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명의 이주노동자가 자살을 했습니다. 11.11,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달려오는 전동차에 의해서 다르카가 죽었습니다. 11.12, 일하던 공장에서 리톤은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저 또한 여기 미국에서 이주노동자였습니다. 미국 역시 불법체류자에 대한 부시 정권의 검문과 수색 그리고 추방의 광풍이 거셉니다. 다행히 저는 합법체류신분을 유지해 왔습니다만, 불법체류자로 살아온 여기 교포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었지요.
한밤 중에 급습한 이민국 직원과 경찰을 피해 뒷창문을 뛰어내려서 도망쳐야 했던 이야기들, 70년대 남미이민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역이민해서 닭공장을 전전하면서 다소간 불법적인 방법으로 합법체류자격을 얻어낸 이야기들...
합법체류자격으로 살면서도 물설고 땅설은 이곳 생활에서 언제나 가슴 저 밑바닥에 지속적인 불안감이 깔리지요. 그런 판에 불법체류자로서 산다는 것, 여기 생활에 가장 중요한 운전면허증조차도 없이 산다는 것(미국에는 주민등록증 대신 운전면허증이 신분확인서류입니다)....언제 자신에게 들이닥칠 지 모르는 이민국 직원과 경찰들에 대한 불안감...신경을 갉아 먹힙니다.
불법체류자로서의 삶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가 어찌 글 하나로 정리되겠습니까? 여하간 저는 그때 지하철 선로 앞에 서있었을 다르카에게서 마치 이곳 뉴욕 지하철 선로 앞에 분노와 절망으로 서있는 나 자신을 떠올립니다. 물론 저는 뛰어내리지 않겠지만, 이역만리 타향에서 버림받고 절망당한 한 개인의 처지가 결코 남의 일같지가 않습니다. 자...제가 좀 드라이한 편입니다. 다르카의 죽음에서 애통하는 감정보다 저는 몇가지 이성적인 것을 짚는 작업부터 먼저 해야 겠습니다.
1. '잇슈에 대한 신분차별'을 해선 안됩니다
아직 정확한 사실을 모른 채, 이렇게 말합니다. 이 점 이해바랍니다. 민노총 그리고 민노당 그리고 모든 노동운동 형제들은 다르카와 리톤의 영정을 먼저간 노동해방열사들과 나란히 모셔야 합니다. 한편으로 참 어려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래야 하지 않는가 저는 주장합니다. 배달호, 이현중,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곽재규 동지의 곁에 다르카와 리톤의 영정을 모셔야 합니다.
다르카와 리톤,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노동해방의 이름으로 보듬어 안는 것에는 인식심리 상 여러가지 장애들이 존재합니다. <국적의 문제>는 치명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비정규직-불안정 생활자들이 형식상으로만 국민일 뿐, 실질적으로는 인간취급도 못받는 현실을 안다면, <국적이란 형식>보다는 <인간이란 실질>을 기준으로 다르카와 리톤 앞에 노동해방의 이름을 올려야 합니다. <한국 국적이 없는 다르카와 리톤> 이기 전에 <인간취급도 못받고 죽어간 노동해방열사>로써 그분들을 안식케 해야 합니다.
다르카와 리톤이 죽은 사실로 인해서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정부가 무슨 조치를 취할 지 모르겠습니다만...내 생각엔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에서도 다르카와 리톤은 '실질적인' 인간/국민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아직 실질적으로는 인간취급도 국민취급도 못받는 자들>이었던 다르카와 리톤 동지로부터 우리가 배달호, 이현중,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곽재규 동지들에게서 받았던 '노동해방'의 이름을 다시 받아 안아야 합니다.
2. '인식할당의 불공정 행위'를 범해선 안됩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대해서 불공정하게 인식하는 것은 마치 서프라이즈가 민노당과 노동자들에 대해서 불공정하게 인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혹시나 저는 다르카와 리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노동자들이 마찬가지로 불공정한 인식행위를 범하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국적의 장벽>은 너무나 뿌리 깊고 오랜 무의식적 원형입니다. '땅'....다르카와 리톤 동지를 남한 노동해방운동의 소중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자면, 우리는 우리 인식심리의 저 밑바닥에 깔린 <땅의 경계선>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여권>이 다르고 출입국 심사대를 거칠 때, 외국인 대열에 세워두는 것을 한국 노동운동이 되풀이 해서는 안됩니다. '땅-국적-시민권'으로 이어지는 밑바닥 무의식적 정당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이게 너무나 힘들기에 김주익과 이용석에겐 가능한 정서적 동질감이 다르카와 리톤에게로는 나오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이미 위에서 말한 <실질적으로 인간이 못되는 현실>과 함께 <땅/국적의 무의식>은 심지어 오늘 신/구 노동운동과 신체제 좌파운동 속에서도 이들 이주노동자들에게 '인식할당을 불공정하게 하는 원인'일 수 있습니다.
<니들 귀족언론이 언제 노동자들이 평화적 요구할 때는 쳐다나 보았었냐? 죽어야 그리고 불을 질러야 니들 기자들이 흥미거리로라도 다루어 주지 않았더냐?>라는 한진중공업 늙은 노동자의 분노를 저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한국 국적이 아니고, 피부색깔이 다르고, 가장 극소수 부문 노동자들이기에> 좌파라고 노동자라고 하는 우리들 마저도 이들 이주노동자들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할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래선 안됩니다. 우리는 다르카와 리톤의 사진을 죽어간 노동해방열사들의 곁에 당당하게 올려야 합니다.
단병호 위원장이 진정으로 '비정규직 운동을 통해서 노동계급의 전선을 새롭게 짜고자 한다'면...다르카와 리톤 동지의 장례를 그 어떤 죽음에 못지 않게 정성을 다해서 치루어야 할 것입니다. 결코 찾는 사람이래 보았자, 피부색 다른 외국인들 몇몇과 한국 노동운동가들 얼마 뿐인 빈소로 내버려 두어선 안될 것입니다.
3.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
노사모가 현재 한국 계급급투쟁에서 주류라면, 한국 노동운동에서는 민노총-민노당으로 대표되는 정규직 노동운동이 주류입니다. 이에 반해서 여성노동자들은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은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신분차별과 불공정한 인식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너희는 겉만 인간이지 아직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취급 못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신체제 좌파운동이 그리고 신노동운동은 반드시 이러한 차별과 불공함을 내재적으로 자기 인식과 의지에서 극복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계급사상을 넘어서 다중사상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낍니다. 일국적이 아닌 <자유인>으로서의 <거주이동의 완전한 자유>를 확보한 노동해방을 저는 꿈꿉니다. 땅(토지) 위에 그어진 사유재산의 금긋기와 필사적인 항쟁을 벌어여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 의식 속에 그어진 땅의 경계선들도 말입니다. <땅의 문제>는 너무나 중차대한 인식론/존재론적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서술코저 합니다.
끝으로 이제 마악 짐들을 운송회사편으로 부쳤습니다. 짐이래 보았자,책과 옷가지가 전부입니다만....반지하님 그리고 이국종님 그외에 저의 귀국을 따스하게 맞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특히 당일 저를 환영 나오시겠다는 분들께는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공항에서 바로 부모님 집으로 직행해야 할 듯 합니다. 구체적인 여러분들과의 만남은 따로 제가 게시판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이 점 다시 한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11.16일 한국에서는 불법체류자 단속과 강제추방이 시작되고, 그날 저는 8년간의 미국 이주노동자 생활을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여권을 들고,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해서, <국적>을 따져 묻는 국가의 장벽을 2개 통과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다음 모레 한국에서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돌아가신 노동해방열사, 다르카와 리톤 동지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합니다. 편히 하늘에서 쉬십시오.
해모수
200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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