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엔 두려움과 비참함 없어요"
[인터뷰]명동성당 농성 참가 라이-노동허가제 위해 끝까지 해볼 것…죽지말고 함께 싸
노동과세계 제266호
박수경
집에 가고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 산산이 부서진 '코리안드림'의 주인공들이 11월15일부터 명동성당과 성공회성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주노동자 라이(Kul. Ba. Rai, 33)를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만났다.
"예전엔 단속추방 얘기만 나오면 숨어 있었다. 밤에 잠도 못 자고, 계속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고향에서 나만 믿고 있는 일곱 식구와 빚 때문에 집에 갈 수도 없다. 지금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1992년 집안을 살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입국한 22살의 젊은 청년은 장기간 노동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신분에 시달린 탓인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브로커에게 많은 빚을 지고 관광비자로 한국에 온 라이는 11년 동안 부모님과 다섯 동생을 부양했다.
"숨어 있고, 도망 다니는 것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많은 나라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인간답게 싸우는 것이 더 좋다.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강제추방의 두려움과 불안, 비참함까지 느껴야 했지만, 여기서는 그런 것 없다."
네팔공동체 소속으로 이번 농성에 참여한 라이는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숨지말고, 죽지말고,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전 이주노동자 두 명이 자살했다. 무척 가슴이 아팠다. 이주노동자든, 한국노동자든 다 같이 '노동자는 하나'란 생각으로 함께 싸우면 꼭 이길텐데…"
라이는 강제추방도 문제지만, 내년 8월부터 실시되는 '산업연수제 병행 고용허가제'도 빨리 노동허가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장이전의 자유를 빼앗아, 회사의 비인간적 대우와 차별에 시달리다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공장을 뛰쳐나가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브로커를 통해 많은 빚을 지고 한국에 들어오고 있고, 그 빚을 갚고 돈을 벌 때까지는 집에 갈 수 없다.
"나도 빨리 돈 벌어서 집에 가고 싶다. 11년 동안 집 생각 많이 했다. 그러나 여기서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해 끝까지 싸우다 갈 생각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노동자' 라이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박수경 work0818 ＠ nodong.org
<사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라이씨가 추운 날씨를 녹이는 환한미소를 짓고 있다. 이정원leephoto ＠ nodong.org
2003-11-20 18: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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