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의 첫날인 1월 1일과 2일, 1박 2일동안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쟁취를 위한 명동농성투쟁단'(이하 명동농성단)은 충북 영동으로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은 2003년 11월 15일 단속이 시작되기 하루 전에 시작되어 2004년 11월 28일, 380일만에 해단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예전 농성투쟁 참가자들의 수련회인 셈입니다. 감기와 개인적인 일때문에 다소 시일이 경과된 후에 글을 올리게 됨을 양해바랍니다.
-2003년 11월 15일 함께 농성을 시작했던 민주노총 평등노조 이주지부, 네팔 투쟁단, 그리고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연대해왔던 이주노동자들과 당시 개별 단체 소속으로 참가했던 한국인 활동가, 비디오 활동가 등 80여명이 새해를 충북 영동에서 같이 맞이했다.
충북영동에 위치한 마음수련원은 원래 폐교였던 곳을 사이버노동대학에서 구입해 실내를 개조해 노동자들의 수련회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마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겨울 햇살이 참으로 곱고 따사로웠다. 모처럼의 나들이라 기분이 설레일 만도 하지만 현재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단속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참가자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따라서 이 곳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시작된 토론이 밤늦도록 계속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2003년 11월 15일부터 2004년 11월 28일까지의 지루하고 잔인했던 농성투쟁 과정과 의미를 평가하고 향후 투쟁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투쟁의 전위 역할을 했던 이주지부의 총평에 따르면 이번 농성투쟁이 이주노동자 주체 중심, 인권을 넘어선 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발전한데 의의가 크다고 했다. 또 농성투쟁을 통해서 이주노동권의 문제를 사회적 쟁점화시켰고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고용허가제의 본질을 폭로하는데 기여를 했으며 민주노총, 학생, 시민 등에 폭넓은 연대를 이끌어 낸 점을 긍정적인 성과로 평가했다. 하지만 외노협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단체들과 전국적인 공대위를 구성하지 못한 점, 농성과 대중집회 전술 이외 투쟁전술의 부족,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아직 초보적 수준인 점 등을 문제점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향후 과제로 지역과 공장 투쟁 조직화와 전국이주노동조합 건설, 민주노총 내부를 조직하는 활동, 이주운동과 관련한 정책 대안을 개발하는 문제를 들었다.
이 총평을 토대로 참가자들은 조별로 나뉘어 농성투쟁 전술의 한계, 단속추방 저지 투쟁의 성과와 한계, 자진출국 거부 투쟁의 의미, 단식투쟁과 연행동지 구출 투쟁의 평가, 생활 평가 등 전반적인 농성과정을 되돌아보고 비판과 반성을 했다. 또 늦은 시간에 저녁을 지어먹고 곧바로 향후 대책에 대해 논의를 했다. 이 때는 이주노동자들의 요청으로 한국인활동가와 이주노동자들이 분리되어 허심탄회하게 자국어로 자유롭고 활발한 논의를 했다.
조별토론에 앞서 이주지부 활동가 쏘냐씨가 지난 해 12월 18일 '세계이주노동자의 날'행사를 위해 네팔에 방문했던 내용을 보고했다. 그는 '지펀트(네팔노총)'가 주최하는 노동자대회에 참가해서 한국의 이주노동자 상황을 알리고 국제적 연대를 호소했다고 했다. 네팔은 현재 마오이스트와 왕당파들간의 전쟁이 치열하며 도로 곳곳에서 검문을 하는 실정이고 그 와중에서도 대회가 열린 이타하리 지역에는 7천명의 네팔 노동자가 모였다고 했다.
조별토론 결과 참가자들은 농성투쟁의 내면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투쟁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점- 여전히 단속이 진행 중이고 고용허가제가 그대로 시행 중인 상황-을 지적하면서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평가했다.
-단식과 연행동지 구출 투쟁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연행동지 구출이 농성단의 요구사항이었으나 결국 한 사람도 구출하지 못한 것은 지역 조직하는데 걸림돌이 될 정도로 큰 실책이다. 출입국 집회나 방글라데시 대사관 집회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고 대응책으로 단식투쟁이 적합했는지, 그것과 별도로 다양한 투쟁전략을 활용하지 못한 점을 반성했다. 샤말은 선전전 중에 연행됐는데 대표 보위에 너무 안이했다. 단식투쟁을 성과없이 해단한 것, 보다 폭넓은 투쟁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 가슴아프다. 외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탄핵, 파병 등 여러사안에 우리 문제 묻혔다.
-또 외노협 등 다른 이주노동자단체와 공동투쟁이 이틀만에 와해되고 그 이후에도 그것의 복원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농성단은 여러 단체들의 복합체인만큼 문제점에 대해 사전 준비가 필요한데 그러지 못했고 다른 농성단들이 해단한 이후 고립되어 투쟁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각 단체들이 자기 입장만 갖고 이주노동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1년 넘게 타농성단과 연대 부족했다. 이주노동자 대표 간담회도 한번 열어보지 못했다.
-지역조직화의 문제, 40만 이주노동자들 중에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사람 별로 없다. 다른 이주노동자단체, 사회단체들은 노동권 쟁취 투쟁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관심있는 지역 센터와 공동체에게 노동조합으로의 전망을 세워가야 하는데 농성단 안에서 이 부분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 농성을 하면서 2004년 3월까지는 열심히 했지만 4월부터 힘이 빠져서 지역을 챙기지 못했다. 지역에서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 선전전에 한계가 많았다. 단속으로 인한 조직의 어려움이 있었다.
-해단식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농성때 함께 결합한 단체들이 다 모이지 않아 쓸쓸하고 아쉬웠다.앞으로의 대책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가시적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농성이 끝나버리니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다.
-자진출국거부투쟁은 잘됐다. 지역의 투쟁기금으로 신문에 광고도 냈고 정부의 거짓 선전을 폭로하고 이주노동자 주체적인 투쟁 결의를 다지는 의미가 있었다. 즉 고용허가제로 재입국되는 것은 의미없고 여기 남아서 노동허가제를 쟁취하겠다는 것이었고 지역조직의 힘이 됐다.
...등등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농성투쟁을 통해 스스로 노동자성을 자각하고 여러 연대단위들을 조직했으며 현재까지 나가지 않고 투쟁 결의를 높이고 있는 것이 단속이 실패했음을 의미하고 투쟁의 성과라는데 공감했다. 또 2004년의 더러운 것, 잘못했던 것 모두 버리고 좋은 것만 머릿 속에 담아 동지들 보면서 2005년에는 단속을 없애자고 다짐했다.
조별 평가 보고가 모두 끝난 후 농성단 상황실장이었던 김혁 국장은 "동지들 발표 참 잘 한다.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동지들과 처음에 농성 시작할 때는 속으로 이 오합지졸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서 투쟁할까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오늘 동지들 의견 발표를 들으니 이것도 농성투쟁의 성과라고 보고 이후에 투쟁 더 힘차게 잘 할 것 같다"고 격려해 참가자들을 웃게 했다.
향후대책 토론 결과에서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노동권 쟁취를 위해 전국단위투쟁단을 건설해야 한다는데는 공감했으나 수도권 지역의 경우 기존의 평등노조 이주지부의 확대, 강화를 지향할지, 새로운 수도권 노조를 건설해야 할 지의 문제가 쟁점이 되어 팽팽하게 의견 대립이 됐다. 전자의 논거는 이주지부의 역사와 자긍을 강조하며 분회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고 후자는 이주지부에 가입하지 않는 지역 이노와 센터의 이노들을 위해 새로운 수도권 노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논쟁은 1월 9일 간담회에서 어느 정도 결론을 도출하기로 했다.
.....이로써 대강의 수련회 평가회의 기록을 마칩니다. 그동안 단속과 출국, 취업 문제 등으로 농성참가자들이 많이 빠져있었고 짧은 시간에 피곤한 몸으로 여러가지 사안을 논의하느라 충분한 정보 공유와 의견 검토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렵지만 아쉬운대로 이 자리 역시 인간해방, 노동해방으로 가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세상을 향해 각자의 위치에서 또 한번 힘차게 전진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배운 우리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이주노동자들이 절규에 가깝게 외쳤던 말로 이 글을 끝내겠습니다.
"강제추방 박살내고 노동비자 쟁취하자! 노동.비자.쟁취.투쟁!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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