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 인권'(2009.9/ 160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주민과 인권] 인간사냥과 인종차별  

                 2009년 09월 28일 (월) 13:32:22 이정원(이주노조 교육선전차장)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지 벌써 7년째다. 이런 단속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고 이명박 정부는 이것을 더욱 강화하며 이어가고 있다. 매년 두 세 번의 집중 단속 기간을 선포하고 관련 정부 기관인 경찰, 노동부 등을 동원해 일명 ‘합동 단속’을 벌인다. 정부는 수년 째 20만 명을 선회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가 올해 들어 19만여 명 수준으로 낮아진 것을 단속의 성과라며 이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으로 10월 1일부터 또 집중 단속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인간 사냥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올해 5월까지 13만6300여 명이 강제 추방을 당했다. 이것은 매달 2100명꼴로 추방을 당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일자리도 야간 작업을 하는 공장을 찾고, 공장 밖으로는 가급적 외출을 하지 않는다. 또 지리 등에 익숙한 지역을 벗어나지도 않고 단속반이 자주 ‘출몰’하는 주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도 피한다.

하지만 단속반 역시 이렇게 숨어드는 이주노동자들을 ‘색출’해 잡아들이려고 온갖 방법을 찾아낸다. 이주노동자들이 움직이는 시간대인 아침 출근 시간, 저녁 퇴근 시간에 맞춰 단속을 하고, 생필품을 구입하는 시장이나 마트 앞에서 단속을 하고, 수시로 공장이나 기숙사에 들이닥친다. 단속반은 붙잡은 이주노동자를 다그치고 협박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다른 공장을 지목하게 만든다.

단속반에 직면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단속반이 공장에 쳐들어오면 이들은 ‘우’하는 소리를 내며 뛰어 들어온다고 한다. 공장에 있는 이주노동자들 중 대부분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도망을 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단속반은 가만히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그냥 두고 주로 도망치는 이주노동자들을 추격한다. 그를 잡으면 거의 백 퍼센트 미등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단속반의 ‘단속 노하우’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공장에서는 사업주가 단속반을 '교란‘시키려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절대로 도망치지 말라고 하고 대신 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도망치는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대처법이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이주노동자들이 실전 대비 연습을 하는 장면이 연상돼 폭소를 터뜨렸지만, 사실 이것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바로 이런 일들이 최근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는 한국 사회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정부의 ‘다문화 정책’에 이들 노동자들은 애초부터 대상이 아닌 것이다.

불법? 합법?

정부는 이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이렇게 해서라도 잡아들여 한국 밖으로 내쫓지 않으면 무슨 커다란 문제라도 생길 듯이 과장하지만, 현실을 잘 들여다보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이주자들의 체류 상태는 매우 가변적이다. 오늘까지 ‘합법’ 체류자였던 사람이 바로 내일 체류 기간이 만료되거나 혹은 거주지 변동 신고 등 단순한 출입국 절차를 지키지 않아 체류 자격이 박탈돼 소위 ‘불법’체류자가 된다. 한국을 피난처로 삼아 난민 신청을 한 사람들 중에는 난민 인정이 불허돼 ‘불법’이 되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불법’이 된 사람들이 무슨 큰 위험한 집단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또 출입국의 단속에 걸려 추방되는 이주노동자들 중 실제 범죄에 연루된 사람은 정말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이주자들 중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출입국 단속이 아니라 경찰의 범인 검거 과정에서 붙잡힌다. 결국 거의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그저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가다가, 집에서 잠을 자다가,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단속반에 걸려 붙잡혀 가는 것이다. 강조하고, 또 강조하건데 이들은 그저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들이 ‘불법’이라는 용어를 계속 유포하며 한국인들이 이들을 ‘범죄자’로 인식하게 만들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한국 노동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듯이, 본국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짧게는 수년씩 길게는 십 수 년이 넘도록 가족과 생이별한 채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이들이 왜 이토록 비난당해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체류할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장기 체류할 방법은 제도적으로 봉쇄돼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일하고 본국에 돌아가면, 다시 한국에 올 방법이 없다.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있지만 이미 본국에 한국에 입국하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수천 명, 수만 명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돌아갈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50만 달러를 투자하면 체류 기간과 상관없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지만, 노동자로 십 수 년을 살아도 영주권 신청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우수 외국 인재’에 대해서는 심지어 복수 국적 부여 방침도 추진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그 대상에 포함조차 되지 못한다. 이런 차별적 제도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합법적 체류가 가능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실 ‘국익’, ‘우수 인재’라는 용어의 포장지를 걷어내면 드러나는 실체는 인종 차별과 다름없다. 오늘날 인종차별은 과거와 같이 노골적으로 피부색이나 겉모습을 앞세우지 않지만, 그 자리를 국적, 재산, 문화가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그녀의 피부색이 어두울수록 정부들이 선호(?)하는 국적 또는 개인의 능력은 거리가 멀기 십상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합법’, ‘불법’이라는 구분법은 이런 차별과 배제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이런 불평등과 차별은 바로 한국 시민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와 같은 시민권자가 아닌 비시민 외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민/비시민 구분 없이, 피부색, 국적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다채롭게 어울려 살 수 있다는 믿음,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바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다문화주의 정신 아닌가? 정부의 ‘다문화주의 없는 다문화 정책’을 보면 이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이 몫은 한국의 시민사회에게 있어 보인다.

또 다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집중단속’ 광풍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이들 이주노동자, 이주민들과 이웃으로, 친구로, 동료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