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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OhmyNews)고용허가제, 그 빛 좋은 개살구
고용허가제, 그 빛 좋은 개살구
한 이주노동자의 호소... "땀흘려 일한 우리가 무슨 잘못 있나"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최영환 기자    



9월에 들어서면서 비자 신청에 관해서 이주노동자들과 사업주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통과됨에 따라 한국에 입국한 지 4년 이하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합법화가 이뤄지고 그 시행 기간이 9월 1일부터 11월 15일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해당 이주노동자들은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에 여권, 국내체류신고서, 고용확인서, 표준근로계약서 등을 제출해 취업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그것과 신원보증서를 출입국관리소에 제출하면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다.

표면상으로는 내년 8월부터 외국인들이 내국인들과 동등하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로 일하고 마치 현재 '불법체류자'들을 대거 사면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아리송한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사업장 이동의 제한이나 연수제도와 병행실시 되는 문제점을 차치하고라도 당장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방침이 허술하기 이를데 없다.

법안에 따르면 한국에 입국한 지 3년이 안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최장 2년까지 체류기한이 연장되고 3년에서 4년 사이의 사람들은 일단 본국에 돌아갔다가 재입국해서 근무하도록 했다.

한편 4년 이상된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없이 11월 엄중히 단속해 강제출국시키겠다는 말만 무성하다. 정부는 이들의 정주화를 막기 위해서 처지가 비슷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구별짓기'를 해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이 제도에 대해 감격할까? 합법화 대상이 된 이주노동자들일지라도 입국할 때의 송출비를 다 갚고 돈을 벌어가기 위해서 2년은 짧다고 보고 특히 3-4년 사이의 이주노동자들은 재입국 여부에 대해 의구심이 매우 큰 편이다.

4년 이상된 사람들은 여태까지 사람대접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했고 이제 한국 문화에 적응했다 싶은데 무작정 나가라고 하니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늘도 오전부터 비자 연장 관련한 상담 전화가 주를 이룬다. 한국에 온 지 9년이 됐다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샤킬(38)씨는 전화통에 대고 아예 울분을 토로했다.

마치 국가공무원을 대변하는 듯한 내 설명을 잠자코 듣던 그는 "그러면 우리는 다 나갈 수밖에 없는거냐? 상담소에서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거냐?"면서 따지기 시작했다.

그와의 대화를 잠깐 옮겨본다.

- 고용허가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럽에서는 자국에서 오래 고생한 사람들에 대해 혜택을 주는데 어떻게 한국에서는 거꾸로 내쫓으려고만 드느냐? 나쁘게 말해서 이 제도는 한국이 외국인들에게 사기치는 것 같다."

- 왜 그렇게 생각하나?(한국국적을 가진 나로선 다소 가슴 뜨끔했던 순간)
"고용허가제의 내용은 연수제도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만약 계약한 회사에서 처음엔 일 잘 하다가 나중에 몸이 아프거나 적응하기 힘들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불법이 되거나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나? 최장 3년까지 일하고 돌아가는 것도 다르지 않다. 어차피 영원히 있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자유롭게 회사를 옮기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나? 한국정부는 전세계의 눈을 속이고 인권침해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이 제도를 만들었으나 실제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국정부는 세계의 눈을 속이고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데리고 논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 불법체류자들 중 합법화되는 사람도 있지 않나?
"우리나라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 1300만원에서 1500만원이 든다. 이 빚 다 갚으려면 꼬박 3년 정도는 일해야 한다. 3년 이하의 사람 중에 아직 이 빚 못 갚은 사람 많다. 그들은 빚을 갚고 수익을 창출할 때쯤 되면 한국에서 나가야 할 것이다. 다만 1-2년이라도 맘 편하게 일하고자 그들은 이번에 비자 연장 신청을 하겠지. 허나 3년에서 4년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의심이 커 출국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비자를 연장해 준다 해도 신고하는 사람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외국인 노동자인데 체류기간만 기준으로 누구는 가고 누구는 가지마라 하는 건 말도 안된다."

- 그래도 당신같이 오래 체류한 사람은 돈 꽤 벌었을 것 아니냐?
"모르는 소리 마라. 내 경우 일하다가 허리가 다쳐서 4년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우리가 처음 와서 불법으로 일할 때 월급 얼마 받았는지 아나? 30-40만원 수준이었다. 1년이 지나야 고작 10만원 인상되곤 했다. 또 아이엠에프때는 일이 거의 없어 놀았다. 4년 이상된 사람들 돈 많이 벌어 귀국하는 사람 거의 없다. 대부분 부모를 부양하거나 자식교육, 결혼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가는 것이지 좋아서 가는 게 아니다. 몇 년 일해서 떼돈 벌 것 같으면 한국사람들은 왜 20살부터 70살까지 일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신분적 약점으로 인해 힘들고 위험한 직종을 선택하는데 그 작업장 대부분이 산재 발생률이 높고 건강에 유해한 환경으로 구성돼 장기 체류자 중 건강 상태가 심각한 이들이 많다. - 필자)

- 강제출국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나?
"주변에 네팔, 필리핀 친구들과 얘기 많이 해보지만 별다른 수 없다. 돈 못 벌었으니까 죽어도 갈 수 없다. 단속 걸리면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지만... 상담소에서는 아무런 계획 없나? 이제까지 우리는 상담소들을 믿고 따라왔고 나도 그동안 여러번 집회에 참여해 봤다. 그런데 어떤 센터는 이 제도에 만족해 하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상담소도 우리를 버리는 것이다."

-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 있나?
"한국인들은 해외에 나가서 노동허가 받고 일하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대하는지 모르겠다. 그 나라의 경제를 위해 오래 고생한 사람한테 혜택주는 게 어느 사회에나 당연한 것 아닌가? 외국인노동자 필요 없으면 다 내쫓고 연수제도도 고용허가제도도 없애라. 국내 노동자더러 그 일 하라고 해라. 한국은 외국인노동자들의 본국에 수출을 하고 있지 않나? 우리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나마 우리들이 와서 한국이 동남아시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좋지 않은 내용도 있지만. 처음에 한국에 간다고 하면 고향에서 '사람 잡아먹는다'며 가지 말라고 했다. 일하다가 매맞고 다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우리는 한국을 위해 땀흘려 일해 왔다. 왜 이제 와서 돌아가라 하나?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나?"

상담전화를 끊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90년대 초중반 한국에 와서 가장 밑바닥에서 인간 대접 못 받고 일한 장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 그들은 이제 한국문화에 익숙해졌고 기술도 숙련돼 중소사업체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 돼 있다. 10만에 가까운 이들에게 한국 정부가 해줄 수 있는 혜택은 정녕 '강제출국'이 유일한가? 가을을 예고하는 비가 더욱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밤이다.  



최영환 기자는 한국이주노동자 인권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03/09/02 오후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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