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시행 1년에 파탄을 선언한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성 명 서



우리는 오늘로부터 정확히 1년 전, 2004년 8월 17일을 기억한다.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고용허가제가 하나의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이미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조금도 반영하지 못한 제도이며 오로지 자본가의 고용만을 허가하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확신은 고용허가제와 함께 전면화된 단속추방 정책 하에서 지난 1년을 죽거나 내쫓기지 않고 살아남은 이주노동자에게 고용허가제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했던 산업연수생제도의 본질을 그대로 가져온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착취를 연수생의 이름 대신 노동자의 이름으로 이어가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오늘, 2005년 8월 17일은 한국 땅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허가제’라는 새로운 착취의 굴레가 씌워진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1년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보냈던 시간 중 가장 고통스럽고도 기나긴 시간이었다. 전면화된 단속추방 정책은 불법 폭력 연행으로 치달았고,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을 유린당했을 뿐만 아니라 단속반의 폭행으로 부상당했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이러한 극단적인 단속추방 정책은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등의 착취를 강요당했고 해고의 불안과 고용주의 신고 협박은 다시 단속추방 정책과 맞닿아 이주노동자를 완전하게 고립시켰다. 그러나 불법 폭력까지 동원된 추방 정책으로도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고용허가제 시행 1년의 오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9만 6천명으로 전체 35만 6천명의 56%로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은 단속추방을 반대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도 여전히 노예적이고 기계적인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땅에서 일하기도 전에 기준의 6~7배에 달하는 송출비용과 정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성을 떨치는 브로커 사기로 기만당하고 있다. 또한 고용허가제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보여지듯이 이주노동자의 42.4%가 법정근로 시간을 훨씬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21.9%가 월 64만원 수준의 저임금을, 그리고 76.3%가 상여금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산업연수생제도 때에나 악명을 떨치던 여권 압수와 감금, 폭행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노예화시키고 있었다.

고용허가제의 본질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업장이동자유의 제한과 1년마다의 재계약은, 정부가 어떤 거짓말로 포장하더라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고용과 해고에 대한 자유로운 권한을 부여받은 고용주와 달리 이주노동자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사업장 이동을 허락받을 수 있을 뿐이며, 오히려 이러한 제한적인 조항은 고용주에 의해서 악용되고 있다. 그리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하는 조항은 이주노동자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자리매김 시킴으로써 실질적인 노동권을 박탈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재계약 자체가 자본가의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고용허가제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은 고사하고 부당한 대우와 노동착취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여지조차 남지 않는다. 더구나 2007년 산업연수생제 폐지를 발표하고도 노동부는 8월 1일 산업연수생을 7천명이나 더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공고하였다. 이것은 정부가 산업연수생제를 폐지시키기 위한 의지가 없다는 것이며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를 통합시키는 것으로 산업연수생제도를 존속시키려는 의도임에 분명하다. 결국, 이러한 고용허가제 속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과 부당한 차별금지라는 고용허가제의 취지는 분명한 거짓선전, 35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만인 것이다!

이에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기만하는 고용허가제의 거짓 선전과 정책의 명백한 실패를 폭로하며 단 한 순간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다시금 밝힌다.

-. 정부는 강제단속과 같은 미봉책을 중단하고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를 즉각 철폐하라!
-. 20만 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전면 합법화하고 우선적인 노동허가를 보장하라!
-. 사업장 이동이 자유롭고 노동3권이 완전 보장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하라!
-. MOU체결이 아닌 신규 이주노동자 도입계획에 대한 이주노동자 주체들과의 사전 합의를 약속하라!
-. 노동허가제를 통해 자유롭게 일자리를 구하고 최소 5년 이상을 일할 수 있는 권리와 이후 특별노동허가 5년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2005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 파탄선언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이주노동자 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