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주민 정책 개선하고,

이주민에 대한 차별금지법을 즉각 제정하라!

거주외국인 140만명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부산의 한 목욕탕에서 한국으로 귀화한지 4년이 지난 결혼이주여성이 단지 외국인이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욕탕 출입을 거부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피해자는 4년 전에 귀화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라 밝혔지만 직원은 “당신 얼굴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적이 있어도 출입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목욕탕의 주인은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외국인은 에이즈 감염 위험” 때문에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이에 대해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개인사업자의 인종차별을 합법적으로 규제할 수단이 없다고 하며 외국인을 받아주는 다른 사우나를 이용하도록 권유하였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차별로 인해 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한 공무원에게 다시 한번 차별로 인한 피해를 당한 것이다. 피해자는 ‘한국국적을 가진 한국인’으로서 “모든 국민은…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 1항에 근거하여 보호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률의 집행자인 경찰이 사우나 주인의 차별행위를 정당화하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차별을 감내할 것을 종용한 행위는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유기인 것이다.

또한 지난 10월 7일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10월 21일까지 출국하라는 출국명령을 받은 모로코인 부부가 출국기일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던 중 출입국 직원의 폭언과 협박으로 인해 부인이 출입국관리사무소 2층에서 투신하여 심각한 중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들 부부는 10여년간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생활해 왔으며 법무부에서 허락한 1개월여의 시간만으로는 그동안 운영하던 사업과 집 등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여 부인만이라도 좀 더 한국에 머무르며 제대로 정리를 한 후 출국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당시 출입국 직원은 이들 부부에게 “자꾸 귀찮게 하면 보호소에 구금했다가 강제출국시키겠다.”는 등의 폭언과 협박을 퍼부었으며 이에 상심한 부인이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이 두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개별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외국인에 대해 출신국과 체류자격에 따른 노골적인 차별에 기반한 정책을 운영해 왔다. 정부 정책의 기본이 되는 <1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08)은 이주민을 우수인재, 결혼이주자, 이주노동자 등으로 분류하여 우수인재는 적극 유치/지원, 결혼이주자는 한국어/한국문화 이해로 대표되는 흡수통합, 이주노동자는 단기순환 원칙에 따른 정주화방지 정책을 그 기본으로 하여 구성되어 체류자격에 따른 차별을 정책적으로 정당화하고 이주민들을 그 체류자격에 따라 서열화시키고 있다. 정부 각 부처는 이러한 <기본계획>에 근거하여 관련 정책을 입안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이주민에 대한 각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차별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결과인 것이다.

일례로 2010년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이주민에 대한 ‘강제출국, 출국명령, 출국권고’ 처분 현황을 살펴보면 아시아 지역 출신 이주민의 경우 15,784건 중 강제출국 13,131건 (83.19%), 출국명령 1,132건(7.17%), 출국권고 1,521건(9.64%)로 강제출국 처분 비율이 압도적인데 반해 북미주 지역은 1,126건 중 강제출국 44건(3.91%), 유럽 지역 363건 중 강제출국 95건(26.17%) 등으로 상대적으로 가난한 아시아 국가 출신 이주민들의 강제출국 처분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정부가 이주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각과 정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부산에서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종차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의 모로코인 여성의 투신사건은 이러한 정부 정책과 이를 반영한 일선 공무원들의 차별적인 업무처리가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우리는 잘못된 정부정책으로 인한 많은 이주노동자의 투신과 죽음을 겪어왔다. 정부가 차별과 배제에 기반한 현재의 이주민 정책의 기본 방침을 포기하지 않는 한 또 다른 인종차별 사건, 이주민의 투신사건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허울뿐인 다문화정책’이 아닌 ‘인간으로서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는 다문화정책’을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러한 불행한 사건의 반복을 막고 제도적 영역에서나 민간 영역에서나 출신국, 체류자격, 인종으로 인해 차별당하는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을 시급히 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11년 10월 17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인권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노총금속노조 법률원,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새사회연대, 울산인권운동연대, 유엔인권정책센터, 전국장애인차별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