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육감적인 춤은 힌디영화를 즐기는 나라들에서 뿐 아니라 그 나라들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여러 이주노동자의 흥을 높일 수 있는 공통분모라고 할 것이다.

카톨릭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과 비교해 볼 때, 힌두문화권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힌디영화라는 문화코드를 가지고 한국 내에 이문화(異文化)를 차별적으로 형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태국, 몽고, 미얀마 등의 불교문화권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카톨릭․이슬람․힌두문화권의 이주노동자와는 달리 비교적 개별적 취향에 따른 음악문화를 다양하게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이들의 대부분은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한국생활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으며,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최소한도의 심리적 안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공동체 모임이나 행사 보다는 소규모 그룹을 구성하여 자국의 대중가요나 민속음악을 주로 향유하면서 한국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반면 적극적인 음악활동이 한국 내에서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미얀마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인디록 밴드 ‘유레카’가 그것이다.29)

2) 세대로 구분되는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 이주노동자 1세대와 2세대

종교문화권 구분에 따른 각 문화권의 음악문화의 양상과는 별개로 한국 내에 머무르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연령층에 따라서 음악문화에 대한 이해 및 적응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제 2장의 3절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초등학교 연령층의 자녀들은 약 3천명에 다다르고 있다. 그리고 여권을 위조하여서 한국에 건너온 미성년자 이주노동자를 감안한다면 20세 이하의 청소년 이주노동자는 적지 않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제 1세대와 비교하여 볼 때, 사춘기의 시절을 타지에서 보내게 되는 제 2세대는 경제적으로 힘든 것을 체험하기 보다는 같은 또래의 한국 어린이와 어울리면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며 혹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느끼면서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한국어 습득이 아주 빨라서 대부분 초등학교 또래의 이주노동자 제 2세대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뿐 아니라 부모인 이주노동자 제 1세대와 한국인 사이의 통역을 담당하기도 한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해 왔던 이주노동자 제 2세대들의 아이들은 1990년대 후반을 접어들면서 일부 초등학교에--교장의 허가가 있으면-- 취학하거나 이주노동자 지원 센터에서 운영하는 임시 학교에 다니면서 한국어와 한국음악 및 문화를 접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 2세대인 한국 음악문화는 자국의 음악과 이질적이라기보다는 그들 안에 공존하고 있는 하나의 음악문화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동의 교육권리(UN 제 30조)를 지켜야 하는 국가적 의무에서 뿐 아니라 한국의 음악문화가 이주노동자의 제 2세대라는 유통로를 통하여 아시아 전역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자의 제 2세대의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 언급한 바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 교육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 1세대들이 모이는 각 공동체 모임에서 제 2세대들이 접하는 자국의 음악 및 대중음악 외에 한국 내 취학을 통한 학교교육을 통해서 다양한 내용과 한국 문화에 관련한 것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한국의 문화(음악문화)을 습득하는 것은 제 2세대가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문화와 자국으로 귀국한 이주노동자의 문화에 새로운 관점과 전망을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6.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문화 간의 소통

제 4장과 5장에서 제시된 이주노동자의 문화충격과 적응, 그리고 음악문화에 대하여 논의했던 바를 통하여 본 장에서는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문화 간의 소통을 한국의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에서 밝히고자 한다.

타국인이 경험하는 문화충격 이후의 적응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2002: 37).30) 우선 첫 번째는 배타문화(Anti Stranger)현상으로서 한국 문화에 반하여 자신들의 자국문화(Home Culture)를 형성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타문화 몰입현상으로 자국 문화를 무시하고 한국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여 몰입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이중문화 현상으로서 한국 문화를 수용하는 동시에 자국 문화 또한 함께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려는 현상이다.

이주노동자의 문화적응과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현상들을 단순히 문화적 이질성에서 나타난 것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종교적인 내용이나 전통에 관한 문화적인 특성 및 고유성이 함께 연합되어 드러나는 것으로서 총체적 문화 갈등 및 수용의 관점에서 이해하여야만 한다.

한편 앞의 네 가지 현상은 이주노동자가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국인이 이주노동자의 문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으로 파악될 수 있다. 즉, 한국인이 이주노동자의 문화를 바라볼 때, 한국에서의 그들의 문화가 한국문화를 모방한 문화인지, 전통을 철저히 고수하려는 보수적 문화인지, 한국과 자국의 혼합 문화인지 혹은 한국 내 소수문화로 인정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판단 여부는 관찰 대상과 주체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문화적 단일성을 가지고 있는 한국 문화에 있어서 서구문화 수용 이후에 이질적 문화를 수용하거나 포함한다는 것은 여러 논의를 필요로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 15년 동안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는 한국 내에서 이제 고요하게 정착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한국문화 적응과정에서 나타나는 위의 네 가지 현상을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 문화 간의 소통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세 가지의 점진적 발전단계들로 설정할 수 있다. 즉 배타문화 현상과 타문화 몰입현상을 갈등(대립)의 단계로, 그리고 자국과 한국의 문화가 병립되는 현상은 공존의 단계로,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고유한 정체성이 한국 내 소수문화31)로 함의되는 현상을 갈등과 공존의 합일적 단계로서 한국 내 이주노동자 고유문화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1) 갈등(대립)의 단계

갈등의 단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하여 볼 수 있다. 첫째로 이주노동자의 타문화배척 현상으로 나타나는 ‘한국문화 대 이문화(異文化)’적 측면과 둘째로 맹목적 한국문화 추종으로 일어나는 이주노동자문화의 ‘한국문화의 일방적 모방화’이다.

우선 한국문화 대 이문화로 표출될 수 있는 이주노동자의 타문화배척현상(한국문화 배척현상)은 한국문화에서 이주노동자문화를 한국문화에 반(反)하는 이문화로서 여기게 하는 결과로 이끌 수도 있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은 나라별․종교별 공동체 모임이 결성되기 시작하면서 개별적 음악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음악은 공동체 모임에서 단결과 동질감을 결집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었으며 각 공동체 별로 자국음악에 소질이 있는 가수들이 모임의 노래를 가르치거나 이끌어갔다. 그리고 각 공동체 모임에서 유명한 가수들은 다른 공동체 모임이나 이주노동자 행사 등으로부터 초대되기도 하는데, 특히 각 나라들의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행사에는 공동체들 간의 경쟁의식도 보이지만 동시에 다른 공동체 모임의 음악을 같이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동체 모임의 성격은 문화충격이나 생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에 적응하고자 나라 혹은 종교로 뭉쳐진 집단의 의미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한국과 다른 개별적 공동체의 차별성을 극대화시켜 강조함으로써 대립의 관계만을 강조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로 한국 내에 이주노동자 자국의 문화에 대한 애착과 유지에 대한 노력이 오히려 자국에 있었을 때보다도 훨씬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한국 내에 이주노동자의 특징적인 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단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한국문화의 일방적 모방화로 표출될 수 있는 이주노동자의 맹목적적인 한국문화의 추종이다.

자국에서 전통의복을 입고 자국의 음악에 심취하던 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한국에 와서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단계에서 서양현대식의 의복을 입고 한국가요를 주로 부르면서 한국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나라별․종교별 결집력을 벗어나서 개개인이 지향하게 되는 타문화 몰입현상으로서 이주노동자 개인 스스로 내에서 일어나는 자국문화와 한국문화에 대한 갈등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가요를 부르고, 한국문화에 흡수되는 것은, 사회적 적응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사회 내에서 하나의 인정을 받기 위한 정체성 혼돈이라고 볼 수 있다.32)

전자의 측면이 한국문화 대 이문화의 관계라고 한다면 후자는 한국문화 대 이를 일방적으로 모방하는 일종의 하위문화의 관계로만 인식될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

2) 공존의 단계

이주노동자들의 각 공동체 모임은 이미 자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나라별․종교별 고유한 음악문화를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일정기간 이후에 어느 정도 한국의 생활과 노동에 익숙해져가고 한국어를 습득한 뒤에는 한국의 음악문화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허락되는 것이다. 한국인들과 함께 근무하는 노동의 현장 속에서  직장의 쉬는 시간이나 작업 이후의 여가 시간에서 같이 어울릴 때 접하게 되거나 혹은 어울리기 위해서 배우는 한국 가요가 점점 늘게 되는 것이다.

제 4장의 2절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를 이루는 주요 핵심은 순수 기악곡이 아니라 노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갈등의 단계에서 한국 노래(주로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이 한국문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나 한국사회로부터 일종의 인정을 받고자하는 측면이 강했다고 한다면, 공존의 단계에서는 익숙해진 한국의 생활과 언어로 인하여 한국어 가사와 편안하고 감성적인 선율로 이루어진 노래가 자국 노래와 비슷한 감성을 느끼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33)

한편 19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반성하고 그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지원센터 등34)에서 주최하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축제나 행사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음악과 문화를 일방적으로 이주노동자에게 주입시키기보다 그들의 음악문화를 알고 이해하며 한국 내에서 상호 공존하기 위한 움직임이 인권․문화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자국 음악이 한국인과 자국민을 동시에 대상으로 공연되거나 한국의 음악 공연단체가 이주노동자의 모임 및 행사 혹은 이주노동자 초청 기획공연에서 한국음악35)을 감상하게 하는 활동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본격적인 한국음악문화와 이주노동자음악문화 간의 소통은 199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활성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인과 이주노동자간의 소통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음악이 공연된 전국 기획행사와 이주노동자를 위해 기획 혹은 할인․초청된 음악회를 나누어서 정리한 것이다.36)

① 이주노동자의 음악이 공연된 기획/부대 행사

행사명
일시․장소
주된 행사 내용
비고

제4회

안산민족예술제, 외국인 노동자, 문화 예술한마당

(The 4th Migrant

Workers‘ Culture-

Art Festval)
2003.  10. 4-5 안산 초지동

화랑

유원지

야외

공연장
안산지역 시민들과 이주노동자(외국인노동자)간의 상호 이해와 문화적 연대

1.안산시민과 함께 하는 아시아음악여행

  네팔밴드/ 인도네시아 1. Zombie rock band

  2. Indonesia band/ 음악만들기 앙상블/초청공연(한국) 및 영화, 행사

2. 나라별 문화공연 : 파키스탄,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중국, 베트남, 나이지리아 ,몽골

3. 제 4 회 외국인노동자 한국말 노래자랑 경연대회

4. PEACE 평화기원 솟대殿

  외국인노동자들과 안산시민들의 하나됨을

  상징하는 솟대를 세우는 행사

5. 도자기 체험 부스, 한국전통체험, 페이스 페인팅

6. 각국 문화부스운영: 필리핀,태국,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아프리카, 파키스탄, 네팔,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나이    지리아

7. 외국인노동자 사진전시회 등

제1회 외국인노동자

민속문화제
2003.9.14

남대문

메사
필리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 10개국의 나라에서 13개팀이 참가해 각국의 민속춤과 노래

남양주 세계

야외공연축제
2003. 9. 8
주제: 자연, 인간과 예술

이번 축제는 해외 8개 팀과

국내 20개 팀이 무용, 연극, 음악, 마임,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
축제기간에

‘외국인노동자 한마당’

아시아노동자

축제한마당
2002.

10. 27

서울

여의도

시민공원
1. 연날리기‘아시아의 꿈’

2. 아시아 문화축제: 5㎞ 마라톤대회와 각국의

  민속음악을 함께 즐기는 'Sing Along' 대회 등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
2001. 10.
  
축제기간

‘외국인노동자

한마당’-주로 전통민속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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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이주노동자를 위한 한국음악(전통 및 대중음악) 관련 음악회

행사명
일시․장소․주최
주된 행사의 내용  
비고

윤혜정과 함께 하는 추석맞이 우리 춤공연 (할인공연)
2003.9.13 오후 7시 30분 한전

아츠풀센터
'태평무' '살풀이' '애상' '경고무'와 '손북춤', 창작무 '황진이'
청소년.외국인 노동자.소년소녀 가장.단체구매는 20% 할인.

외국인 노동자와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한 무료공연 '가을빛 은빛 신나라' (초청 무료공연)
2003. 9.11.

오후 2시 30분
1. 동춘서커스, 풍물판굿, 국립창극단의 '흥보전'

2. 국립무용단의 타악극 '천고' 등 전통 공연

3. 강강술래(무용)

4. 전통놀이(팔씨름 및 줄다리기)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국립국악원 초청공연 (서울, 경기지역 외국인 노동자 및 센터 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초청)
2003. 8.31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한국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외국인근로자 들에게 우리음악과 춤을 통해 우리의 얼을 알리고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근로자 들이 한국을 낮선 나라로 비취지지 않고 문화예술의 전통을 간직한 나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2년전부터 계속 마련

1. 종묘제례악 '희문, 영관'

2. 가야금제주 '침향무',

3. 판소리 입체창 '춘향가'

4. 강강술래(무용)

5. 해금솔로'어린왕자','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

6. 사물놀이  

전통예술무대

(할인공연)
2003. 1. 31 -2.2 정동극장
민족최대 명절인 설을 맞아서 기획된 공연

1.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도    록 산조합주, 부채춤, 사물    놀이, 살풀이, 판소리, 농    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을 1시간 30분 동안 선보    일 예정
한복을 입었거나 3인 이상이 함께 올 경우,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회사가 10인 이상 단체예약을 할 경우 특별 할인가인 1만원 (정상가 2∼3만원)에 입장가능.

민족문화작가협의회주체  

<문학카페와 명동> 시리즈
2002. 9.6- 11.22 기간의 매주 금요일 7시 밀레오레 이벤트홀
외국인노동자들이 겪고있는 착취와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국인노동자 복지기금' 마련

1. 문인과 가수가 함께 무대에 올라 시낭송    과 노래공연, 토크쇼 등을 펼치는 일종의    버라이어티 문화쇼

2.행사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전액 '외국인    노동자 복지기금'으로 쓰여질 예정
행사 막간에 '춤패 불림'의 2인무와 외국인노동자들의 민속음악·춤 공연

국립창극단,제102회정기공연 창극 '배비장전'(추석 연휴기간 한시 50명 무료 초청 공연)
2000. 9. 11-17

국립국장 달오름극장
우리가락과 율동이 묻어있는 우리 창극 배비장전

안치환과 자유

(한시무료공연)
2000. 7월 한달 공연 중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장기수 할아버지, 민가협 어머니,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 외국인 노동자들, 청소년 가장들을 초청해 안치환의 노래를 무료로 공연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국악공연

(800석 전원 초청

무료공연)
2000. 7. 23. 오후6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춤과 음악을 통해 우리 얼을 알리자는 뜻에서 기획된 무대로서 프로그램은 한국 전통예술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임:

1. 종묘제례악

2. 가야금 병창(판소리 대목)

3. 궁중정재

4. 민요·부채춤·사물놀이 등

5. 국악원 광장에서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를 체험
참석자 전원 외국인노동자에게 한국의 전통음악을 담은 CD 증정



주로 이러한 음악회는 적극적인 이주노동자와의 소통이라기보다는 음악회 자체를 위한 기획․ 홍보 차원에서 이루진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대중가요 및 운동권 가요 외에 모든 한국의 전통 및 현대 음악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는 문화적 이질성 때문에 기인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연장된 근무와 과도한 업무 속에서 시간적․육체적으로 음악회 관람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상 한국 생활에서 많이 접한 대중가요나 운동권 가요가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국음악문화와 이주노동자 음악문화가 공존하는 단계에서 특별히 주목해야하는 점은 이주노동자의 제 2세대37)가 경험하는 것이 양쪽 음악문화 모두라는 것이다. 이미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국제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안산과 마석 등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 2세대는 한국음악과 자국음악을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음악문화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3) 갈등과 공존의 합일적 단계

앞에서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 문화 간의 점진적 단계를 논하면서 갈등의 단계와 공존의 단계를 언급하였다. 이 두 단계 이후에는 갈등과 공존의 단계에서 시행착오적으로 시도되고 체험된 음악적 경험들이 합일되는 단계로서 한국 내 이주노동자 고유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갈등(대립)과 공존의 단계는 끊임없이 해소되어야만 하는 대립관계를 연속적으로 도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연속성의 나선형적 일련의 흐름에서 끊임없이 대치되는 갈등과 안정의 대립관계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 음악문화를 형성하는 함의적 근저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과 공존의 연속적인 상호 및 대립관계에서 발생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의 과정에서 자국의 음악과 한국의 음악문화를 용해하여서 새롭고 고유한 음악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12월 15일 첫 앨범 “What is life”를 시작으로 정식 활동에 들어간 ‘유레카’는 미얀마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인디록 밴드이다. 밴드 모두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로서 한달에 한두 번 연습하기에 연주 실력은 전문 프로와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이주노동자의 슬픔과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앨범에는 이들이 직접 한국어로 만든 노래인 ‘엄마에게’, ‘꿈의 길’, 그리고 나이지리아, 태국, 네팔, 중국 등 이주노동자들이 만든 가사에 한국과 독일 작곡가가 노래를 붙인 8곡이 수록되어있다(연합뉴스 2002. 12. 8. 일자 기사; 프레시안, 2002. 12. 14.).

“엄마의 집 밖 세상으로 전 나왔어요/ 엄마의 그 따뜻한 손을 놓고 저 엉큼한 세상으로 차가운 취급에 놀라며 살게되어/ 그리워요 엄마의 그 친절한 가슴속이” <엄마에게>;  “몸이 너무도 아파 쉬고 싶지만/ 죽도록 기계랑 또 싸워야하고/...내가 원하든 하지 않든/ 난 이미 불법체류자인걸” <장애>; “보고 싶은 우리의 고향 가족들은 잠깐 잊어버리고/...땀으로 이마에서 우리의 발가락까지 젖어도/...믿어요 어둠 뒤에는 밝은 날이  온다는 걸” <꿈의 길>

(앨범 수록곡의 가사 일부)

이들이 밴드를 결성하게 된 것은 1993년 한국으로 건너온 한 미얀마 이주노동자가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서 미얀마 친구들과 함께 미얀마의 유행가와 한국의 록 음악, 미국의 록 음악을 연습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인디록 밴드 ‘유레카’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에서 자국의 음악과 한국의 음악이 불법 이주노동자라는 사회적 신분에서 놓여진 내적 자각과 함께 융합되어 실제적 음악 활동으로 발산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21>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방송되는 ‘이주노동자의 보이스’는 네팔 출신 외국인 노동자(서머르 타파)가 직접 진행하는 것인데, 이는 이주노동자의 문화가 서서히 공식적으로 한국 문화 내에서 표출되는 예이다.

위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사회로의 공식적 표출은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사회표층에 등장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가 한국문화와 공존이던 갈등이던 간에 한국문화 안의 소수문화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문화는 미래의 이주노동자 제 2세대를 통하여 다시 갈등과 대립, 그리고 합일의 연속적 반복으로 문화적 생명을 지속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7. 마무리하는 글

본 고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에 관하여 주로 사회적, 노동법적, 인권적으로 집중되었던 기존연구의 관점을 문화적 접근으로 확대하여 논의한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에 대한 연구로서 이주노동자 유입 이후의 한국의 문화를 총제적인 시각으로 조명하는 것이다.

우선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현황과 실태 그리고 그들의 문화충격 및 적응을 문화적(음악문화적)관점으로 파악하고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문화 간의 소통에 관하여 세 가지의 점진적 발전 단계인 갈등(대립), 공존, 그리고 합일을 제시하였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 문화는 주로 음악문화를 주요한 내용으로 이루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의 실제 노동의 현장과 이주노동자 공동체 모임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바로 자국의 음악(주로 노래) 및 한국 대중가요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는 나라별․종교별 문화적 특수성에 따라 형성된 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동시에 노동현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 대중가요를 통해서 한국문화와 소통하고 있다. 이는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 문화간의 소통에서 함유하고 있는 갈등, 공존, 그리고 합일의 점진적인 단계로써 파악할 수 있다.

한국문화와 이주노동자 문화간의 소통 및 교류는 갈등과 공존이라는 대립관계와 상호 해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합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양 문화간의 합일적 관계는 끊임없이 대치되는 이주노동자의 정체성과 한국문화 간의 갈등과 공존 속에서 한국 내 이주노동자 고유의 소수문화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한국에 건너와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있어서 한국어 습득은 필수적인 노동수단이며, 한국문화에 대한 적응은 필연적인 생존방법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의 자국문화를 유지하는 동시에 한국어 습득과 함께 동반되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 및 적응과정은 갈등, 공존, 합일의 점진적 단계들로 겹겹이 쌓여진 층으로서 바로 한국 내 소수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문화의 잠재된 축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초등학교 연령층의 자녀가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제 2세대이며 제 1세대와 달리 한국에서 문화적 충격을 강하게 받기보다는 이곳에서 경험하는 교육과 생활이 한국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이끌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 내 이주노동자가 고유한 소수문화를 형성하는 현재의 과정은 제 2세대의 미래적 전망과 직결되어있으며 한국의 문화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역동적 관계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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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인터넷신문). 2002년 12월 14일자 기사.

한겨레신문. 2003년 9월 24일자 사설.

검색어: 이주노동자, 불법, 음악문화, 문화적 충격, 공동체, 종교, 소통, 갈등, 동화, migrant worker, illegal, musical culture, cultural shock, community, religion, mutual understanding.



Musical Culture of Migrant Workers in Korea

Hye jin Yoon

This study is to discuss over musical culture of Migrant workers in Korea on which the previous researches have centered mainly with the points of view by social angle, labour law, and human rights. I have intended to take a total view to Korean culture by means of this research on musical culture of migrant workers after the inflow of around 350 thousand migrant workers since the late of 1980.

Most of all, it is significant to pinpoint at musical culture weaved by multinational people so as to reflect a dynamic prospect toward musical culture of Korea and to provide with more various view to migrant workers of Korea.

Most of migrant workers in Korea are the minority estranged from Korea society as they have been in 3D types of industry with the illegal social position for last 15years. A sort of migrant worker's clustering together in Korea seems to be formed as a different cultural area inside Korea.  

First I have examined the present situation and actual states of migrant workers and concomitant cultural shock and adaption in Korea through the cultural(musical cultural) view, and presented the three levels as to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Korean and migrant worker's cultures with gradual progress, conflict(confrontation), coexistence, unification(with equilibrium in Korean culture).

The main content of migrant worker's culture consists of musical culture owing to that it is no other than music(especially singing a song) as the most actual method through which they can not only console themselves exhausted by a hard labour and life in Korea but also have a symbolic concentration of each communities.

Musical culture of migrant workers appears individually according to the peculiarities by countries, religions, and cultures. And simultaneously it would make mutual understanding with Korean culture through Korean pop song being easily opened to the very ground of labour. Such points can be regarded as the gradual three levels, conflict, coexistence, unification contained in mutual communication between Korean and migrant worker's cultures. What helps the two cultures take possible mutual understanding and exchanges is based on continuous progress by virtue of outcomes from confrontation and resolution in interrelation between conflict and coexistence.

With preserving each culture of migrant workers, could various cultural phenomena concomitant to the course of being adapted to Korean language and culture be accumulated for a dormant axis that is not only to make up the own culture of migrant workers in Korea but to be admitted as one of culture coming into being a dynamic Korean culture.

Moreover, migrant workers have accompanied in Korea with the children aged for primary school, who seems to be able to naturally accept Korean culture through educational and cultural experience taken in Korea rather than to face up cultural shock comparing with their parents. Therefore the ongoing process to build up the culture of migrant workers in Korea can be claimed to be directly linked to future prospect of the second generation of migrant workers and to be posed as a dynamic interrelation with the culture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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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계는 중국(조선족)동포를 지칭하는 것인데, 이들의 음악문화는 개별적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이므로 본 고의 논의대상에서는 제외하며 후속논문에서 연구하고자 한다.

2) 국제 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는 외국인노동자를 ‘Migrant Worker’라고 칭하고 있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주노동자’이다.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생활 및 문화 근거지를 떠나서 타 지역으로 이주․취업한 노동자를 의미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로 병기하고 있는데 본 고에서는 한국민과의 대립성 및 배타성이 감안되어있는 ‘외국인노동자’라는 용어가 아닌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3) 서적은ꡔ외국인노동자 선교와 신학ꡕ, ꡔ외국인 이주노동자 단체 조사보고서ꡕ, ꡔ외국인 노동자 정책과 보호정책ꡕ, ꡔ외국인 근로자의 노동법상 지위와 정책과제ꡕ, ꡔ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인권백서(인권침해의 현장보고)ꡕ등으로 주로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에서 출간함; 논문은「외국인노동자의 인권보호에 대한 윤리신학적 연구」, 「한국내 외국인 노동자 선교에 관한 연구」, 「외국인노동자 보호대책에 관한 연구」등이 있다.

4) 유가, 금리, 그리고 환율.

5) “단순기능인력 부족현상에 대한 국내시장의 대응은 대략 2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많은 3D 업종의 생산설비를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이전하여 현지에서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인력의 부족을 외국 인력을 수입하여 해결하는 것이었다.”

6) 중앙일보 2003년 10월 1일자 기사에 따르면 1일 국정감사에서 외국인 산업연수생 10명 중 3명 이상이 지정 업체를 이탈한 것으로 나타나 외국인 노동자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서 상반기의 산업연수생들의 이탈률은 31.5%인 6만 5천 5백 81명에 달한다고 지적되었다.

7) 미등록노동자(약 66%), 연수취업생(30%) 등으로 추산해볼 수 있다.

8) ‘전문기술인력’이라고 명하기도 함. 불법체류자감소와 3D업종의 인력난 해소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하여 도입한 이 제도는 오히려 미등록 노동자(불법체류자)의 수를 증가시켰다.‘
9) <표 1>은 앞의 책, 100쪽에 나온 2000년까지의 현황표와 함께 필자가 2002년 법무부 통계자료를 첨가한 것이다.

10) 특히 생산직으로 대표되는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은 아시아 중에서도 동남아시아 출신이 많다.

11) 법무부의 출입국관리소(Immigration Bureau) 통계연보, 2002.

12) 앞에서 밝혔던 바와 같이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이 불법체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본 고에서의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이주노동자(미등록이주노동자)를 지칭한다.

13) 이주근로자의 모든 자녀는 체약국의 국민과 평등한 취급에 기초하여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공립의 취학 전 교육시설 또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는 그 부모의 체류 또는 고용에 관한 범법상태 또는 자녀 체류의 비적법성을 이유로 하여 거부 또는 제한되지 않는다.

14) “고든(Gorden 1964)은 이민자의 동화가 세 단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명한다. 첫째 단계는 유입국 사회의 언어, 종교 및 기타 문화적 특성을 수용하는 '단순 문화접변'(mere acculturation)이고, 둘째 단계는 친밀한 관계의 상호작용을 지속함으로써 차별, 편견이 사라지는 '구조적 통합'(structural integration)이며, 최종단계는 주류사회 속에 완전히 융해되는 '동화'(assimilation)이다.”

15) 이 두 이론은 국제노동력이동의 원인에 대한 배출-흡인이론과 세계체계이론과 각각 대칭된다. 동화이론은 파크(Park 1924, 1950)에 의하여 주창되어, 고든(Gordon 1964)에 의하여 발전된 것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주류사회에 융화되어가는 것을 정상적이고 당연한 과정으로 파악한다. 설동훈, 앞의 논문, 10쪽-11쪽.

16) “소수민족집단이 주류사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주류사회의 민족적 차별과 편견을 강화, 유지 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뿐만 아니라 교육기회의 불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노동자의 주류사회로부터의 격리가 반드시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민족 성원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그들의 국내적응이 한층 더 순조로울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는 분석도 있다(Massey, Joaqu/in, Hugo, Kouaouci, Pellegriono, and Talyor 1994: Portes 1995).”

17) 무슬림의 식사는 돼지고기와 술이 배제되며 그들이 식용으로 취하는 모든 고기는 동물을 도살시키는 규칙인 하랄(Halal)을 거쳐야만 한다.

18)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음악문화는 자국의 음악과 한국의 음악, 그리고 자국의 공동체 모임과 한국사회 간의 대립과 공존에 대한 고민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이에 관하여 다음의 발췌문을 참고하여 음악과 집단 형성 간의 문제에 대한 숙고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사회학에서 집단 형성의 문제들을 다룰 때...그 대상은 공식, 비공식 집단, 가족, 직장, 지역사회, 교육집단, 종교집단, 종족집단, 그리고 국가 집단들이다. 그리고 영구성과 트기의 수준, 조직의 형태, 또 집단이 기초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형태 등에 따라 음악사회집단을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에는 ‘1차집단’과 ‘2차집단’ 사이의 구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내적 집단’과 자신이 속해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외적 집단’의 구별이 모두 포함되어있는 것이다”(알퐁스 질버만 1997: 127-8).

19) 사회결속이란 점에서 종교의 의미에 대한 접근에 대한 흐름 중에서 이러한 기능주의적 접근은 “종교가 사회 구성원들을 공동의 가치와 목적을 통하여 통합시키기 때문에 사회결속의 요건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망은 기능적으로 통합된 요소들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구조로서의 사회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M.B. Mcguire 1994: 247).

20) “종교는 교제의 토대이며, 공유된 의미의 표현이다. 이러한 것들은 신앙집단의 전체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종교적 의미체계는 사건과 경험을 해석하는 방법이며, 집단의 존재와 개인의 정체성에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집단의 의미체계는 사회적 질서를 해석하고 사회장치를 정당화시키며, 인간의 삶과 사건을 더욱 넓은 틀 속에서 이해하게 만든다”(M.B. Mcguire 1994: 77). 특히 한국 내 이주노동자가 경험하고 있는 이국땅에서의 심리적․정서적 불안감은 공동체 모임에 참여로 해소되는 데 이때 종교는 그들 자신의 정체성 문제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노동과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이끄는 주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1) 정보출처는 Kayamanggi: Catholic Filipino Weekly Focus, Vol. 3 No. 9, Feb. 27, 1994, p.1. 이다.

22) 필리핀의 언어 중에서 1939년 모국어로 지정된 것으로, 필리핀어(Pilipino)라 한다.


23) 이들 중 일부는 3D직종이 아니라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에서 경음악이나 팝송을 연주, 노래하는 전문 음악인도 포함되어있다.

24) 이슬람에는 수니파(al-Sunni)와 쉬아파(al-Shiˉ'ah) 두 갈래 派가 있다.


25) 심지어 그들은 길거리에 나오는 음악도 철저히 무시한다고 이야기 한다. 필자의 인터뷰(모스크에서 2003년 9월 6, 7, 14, 21, 28, 10월 4, 5일 등에 걸쳐 행해진 무슬림 이주노동자들과의 인터뷰).


26) 벵갈 태생의 위대한 시인 타고르(Tagore)의 시에 붙인 노래 장르로서 인도 벵갈 주에서 주요한 음악장르로 여겨지고 있다.


27) 인도의 뭄바이(Mumbai)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영화시장인 Bollywood를 중심으로 힌디어로 된 영화.


28) 힌디 영화는 힌디어 대사로 이루어진 영화임에도 주로 춤과 노래로 이루어진 음악극의 형태이기 때문에 각 지역의 지방어를 사용하는 인도전역에 걸쳐서 대중적으로 보급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9) 이에 관하여서는 제 6장에서 서술할 것이다.

30)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그러한 현상은 문화적응에서의 동화 및 갈등이론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31) “대중문화의 수용자들의 문화적 실천은 수용자가 속한 계급이라는 요인에 의해 영향받지만 전적으로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수용자들이 처한 다양한 담론적 위치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차이를 보여준다...이에 따라 나타나는 문화적 실천의 차별성에 대해 우리는 ‘하위문화(Subculture)’라는 개념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하위문화는 ‘보다 광범한 문화 내에 위치하면서 사회 역사적 구조 내에서 특정한 사회집단이 직면한 특정한 입장과 특수한 갈등에 부합하는 타협적인 문화형태’로 정의될 수 있다...”(김창남 1995: 61) 하지만 본 논문 필자는 ‘이주노동자 문화’를  ‘하위문화’의 용어가 내포하는 위계질서의 상하 구분에 의해서 설명하지 않고, ‘소수문화’라는 용어를 통해서 한국문화 내에 존재하는 소수자의 문화로서 설정하고자 한다.


32) 하랄 고기전문점은 이슬람 법도에 따라서 고기를 사육하고 팔게 되어있는 곳으로서 이슬람 법도의 실천지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무슬림을 상대하고 있는 대부분의 하랄 고기전문점에서 힌디영화비디오 및 음악 테이프를 대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주노동자의 정체성 혼돈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3) 특히 한국 노래 중에서 80-90년대의 운동권 가요 및 대중가요가 주는 음악적 정서는 이주노동자들(주로 아시아계)에게 깊은 정서적 공감대를 제공한다.


34) 이주노동자 지원 센터 뿐 아니라 몇몇 대기업이 기업 홍보차원에서 행사 지원이나 주최를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35) 대부분 한국 전통음악으로서 주요 레파토리는 본문에 정리된 표 안에 제시되어있다.


36) 소수 한국 및 이주노동자의 방문 공연과 각 이주노동자 지원 센터의 각종 행사 및 모임에서 이주노동자의 전통 춤과 노래의 다수의 공연은 제외하였으며, 주로 언론을 통해서 공표된 행사들만을 정리한 것이다.

37)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주노동자의 초등학교 연령층의 자녀 및 미성년자를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