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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유연한노동?
Subject   (edaily리포트)9.1 노동자 없는 노동절
(edaily리포트)노동자 없는 노동절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9월1일은 미국의 노동절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5월1일 `메이데이`를 노동절로 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 부분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노동절은 1882년으로 그 기원이 올라갑니다. 노조 때문에 한국에 투자하지 못하겠다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많다는데요, 정명수 뉴욕 특파원이 12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에서 노동절과 노조의 의미를 생각해봤답니다.
잘 아시겠지만 `메이데이`의 시작은 미국입니다. 1886년 5월 시카고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총파업을 벌였습니다. 당시 미국 경찰은 총파업을 불법으로 간주, 무자비한 탄압을 벌였던 모양입니다.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는 5월1일을 메이데이로 선포, 전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를 북돋았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별로 유쾌한 역사는 아니죠.

그런 때문인지 미국의 노동절은 5월 1일이 아니고, 9월 첫째 월요일입니다. 9월 노동절도 미국 노동 운동 역사에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메이데이 총파업 4년전인 1882년 9월 5일 센트럴 레이버 유니온은 뉴욕 맨하튼의 유니온 스퀘어에서 역사적인 노동자 행진을 거행합니다. 1894년 미 의회는 9월 첫째 월요일을 `레이버 데이(Labor Day)` 공휴일로 선포합니다.

미국의 노동운동가들이 왜 5월이 아닌 9월을 노동자의 날로 받아들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오늘날 `레이버 데이`는 미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휴일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각급 학교는 9월에 새학기를 시작합니다. 레이버 데이는 여름방학의 끝, 새학기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죠. 학생이 있는 미국의 가정에서는 레이버 데이 연휴를 즈음해서 가족 여행을 다녀오거나 새학기 준비를 하게 됩니다.

쇼핑몰에서는 이른바 `백 투 스쿨(Back to School)` 시즌에 맞춰 학용품, 의류, 신발 등의 할인행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집니다. 뉴욕주의 경우는 의류, 신발, 가방 등에 대해서 이 기간 동안 세금을 물리지 않았습니다. 쇼핑몰마다 학부형들과 쇼핑족들이 넘쳐났습니다. 레이버 데이는 한마디로 새학기 준비를 위한 `황금 연휴`, `쇼핑 연휴`인 것이죠. 특정 날짜가 아닌, 특정 요일을 휴일로 지정하는 재치가 번뜩입니다.

역사적인 노동절에 노동자 집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니온 스퀘어에 혹시 집회가 있는지 지역 신문을 찾아봤지만 그런 공고는 없더군요. `레이버 데이 빅 세일` 광고 전단만 무수히 배달돼 왔습니다.

미국에서 최초의 노동자 행진, 메이데이 총파업이 있은지 120년, 미국의 노조, 노동운동은 `투쟁`이나 `파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노동시장은 또 얼마나 유연합니까. 기업은 경영상의 이유로 언제든지,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해고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노조가 해고를 막기위해 동분서주한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간혹 해고에 앙심을 품은 노동자가 총기 난동을 부리는 사고가 있을 뿐입니다.

미국의 `아주 오래된 노동조합`은 극한 대치, 파업의 역사를 뒤로하고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노동운동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말 기업할 맛이 나겠죠. 한국의 노동시장, 한국의 강성 노조에 혀를 내두르는 기업가들은 이런 미국이 정말 부러울 것 같습니다.

2000년 불황이 시작된 이후 미국 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4년째 무자비한 감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완연하지만 언제 `감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갈 지 알 수 없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이 이같은 감원 열풍에도 그다지 반발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실업에 대비한 시스템이 잘 돼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통화정책이라는 것도 내용적으로는 실업 대책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연준리가 금리를 내리면, 모기지 금리가 떨어지고, 집을 소유한 노동자들은 리파이낸싱을 통해 매달 내는 모기지 이자를 줄여서 생활비에 보탤 수 있습니다. 실업 수당과 같은 기본적인 사회복지는 별도로 가장이 일시적으로 실직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한 것이죠.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요.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면 시중 은행들은 대출금리보다는 예금금리를 더 많이 낮춰 빈축을 사곤합니다.

120여년의 노동운동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과 한국을 수평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노조의 강성 여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조가 강성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과 함께, "한국의 노조는 왜 이렇게 강성일 수 밖에 없는가", "노조를 극한 투쟁으로 몰고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사회 시스템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합리적인 노사 관계가 만들어질 것인가"를 고민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노동시장 유연성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도 뛰어난 노동시장 유연성을 자랑하고 있지만 주기적인 경기불황을 막지는 못합니다. "노조 때문에 경제가 망한다"는 논리대로라면 미국 경제는 불황을 모르는 천국이어야 합니다. 노동시장이 아무리 유연해도 자본의 과잉투자, 경영진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의한 이윤의 감소는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조차도 기업들의 지나친 아웃소싱이 산업 공동화,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저임금, 저비용을 찾아 생산기지를 해외로 돌리고, 값싼 제품의 수입에 주력하는 바람에 미국의 경상수지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경제 구조가 디플레이션 요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가들도 툭하면 노조를 탓하며 "공장을 해외에 짓겠다"고 합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아웃소싱의 폭을 넓히는 것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에 득이 되는 것인지 갸우뚱해지는 대목입니다.

노조 때문에 경제가 망해서도 안되지만 노조를 핑계로 경제를 망쳐서도 안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명수뉴욕특파원/il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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