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만나러 가는 이수호위원장에게]
내일(0304) 청와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수호 민주노총위원장의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간담회는 특정한 긴급 현안문제들에 대한 집중적인 대안 마련보다는 여타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인 의견교환의 성격으로 진행된다고 알려졌습니다. 포괄적인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 민주노총 지도자의 담화라... 물론, 지도자들끼리의 폭(?)넓은 의견교환이나, 의견조율은 (하시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득, 지난 시기 이갑용위원장이나, 단병호위원장의 당시 대통령들과의 청와대 간담회들이 떠오르는군요. 과연 그 때 그러한 만남들이 무엇을 얼마나 포괄적으로 다루며, 서로 미소를 교환할만한 성과들을 남겼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미련한 제 기억으로는 그닥 성과랄 것도 없는 무의미한 만남들이 아니었나 회고합니다. 그러면서 '대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포괄적으로 의견교환한다'는 것인지... 회의감도 드는군요.
사실, 노무현 집권 2년차를 경유하는 2004년 지금, 대한민국 노동의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 없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돈가진 이들은 여전히 더 많은 재화를 축적하고 있으며, 노동자 서민들의 삶은 그들의 노동강도와 무관하게 IMF 시절보다 더 피폐한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가 보다 확고히 재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무수한 비자발적인 실업인구가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고 그나마, 일자리를 가진 경우도 언제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길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의 '파견법 전 업종으로의 확대' 조치와 [일자리 창출 사회협약]이 가지는 그 교묘한 간극을 말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추동하며 멈출 줄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정책의 혜택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며, 결국 누구 수중으로 들어가는지. 또한, 정부의 번드르한 말잔치 속에 은폐되는 국민 다수를 이루는 하층 노동자, 서민들의 삶의 고통들은 얼마나 지옥같은 것들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부와 민주노총이 한가롭게 '포괄적인 간담회'를 할 상황인가 되묻고 싶습니다. 정부와 민주노총이 상호 포괄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것에 굳이 앞장서서 반대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긴급한 현안들을 뒤로 미룬 채 정부의 '구색맞추기 간담회' 들러리로 민주노총이 전락하는 것을 순순히 바라보기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수백일째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기나긴 싸움들을 전개하고 있는 장기투쟁 사업장이나, 여전한 노동활동가들에 대한 수배-구속 등의 현안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아울러, 백수십여일째 명동성당에서 추운 겨울을 지낸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라든가, 故 박일수님의 자살로 격화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인)권 침해의 문제라든가... 이 얼마나 긴급한 현안들입니까? 특히, 정부에 의해 선별적으로 처리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특급처리되어야 할 긴급사안입니다. 정부는 이미 2월 말일을 분기점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합동단속을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내일(0304)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마주한다는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긴급호소합니다. '포괄적인 의견 조율'을 위한 화기애애한 간담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예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노동자 서민들의 현실은 그런 화기애애한 간담회보다, 긴급한 현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들을 요청하고 있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그런 노동자 서민들의 지옥과도 같은 현실을 상기한다면, 이수호위원장은 간담회가 아니라, 긴급현안들에 대한 정부의 조속한 '조치'들을 촉구하는 임무로 청와대를 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 간담회에 참여하실 때, 유력한 민주노총 간부님들만이 아니라,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이주노동자 대표와 울산 진용기, 조광한 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동하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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