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제공 :〈고미숙/연구공간 ‘수유+공간’ 연구원〉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상습적으로 ‘삥’을 뜯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았다는 걸 빌미로 아내를 등쳐먹으면서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수틀리면 마구잡이로 두들겨패는 남편이 있다면? 참 ‘더럽고 치사한 족속’이라며 다들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이게 우리의 상식이다. 학교나 교회, TV, 그 어디서건 다 그렇게 가르친다. 하긴, 그 정도야 굳이 가르치고 말고 할 거나 있는가. 원초적 자존심의 영역인 것을. 그런데, 참 희한하다. 우리 사회는 그런 종류의 더러운 짓거리를 법으로 보장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주노동자의 고용허가제, 단속추방법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는 대략 100만명, 그 가운데 20만명 정도가 ‘불법’이라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그들을 이 땅에 불러들인 건 3D직종에 종사할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외국인노동자 약점잡고 착취-
오래 전 전태일 열사가 불타는 몸으로 절규했듯이, 그들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 들어왔건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삶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실제로 그들은 이미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나름의 삶을 일구고 있다. 그런데도 법과 제도는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없는 걸로 쳐버린다.

왜? 그렇게 해야 계속 그들을 ‘노예처럼, 기계처럼’ 부려먹을 수 있으니까. 더 솔직하게 말하면, 계속 ‘삥을 뜯을’ 수 있으니까. 불법체류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자행되는 짓거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임금체불은 다반사요, 구타에 인격모독에. 불시에 이루어지는 단속. 추방이 이 모든 더러운 짓거리를 다 허용한다.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경우도 허다하다. 한류니 코리아드림이니 하여 온갖 사탕발림으로 꼬드긴 다음, 법의 울타리 바깥에 둠으로써 그걸 빌미로 착취와 폭력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여수참사’는 이 비열한 제도가 불러온 참극이었다. 지난 2월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불이 났다. 무려 10명이 죽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인명피해의 수치만으로도 사건의 끔찍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사건 현장이었다. 그들이 갇혀있었던 보호소는 쇠창살이 쳐진 감옥이었다.

감옥의 구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인명피해가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건 처리는 더더욱 가관이다. 증거도 정황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갇혀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불을 질렀으리라 추정된다’가 전부다. 그게 다라고? 이웃집 개도 웃을 일 아닌가.

-여수참사 배후 허가제·추방법-
설령 그 엉성한 수사 결과를 믿는다고 치자. 그건 사건의 종결점이 아니라 시작지점이다. 대체 그는 왜 ‘너 죽고 나 죽고’ 식의 그런 극단적 행동을 선택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그 지독한 공간에,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가두는 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런 식의 감금과 억압을 가능케 한 사회적 배경, 곧 ‘불’의 진정한 배후세력을 파헤쳐야 하는 게 아닐까?

하긴, 너무 ‘불보듯’ 뻔해서 파헤치고 말고 할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거기에서 일어난 불은 단지 이주노동자들의 목숨만 앗아간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야비하게 등쳐먹고 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만천하에 비쳐주고 말았다.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이 끔찍한 참사의 배후에 고용허가제와 단속추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존속하는 한 불씨는 계속되리라는 것을. 고로, 불씨를 제거하기 위해선 이 비열한 법과 제도를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는 것을.

삥 뜯기는 사람과 삥을 뜯는 사람, 겉보기엔 전자가 약하고 불쌍해보이지만, 실제론 후자의 처지가 훨씬 더 한심하다.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지 않고서야 인간이 어찌 그렇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부디 우리로 하여금 원초적 자존심을 지키며 살게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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