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과 함께 존재한다면 신이여 끝까지 함께 하소서.


가난을 품고 태어나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짐승처럼 어린 시절 보냈습니다. 조금이라도 가족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많은 빚을 지고 브로커비 마련해서 목숨을 무릎쓰고 한국에 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한자리에만 오랫동안 있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 32만원 월급 받고 하루에 12시간 넘는 노동. 회사 관리자들의 비함리적 대우 차별, 욕설, 폭행 심지어는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따돌림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때 이후 내성적인 성격, 예민한 신경, 우울증 때문에 힘든 시간 보내왔습니다. 더큰 아픔이 허리디스크 완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구에서 서울 올라오면서 많은 네팔 동료들을 만났지만 1997년 IMF 위기가 찾아 오면서 한국사람 떠나서 이주 노동자들도 실업자 되었다. 2년 동안 교회서 노숙생활 하면서 지옥같은 삶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언젠가 잘될 거라고 세상 사람보다 멋지게 잘 살겠다 라는 결심하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해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남을 위해서 활동했습니다. 헌신적인 마음으로, 모범적인 인식을 변함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 해왔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2003년 7월 고용허가제 통과이후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해고당했고 길거리에 몰아냈어요. 3,4개 월 동안도 일 구하지 못해서 그냥 포기하고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면 한국사회가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배들 이야기 듣고 따라가면 모든 문제 해결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정이 많은 사회, 높은 인식 절악적인 교육, 사회의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 조금이라도 배려하지 않을까라는 생가갷ㅆ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고 싶다는 게 정단한 요구가 아닐까. 하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는 아무 생각없고 우리하고 같은 노동자들만 함께 했었습니다.

2003년 11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보냈습니다. 함께 했던 이주노동자 동지들은 출입국 직원들한테 사냥되고 연대 한국인 동지들은 부모들이 찾아와서 끌려가고 끝까지 한다고 약속했던 동지는 사라지고 100명 중 13명만 마지막가지 나왔습니다 .이 뼈아픈 노무현 정부의 선물, 평생토록 잊지 않을 겁니다.

우리 문제 해결은 커녕 더 심하게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불법체류자 라는 딱지가 사회화 되면서 불법체류자 밀집지역, 범죄집단이라고 하고 민족적인 차별 하면서 외국인(이주노동자) 에이즈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로 회사의 한국인 동료들은 탈의실 따로 있었습니다. AI 인플루엔자도 외국인 노동자의 탓, 성범죄자, 절도, 강도, 심지어 테러리스트까지 반한활동가, 불법체류자가 노조 만들어 활동하는 게 문제있다. 반노동자적인 정부의 인식 때문에 수많은 한국노동자들도 탄압받고 있지만 한국 사회운동에 함께 했다라는 이유로 .

정치활동한다면 너네 나라로 가서 하라고 출입국 직원 직접말했습니다. 연행중에 들었습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테러리스트 master mind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무슨 테러리스트입니까. 테러가 뭔지나 알고서 그런 말 하지! 테러의 원인은 가난과 전쟁입니다 .이주노동자는 테러리스트 아닙니다. 테러는 이주노동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이 테러리스트이고 제국주의 부시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이고 부시와 함께 전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테러리스트 입니다. 이주 노도앚들은 가난하지만 범죄자, 테러 아닙니다..테러가 끝나기 위해서는  전쟁과 빈곤이 없어지는 해방입니다.

2004년부터 끊임없이 이주투쟁을 탄압하면서, 영웅적으로 투쟁했던 서멀 타파, 안와르 위원장 연행됐고 2007년 11월 27일 까지만 위원장, 라주 마숨 동지 표적단속돼었고 석방을 위해 농성시작하면서 99일만에 해산했습니다. 시민사회노동단체 인권단체 종교단체 많은 사회 지식인들과 함께 하면서 파괴된 이주노조를 재건했지만 29일도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이주노조 지도부를 표적단속하면서 청주외국인 보호소에서 생활한지 10일 이 되고 있습니다. 힘든 하루 지내고 있습니다. 혼자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연대해 주신 동지들이 더 강하게 싸워주지 않을까, 나는 이대로 갈 수가 없다, 다시 나와서 동지들 만나서 함께 투쟁하겠다고 밤낮없이 수십번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사형을 앞두고 있는 용의자처럼(강제출국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사형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투쟁해서 반드시 석방해야 합니다. 왜냐면 자존심때문입니다. 이주노조를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통스런, 안타까운 현실 다시 일어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대로 보낸다면 지구 어느 곳에서 있든지 자본정부에 맞서서 투쟁하겠습니다.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빵과 장미뿐입니다. 끝까지 연대해 주시고 그리고 이주노조를 사수할 때까지 노동비자 쟁취할 그날 까지.. 투쟁.


토르나 림부, 청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