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노동자, 그 들에 있어 노동기본권은 곧, 생존권이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의장 구권서

비정규직 문제해결 의지, 입증 할 테면 해봐라

    작년 초, 노무현 정부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사회양극화와 빈곤문제의 해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이에 대한 세 가지 대책에 기가 막힐 뿐이다. 그 첫 째는 ‘정규직의 양보’, 둘째는 ‘비정규 보호입법(?)의 조속한 통과’, 그리고 그 중에도 압권,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질향상(능력껏, 정규직 돼라)’... 이제 노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처리 돼 ‘국회의장의 타봉’만을 남겨놓은 소위,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과연, 8백만을 넘어선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위한 것인가’를 스스로 입증하라. 그러지 못한다면 사회양극화, 빈곤해소의 약속은 단지, 립서비스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셈이 될 것이다. ‘법리놀음’에 능통한 전문가도 아닐 뿐 더러, 어차피 비정규노동자의 핵심 요구는 빠진 채, 앙상히 남은 법안에 논박하고 휘말리고 싶은 의사도 이젠 없다. 오로지 억압받고 착취 받아온 설움들을, 몸뚱아리 내던져 피 토하는 분노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존재,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절한 가슴으로 고발하련다.    

대체 누가, 누구를 이해시키란 말인가

    “(비정규노조 당사자들이)나를 이해시키면 수용 하겠다”. 이 말은 지난 3월 17일, 매일노동뉴스의 행사장에서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에게 열우당 이목희 의원이 ‘끝장 토론’을 제안하며 했다는 말이다. 마치 가난한 집안에 ‘보호’를 구실로 들어와 ‘내가 강도가 아니라는 걸 입증해 봐라, 그러면 고이 가마’ 하고 칼 들고 큰 소리 치는 격이다. 자, 누가, 누구를 이해시켜야 하는 걸까. 그 동안 이 국가는 목숨 건 투쟁으로 호소할 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들을 공권력 군홧발로 짓밟기 전, 과연 그 절박한 처지에 얼마나 귀 기울여왔던가. ‘침묵하는 다수(대다수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세워 여론을 호도하고, 그나마 어렵게 조직된 비정규직의 목소리 조차, ‘대공장 일부의 비정규직(?)’, ‘몰지각한 소수 강경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외면했었던 것이 오히려 진실 아니었나. 과거 7~80년대 민주화투쟁의 치열한 고비에서 가투로 맞섰던 수만, 수십만의 인사들에 과거 독재정권도 틀림없이 똑 같은 언사를 했으리. 그리고 한때, ‘정의로운 소수’였던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자랑삼고 있을 정부여당의 몇 몇 인사들은 혹여, 미워하면서도 과거 그 들의 독선과 오만을 닮아간 것은 아니었는지. 최근 몇 번에 걸친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 대다수 여론은 ‘원청사용자성과 특수고용노동자성의 인정’을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말 없는 다수’를 ‘묵시적 동의의 뜻’으로 멋대로 간주해 버리는 분별없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너희는 죽어라! 단, 끽 소리만 말고...’

    들어라! 작년 한 해만도 무려 1,489억원의 손배가압류와 1,300명이 넘는 해고자와 97명의 구속수배를 무릅쓰고도 외쳐야 했던 피울음을.., 끝내 자결로 항거할 수 밖에 없었던 14명, 비정규노동자들의 외침들을... 그대들은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고 노동기본권 보장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할 것인가. 비정규노동자들에게도 조국은 있다. 그들의 조국, 대한민국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죽어라! 단, 끽 소리도 말고...’. 여기서 일일이 거론 조차 어려울 지경의 숱한 탄압과 투쟁의 최근 사례 중, 우리는 기륭전자의 예를 들고자 한다. 왜냐면, 그 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불법파견인 동시에, 그 파견회사의 기간제인 전형적 비정규직 사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노동자엔 ‘쇠몽둥이’, 사용자엔 ‘솜방망이’

    작년 6월, ‘문자메시지->물갈이 해고’에 시달려 오던 그 들은 애초 노조부터 만든 것이 아니었고, 다만, ‘직접 생산공정에 금지된 불법파견 시정’을 노동부에 요구했던 것이다. 사측의 탄압이 노골화 되자 비로소 노조를 만들게 된 것이었던 것이다. 이에 국가와 자본이 준비한 ‘비정규직 노동자 죽이기’의 공정은 어김없이 가동됐다. 살아남기 위해서 합법적 쟁의절차를 밟는 사이 원청사용자인 기륭측은 파견계약을 해지하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 파견회사는 예의 문자해고 메시지를 날린다. 바로, 합법에서 불법쟁의로 둔갑되는 순간이다. 50일 남짓, 사 오십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남아 힘겹게 지켜가던 항의농성에 원청인 기륭 사측은 업무방해 고소고발로 응수한 다음, 이후 공정으로 넘긴다. 이제 공권력이 숨가쁘게 등장할 차례! 경찰은 농성장을 새벽 침탈하고 노조간부들을 연행구속한 다음, 나머지 노동자들을 공장밖에 팽개친다. 지옥도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엔 검찰이 이어받을 차례, 전체 조합원 64명에 대해 각 1인당, 22억원씩, 총 1,408억원의 업무방해 손해배상을 때린다. 당시 최저임금인, 월 기본급 641,850원의 여성노동자들이 꼬박 150년을 쉬지 않고 일해야 갚을 금액인 셈이다(불법파견에 대한 벌금을 기존의 ‘1건당, 1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처벌조치를 대폭 강화 한다’는 가소로운 정부주장과 대비해 보라).

    “처우개선 요구, 노조결성->계약해지, 사용자성(또는 노동자성) 부정->불법파업 조장->공권력 투입, 구속해고->검찰, 손배가압류, 벌금->장기투쟁”... 과거나, 지금이나, 이 지옥도는 비정규노동자 투쟁의 모든 현장에 ‘판박이 그림’으로 등장했다. 작년 내내 차별해소와 생존권적 요구를 걸고 투쟁해야 했던 그 들..,화물과 덤프, 학습지, 특수고용노동자, 현대, 기아, 대우, 그리고 하이닉스, 하이스코의 사내하청 노동자..., 바로 그 들이 이 나라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었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은 이렇게 답한다. ‘너희는 죽어라! 단, 끽 소리도 말고...’ 가끔은 비정규노동자 투쟁집회에 나선 연사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노태우’로 잘못 바꿔 부르곤 했던 것 조차, 그저 우연으로 보이진 않게 됐다.

‘차별해소 하나는 확실하다’는 거짓말에 대해..,

    ‘비정규노동자 기본권(노동3권) 보장 원칙만 따지고 정규직화 요구만 매달리다 보면, 실제 시급한 문제인 차별해소 조차 못한다’는 류의 주장들.., 보통의 사람들은 이제, 뭔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헷갈리도록, 작년 내내, 정부여당에 의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따져 보자. 열린우리당의 얼핏 들으면 솔깃할 수도 있는 거짓주장을 들어보자. 비정규 보호입법만 완료되면 임금 등, 차별처우에 대해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차별시정 명령이 확정되면 이를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치 않은 사업주에 최고 1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른 건 몰라도,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차별 받는 것 만큼은 확실히 시정된다’고 힘주어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차별처우에 대한 규정도 명확치 않음은 물론, 그 구제절차도 간단치 않다. 설사, ‘동키호테 정신’으로 용감하게 차별시정 구제신청을 낸 자가 생겼다 치고, 이를 보고만 있을 ‘흥부 같은 사용자’는 아무래도 없을 듯... 밉보여 해고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일 테고, 노동위원회 확정판결이 난다 치더라도 대법원 까지 길게는 몇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사용자의 차별행위가 입증됐다 치더라도 형사처벌도 아닌, 막판엔 그저 과태료만 내면 되는 솜방망이 조치인데, 그 때 까지 사용자와 맞서 법정비용과 해고상태, 그리고 불확실한 결과를 무릅써 가며, 제 정신으로 버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말이다. 이미 기존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 명시돼 있는 남녀고용평등법이 현실의 조건에선 거의 있으나 마나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또 하나의 단골메뉴 하나 더.., ‘청년실업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일자리를 많이 늘려야 한다’는 거짓주장을 살펴보자. 뻔히 청년실업의 주된 원인이 실망실업, 즉 ‘정상적 일자리(즉, 정규직)’가 없어서임을, 이미 이 나라, 비정규직 일자리는 넘쳐나고 있음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지난 역사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히틀러 정권의 선전상 괴벨스의 이론이다. 아무래도, 가혹한 비유 였을까? 결코,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도 멀리 창원의 GM대우 창원공장, 수 십 미터 고공의 공장굴뚝에 매달려, ‘해고자 복직, 노조인정, 손배가압류 철회’을 목숨 걸고 외치는 6명의 비정규노동자의 처절한 외침에 공권력 투입, 구속수배, 손배가압류 말고는, 아무 것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이 정부이기에.

‘노동기본권의 물그릇’이 없으면 ‘차별해소 갈증’은 채울 수 없다.

    1999년 이후 재능교육교사노조, 그리고 건설운송노조의 설립과 투쟁 이후,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정부에 노동3권을 요구하며 벌써 햇수로만 8년을 사용자측의 모진 탄압을 견뎌내며 오로지 정부의 조치만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이제는 되려, ‘근기법상 노동자성은 인정할 수 없되, 노동법상의 노동자성(즉, 노조 합법성)은 인정 한다’는 기존의 알량하고 묘한 판결조차, 지난 12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노조합법성(노동기본권) 조차 부인당하고야 말았다. 지금 학습지의 삼성이라고 불리며 매출 1위를 자랑하는 신림동 대교본사의 번듯한 사옥앞에 가보라. 그 판결이 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학습지대교측은 지부장에 대해 부당해고를 자행했고, 현재 71일째, 구사대와 용역깡패의 폭력과 물대포에 맞서 ‘부당해고 원직복직과 노조인정’을 요구하는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작년 170만 특수고용노동자의 한을 안고 김태환, 김동윤 열사가 비참히 죽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끝내 이러한 목소리를 이번 비정규법안에서 조차 철저히 외면하고야 말았다. 아무리 뻔뻔한 들, 이들 앞에 조차 ‘비정규직보호법안’ 이라, 강변할 순 없을 것이다. 지금, 간접고용, 사내하청, 특수고용, 기간제, 이 땅의 목마른 8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얘기해도 정부는 이러한 목마름에 아무런 답을 하질 않는다. 지금, ‘노동기본권 보다는 차별 해소가 시급하다’는 식의 정부여당의 주장은 갈증을 호소하는 사람 앞의 맨 땅에 물 한 바가지, 던져놓고는 ‘우선, 급한 갈증이라도 해소하라’는 격이니, 도리어 모질고 잔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노동기본권의 물그릇’이 없으면 ‘차별해소의 갈증’은 결코 채울 수 없다. 오히려 갈증만 더 할 뿐임을.  

기억하라! 860만의 분노는 결코, 분노로만 그치지 않을 것임을!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인 ‘원청사용자성과 특수고용노동자성 인정’을 통째로 제껴 놓았음은 물론, 남은 쟁점인 ‘기간제’, ‘파견제’ 조차 개악될 국면은 초읽기에 들어섰다. 그 동안 열린우리당은 ‘같은 공장, 같은 자동차 생산라인의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그렇다면 당장 정규직화는 몰라도 불합리한 임금차별 이라도 해소돼야 한다’ 면서 그 토록, 강변해오지 않았나. 분명한 것은 오른쪽 바퀴의 비정규직은 하청회사, 왼쪽 바퀴의 정규직은 원청회사로, 서로 소속 기업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만약, 강행통과 된다면 단 1년도 지나지 않아 열린우리당의 사기행각은 만천하에 폭로될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 수 천명을 모아 노동위원회에 차별해소 구체신청을 넣으면, 모조리 ‘기각’내지, ‘각하’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 불 보듯한 일이므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간제 근로자 보호’는 커녕, 2년의 기간을 결코, 넘을 수 없는 기간제근로자가 무제한 양산될 수 밖에 없음을.., 제도적 고용보장이 되지 못한 노동자는 결코, 차별해소도 주장할 수 없을 것임을..,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과 분노를 달래긴 커녕, 더욱 깊어질 뿐 임을.., 이렇게 뻔히 예상되는 입법결과에 대해 일국의 국정을 맡은 정부여당이 설마 하니, 전비연이 아는 만큼도 모를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비정규직 개악입법을 도맡아 온 정부여당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하고자 한다. 이 땅의 고통 받는 860만 비정규직노동자, 그 분노는 분노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발밑에 열심히 무덤을 팠던 자들은 언젠가 오늘의 이 말을 반드시 기억할 날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