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제도권 인입이 목표이자 원칙”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다문화사회 진입 방안 제안 토론회
박종주 기자 메일보내기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이주노동자문화활동가미누석방을위한공동대책위가 미등록이주노동자합법화·다문화사회진입방안제안토론회를 개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 권영국 변호사의 사회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성공회대학교 박경태 교수,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정원 선전차장,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석원정 활동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황필규 변호사, 브리튼 헬러 펠로우 등 5명이 발제자로 참석했다.

토론회 시작에 앞서 한국에 18년간 체류하며 밴드 스탑크랙다운, 이주노동자의방송 등에서 문화활동가로 일하다 지난 달 강제 출국 당한 미누 씨(미노드 목탄, 네팔)에 대한 공로상 수여식이 진행되었다. 주최 측은 “한국 정부는 미누를 강제 추방했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가 문화활동가로서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를 기리며 공로상을 주려 한다”며 시상 배경을 밝혔다. 미누 씨의 지지자들이 낸 기금으로 제작된 상패는 스탑크랙다운과 이주노동자의방송에서 미누 씨와 함께 일했던 활동가들이 대리 수상했다.  
△ 사회를 맡은 권영국 변호사가 미누 씨의 공로상을 전달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한국 이주노동자의 현실

이정원 차장은 “단기노동력 수입 정책의 지속이 미등록 체류자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2004년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 제도의 야만적인 부분들을 제거한 제도이지만 직장 이동 제한, 체류 연한 제한 등 여전히 그 요인들을 상당히 안고 있어 상황에 따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다발적으로 발생시킬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발생한 것은 8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관광 비자 등으로 입국해 취업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대거 발생하자 정부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산업 연수생 제도나 고용허가제 등을 시행해 오고 있지만 2009년 1월 기준 정부 통계에 따르면 18만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이는 전체 이주노동자의 27% 가량을 차지한다.

박경태 교수는 “때리지 말아야지, 월급은 제 때 줘야지 하는 정도의 시혜적인 수준에서의 입장은 대체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지만 이주노동자가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다”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 인식을 분석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가 부각되면서 폭력이나 임금체불 문제는 어느 정도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임금 수준이나 노동 시간, 직장 이동 등 실질적인 수준의 노동권은 사실상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정원 차장은 “정부는 산업연수생 제도 시기와 비교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줄어드는 등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는 입장이지만 강력한 단속이 5, 6년째 지속되고 있으며 위장 결혼이나 난민 신청 등 다양한 수단으로 이주노동자가 유입되고 있다”며 단속 위주의 정부 시책이 낳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한편 외국적 동포들은 방문 취업자 제도를 통해 국내 노동시장에 진입해 왔는데, 경제 위기와 함께 정부가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정원 차방은 “정부가 쿼터제를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고 건설업의 경우 더 이상 쿼터를 내어주지 않을 뿐더러 이미 취업한 경우에도 등록제를 시행해 언제든지 불법 신세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

석원정 활동가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한 나라의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성 없는 수준”이라며 “실효성 없는 당위론과 탁상공론에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로 “창피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석원정 활동가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단속-자진출국 기간 설정-부분적 양성화의 순환”으로 “제도 정비 전에 전체적으로 (이주노동자 사회를)흔드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누 씨의 강제 출국 역시 일제 단속 기간 시행에 앞선 ‘본보기 식 표적 단속’이라는 여론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박경태 교수는 “다문화에 대한 찬양이 높아질 수록 이주노동자,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소외는 높아지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에게 이루어지던 지원을 삭감해 결혼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원 차장은 “이주노동자 유입을 구실로 결혼 이주자나 난민신청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 역시 실제 난민들까지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시킬 수 있어 문제”라며 “이 역시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대대적 단속 위주의 정책이 낳은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발제자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양산 문제의 근저에 단기 체류 위주의 정책이 있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했다. 박경태 교수는 “일 잘하는 장기 체류 숙련공들을 다 내보내고 말도 못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받고자 하는 것은 인종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며 “단기 체류는 괜찮지만 한국에 눌러 살거나 한국인과 결혼해 자식을 낳거나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정서가 있다”고 사회적 의식을 분석했다.

이정원 차장은 “노동자로서 들어온 외국인이 이민으로서 정착할 수 있는 전향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한 미등록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는 힘들 것”이라며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우선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며 인구 부족을 강조하면서도 부유한 이들만을 받아 들이려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비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에 대한 반대 입장의 주요 논리엔 내국인 노동시장 위축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박경태 교수는 “한국의 경우 내국인 노동시장과 외국인 노동시장이 분리되어 있다”며 “건설 노동이나 돌봄 노동의 경우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재중 동포들이 종사하는 영역으로 이주노동자 일반으로 묶을 수 없는 재외 동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국의 사례는?

황필규 변호사와 브리튼 헬러 펠로우는 유럽과 미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사례를 주로 소개했다.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경우 경제 성장 속도가 빨랐던만큼 한국보다 먼저 미등록 이주노동자 발생을 경험했으며 적극적인 합법화 움직임 역시 한국보다 먼저 일었다.

세계 대전 직후인 60년대 초반 농업 노동자 수용에서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역사가 시작된 미국의 경우 3770만 명에 이르는 이주민 중 미등록 이주민이 30%에 이른다. 대부분이 멕시코나 아시아에서 유입된 이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노동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주로 위험하거나 비위생적인 업종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미국의 합법화 움직임으로는 DREAM(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 이주 미성년에 대한 개발, 구제, 교육) 법안이 있다. 2001년에 최초로 발의된 후 2005년, 2007년 등 몇 차례 의회에 상정되었으나 아직 통과되지 못한 DREAM 법안은 미등록 이주 미성년에 대해 학사 학위 취득 혹은 입대를 통해 영주권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미성년의 경우 부모의 미국 영주권 취득을 통하지 않고서는 영주권을 얻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DREAM 법안이 통과될 경우 부모의 불법 체류 여부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영주권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DREAM 법안은 수차례 논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관련 법안의 개정에 영향을 미쳐 왔으며, 최근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온 공화당 역시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더 큰 가능성을 얻고 있다.

한편 스페인의 경우 2005년 2월부터 5월까지 3개월 간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대대적인 합법화 조치를 단행했다. 기업이나 가정에 고용된 이주노동자에 대해 이루어졌던 스페인의 합법화는 70만 건의 신청자 중 57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시행되었으며 합법화된 이주노동자의 81%를 사회보장 체계에 편입시켰다. 이 조치는 이주노동자를 노동법의 적용 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사용자에 의한 착취를 근절시켰으며, 이주노동자의 가족 구성원에게 간접적인 합법화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통합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벨기에와 아일랜드의 경우 각각 지난 9월 15일부터 12월 중순까지, 10월 11일부터 오는 연말까지의 기간동안 합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벨기에의 경우 일반적으로 미등록 체류 기간 6년 이상의 경우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약 25000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일랜드는 고용주의 계약 위반 등 본인의 잘못 없이 미등록 상태로 전락한 경우에 한해 일시적 체류 허가 혹은 고용허가를 내어주는 수준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 한국을 위해

박경태 교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동일노동, 동일임근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내국인 노동시장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원 차장 역시 “내국인 노동자와의 경쟁 문제에도 합법화가 좋은 역할을 한다”며 “미국의 경우 내국인 하층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 효과가 있었다”고 전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이 당사자들의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분리된 노동 시장을 통합함으로써 내국인 노동자들의 경쟁력 역시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경태 교수는 “미국 국경 수비대의 예산과 미국 내 멕시코 출신 불법 체류자 수는 관계가 없다”며 “숫자의 영향을 주는 것은 멕시코의 경기”라고 말했다. 단속 정책으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유입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석원정 활동가는 “비자 발급 확인서 부여 등 인센티브 연계 방식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저감에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정부 정책에서 확인 되었다”며 “불법 상태로의 유인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경태 교수에 따르면 가부장제적 인식 역시 진정한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막고 있는 요인이다. 남성 중심적 혈통 개념이 남성으로 형상화된 이주노동자에 대한 경계와 결혼이주여성에게만 편중된 정책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박경태 교수는 “저소득층, 저교육층 등 한국 사회의 소외계층이 외국인 노동자 층과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외국의 사례 등에서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 관계에 내몰릴 수 있는 내국인 소외계층이 이주노동자와 적대적 관계를 이루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석원정 활동가는 “정부의 거듭되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일정규모로 항상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노동시장에서 일정 정도의 수요가 항상적으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또한 “강력단속과 강제추방위주의 정책 기조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되었고 오히려 단속과정에서 인권침해 사례만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석원정 활동가는 “정부의 정주화 예방원칙은 보조적 원칙으로 남아야 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제도권 내로 인입 시키는 것이 목표이자 원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