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원 받고 7일 이내 출국해야
후유장애 진단서 현지서만 받게
치료차 재입국해도 체제비 안줘


  전진식 기자  

  

» 양해각서 내용의 일부.


지난 2월11일 일어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참사와 관련해, 법무부가 부상당한 이주노동자 14명 및 그 가족들과 배상 문제에 관한 양해각서를 지난달 30일 작성했으나, 후유장애 치료 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 ‘불평등 각서’ 논란이 일고 있다.
8일 <한겨레>가 입수한 양해각서를 보면 △부상자 가족당 1천만원을 받고 7일 이내에 출국하되 △현지에서 후유장애 진단서를 받을 경우 재입국을 보장받고 △후유장애임이 입증될 경우 병원 치료를 위해 최대 3년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다는 게 뼈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후유장애 진단서를 현지에서 받도록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철승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대표는 “상당수 부상자들이 밤잠을 못 자거나 극도의 긴장감에 수시로 시달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며 “그러나 법무부는 외과적 진단만을 근거로 이들을 서둘러 출국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 출국한 부상자들이 후유장애를 인정받더라도 국내에서 원활한 치료를 받기가 힘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양해각서상 치료비와 입국 항공료는 지원되지만, 체재비와 귀국 항공료 등은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호를 위해 동행이 허용되는 친척 1명의 체재비도 지원되지 않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이들이 다시 한국에 들어온다 해도 체류 허가 및 기간을 치료 목적에만 한정해, 치료가 끝나면 즉시 출국하도록 했다”며 “체류비와 귀국 항공료가 전혀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취업길마저 막아버려, 마치 굶으면서 치료만 받고 가라는 식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외국 사례에 견줘볼 때 이번 양해각서 내용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5년 10월 네덜란드의 한 외국인보호소에서 불이 나 불법 체류자 11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치는 사건이 나자 법무부 장관과 주택부 장관이 물러나고 생존자 39명에게 체류허가가 주어졌다. 당시 사건의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에 앞장섰던 ‘암스테르담 및 공항추방자보호소 감시단체’의 얀 파울 스미트 사무국장은 지난 5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양해각서는 일단 이들을 모두 출국시켜 이 사건을 서둘러 종결시키려는 미봉책”이라며 “이번 사고를 단속과 강제출국, 보호소 구금 등과 관련한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는 법무부의 태도는 제도 개선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법무부 쪽은 공식적인 답변을 꺼리고 있다. 양해각서에 서명한 차규근 법무부 국적난민과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부상자와 가족들이 출국하기 전까지는 국익 차원에서 각서의 내용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상금은 이미 지급이 이뤄졌으며, 부상자·가족들은 11일께 출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해각서는 일종의 신사협정으로, 어느 한쪽이 합의를 어기면 민사소송 대상이 된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