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법도 없나요?"...어느 이주노동자의 마지막 물음

故 갈레씨 노동자장 치뤄져, "이주노동자는 살고 싶다"

전근배 기자 2011.07.27 11:47

7월 26일 대구 성서공단의 세인산업 공장 정문에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한 젊은 이주노동자의 영정이 올려졌다. 작은 액자 속에는 지난달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지 불과 9개월 만에 진실을 밝혀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을 맨 네팔 이주노동자 故 던 라즈 갈레 씨가 있었다.

숨이 멎은 자는 말할 수 없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  故 던 라즈 갈레 씨가 일하던 회사 앞에서 그의 노동자 장이 열렸다.

故 던 라즈 씨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아래 대책위)는 지난 6월 12일 '반드시 진실을 밝혀달라'며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인이 어떠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사건을 담당한 성서경찰서와 해당 사업장에 진상을 규명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 후 지난 7월 18일부터는 고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며, 이번 죽음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없이 무관심과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회사 측에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많은 어려운 과정들을 통해 7월 22일 대책위와 회사 측은 ▲유족의 생계비와 자녀양육비 지급 ▲병원 시체안치비 및 유족 항공료 지급 ▲재발방지를 위해 적극 노력(인권교육 등) 등에 합의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꼭 40일 만이었다.

이주노동자는 '살고 싶다'

고국에 부인과 10살 난 딸과 5살 아들을 둔 라즈 씨는 2010년 9월 27일 한국에 입국해 고용허가제를 통해 첫 사업장으로 달서구 대천동의 이불솜을 만드는 제조업체에서 일하게 된다.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는 9개월여 동안 지속적으로 밤낮이 바뀐 야간근무를 했다. 그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난 3월경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고인은 네팔 동료들에게 "스트레스가 심해 힘들다. 회사가 나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 '화장실을 가는데도 감시하듯이 따라온다"라고 자주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처음에 말을 자주 걸어주던 관리부장이 갑자기 자신과 말을 하지 않는다며 한 통의 영문으로 된 편지를 썼고, 첫 번째 편지를 쓰고 나서도 상황이 변하지 않자 또다시 관리부장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는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결국 라즈 씨는 지난 6월 8일 네팔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고,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퇴사 조치했다.

6월 10일 회사에서 나온 라즈 씨는 구직신청을 마친 후 네팔동료의 말을 들어 잠시 네팔에 다녀오기로 하고 티켓을 예약해 둔 채 친구의 기숙사 화장실에서 목을 매었다. 그는 네팔이 아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고인의 영문 유서 내용>
Hi, Everybody! and Korea Goverment.
(한국정부와 모든 분들에게)

I am enocent(innocent) I have no mistake. Company cheating me. I am no crazy and everythings is no true. If I have a mistake, company can police case, company can go court. Why they didn't it?
(나는 결백하고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회사가 나를 속였습니다. 나는 미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거짓입니다. 만약 내게 잘못이 있다면 회사는 경찰서에도 갈 수 있고 법원에도 갈 수 있습니다. 왜 회사는 그러지 않았을까요?)

Here is no law? I have two small baby. and
(여기에는 법도 없나요? 내게는 어린아이 둘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쓰려고 하다 지운 흔적이 있음.

Company take my signiture(signature). What thing is in that paper. Manager say, this paper for company change paper. So I do sign
(회사가 나에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 종이에 무엇이 있었는데, 부장이 말하기를 이 종이는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한 종이라고 해서 서명을 했습니다.)

Please, investigation please.
반드시 진실을 밝혀주세요.

고인은 회사 측이 (그 자신도 모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화를 단절하고, 고립시키자 답답한 마음에서 회사 관리자에게 두 차례나 편지를 썼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가 힘든 야간근무를 마다치 않고 일할 때에 그는 동료뿐 아니라 회사 경영진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회사로부터 어느 순간 '정신이상자'로 취급되며 내몰렸다.

9개월 동안이나 지속한 야간근무 때문에 그의 일상생활은 피폐해지고 심신은 매우 지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서 돌변한 회사의 냉랭한 반응은 여전히 낯선 이국 생활을 하던 그가 상당히 괴로워할만 했다.

하지만 자신만을 바라보며 고국에 있는 두 아이와 아내를 생각하며 쉽사리 회사를 그만두거나 사업장을 변경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초조함과 불안함 속에서 사실상 회사에서 쫓겨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 사업장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만 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책위는 "고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한다"라고 밝혔다. "합법적 신분으로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정도의 차별과 수모 속에 놓여 있다면, 미등록 노동자들의 노동권, 인권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충분히 알고도 남지 않겠는가?"고 반문한다. 사실상 이러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죽음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이주정책 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삶이라는 것이다.

대책위는 "투쟁은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라며 앞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과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기사제휴=비마이너)

▲  故 던 라즈 갈레 씨의 영정 사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타살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