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와 '여수참사', 같지만 다른 것들  
  [기고]'한국의 문제' 외면한 '사대적 애도'를 보며  

  2007-04-20 오전 10:36:08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선량하고 평범한 시민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함께 애도하고 위로하는 것은 국적과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어 인간으로서의 원초적인 감성과 이성의 영역에 해당한다.
  
  한국 민중들도 희생자들의 유족들과 부상자들, 미국시민들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하는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다. 필자도 총기난사 사건 이후인 4월 18일 장례를 치른 허세욱 열사의 장례위원회 호상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이 충격적인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해 깊은 애도와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마음은 9.11 사건으로 희생된 미국 시민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이라크 민중들, 이스라엘의 폭력과 공격으로 매일매일 쌓여가는 팔레스타인의 희생자들, 여수보호소 화재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한국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농민 전용철과 홍덕표, 노동자 하중근을 생각할 때 가지게 되는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과 결코 다르지 않다. 물론 애도의 마음은 한결같지만 분노의 대상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버지니아공대 참사사건 이후 한국 사회 일각에서 보여주는 행태는 한국 국민들의 마음을 왜곡해 오히려 상처를 냈다. 대통령은 유례없이 세 차례에 걸쳐 애도를 넘어 사죄의 뉘앙스를 담은 입장을 밝혔다.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는 자성의 의미로 32일간의 금식을 제안했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한결같이 용의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은 미국에 사과를 하고 한미동맹에 흠이 가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뉘앙스의 사설과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촛불과 성조기를 들고 미국에 대해 석고대죄를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한 개인의 충격적 범죄행위에 대해 정부 차원의 조문단 파견을 추진했었다고 한다.
  
  한국 사회와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면 마땅히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라면 정부든 공동체든 할 수 있는 책임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민 모두가 가해자?
  
  책임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지난 2월 11일 발생했던 여수보호소의 화재참사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버지니아공대 참사사건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 사건은 1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 사건으로, 개개인의 우연한 사건에 의한 희생이 아니라 정부의 무차별적인 이주노동자 단속정책의 결과였다.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국가기관에서 발생한 희생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보수언론들의 태도는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운 한 명의 방화 때문에 발생한 사건으로 몰아갔고, 사건의 수습도 돈 몇 푼으로 회유하거나 강압적으로 출국시키는 것으로 처리했다. 최소한의 자성을 보이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희생자들에 대해 애도와 위로의 모습을 보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버지니아공대 참사사건에 대한 반응과는 정확하게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국사회와 정부가 응당 책임져야 할 행동에 대해서는 개인 탓으로 돌리거나 왜곡하고, 반대로 미국사회의 병리가 개인의 일탈행동과 범죄행위로 드러난 사건을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만들어버린 게 한국정부다.
  
  혹여 버지니아참사는 최강대국 미국과 관련된 것이고, 여수보호소 참사는 힘없는 아시아국가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사대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기에 총기난사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애도의 인간적인 마음을 왜곡해 한국민 전체를 버지니아 참사사건의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려는 친미사대주의자들의 비뚤어진 논리를 인정하기 힘들다.
  
  9.11 사건 때 무슬림의 경우
  
  미국에서 9.11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마치 무슬림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것이 무슬림에 대한 극심한 인종차별과 폭력행동으로 이어진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미국에서는 미국의 무슬림들이 9.11 사건에 대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는 비난 여론이 있었다. 사과 표명이라도 하라는 사회적 압박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무슬림들은 사과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이유는 9.11 사건은 무슬림의 정서와 이해를 대변하는 행위가 아니었고, 그 행동은 무슬림 공동체가 책임질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쉬운 몇 마디의 사과 표현을 정치적으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몇 마디는 곧 무슬림 전체가 9.11 테러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무슬림 지도자들은 온갖 압력과 편견과 차별에 굴하지 않고 결코 사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국가적 사과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일본의 정신대 문제다.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한국과 일본 사이의 정서적, 정치적 간극이 좁아지지 않는 이유 가운데에는 정신대 문제가 있다. 정신대라는 반인간적 범죄행위가 일본 정부와 국가권력이 계획하고 집행한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일본 정부는 그 사실관계를 부정하거나 반성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모습이다.
  
  정말로 책임과 사과가 필요했던 일들
  
  버지니아 참사에 대한 한국 정부와 언론 등의 집단적인 반응에 오히려 미국 사회가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나름대로 그 이유를 분석하면서 개인과 민족을 동일시하는 한국 특유의 민족성이 이 사건을 '한국의 문제'로 받아들이게끔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 또는 한국계 미국인 개인이 관련된 '미국의 문제'이다. 이주민으로 이루어진 미국 사회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갖게 되는 이주민 2세대, 3세대들의 문제, 무기의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총기 사용이 자유롭고, 무기와 폭력을 숭상하는 문화적 측면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미국의 문제'가 낳은 것이 버지니아 참사사건이다.
  
  '한국의 문제'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몇몇 스포츠 스타들의 문제나 한국계 인물들이 관여된 버지니아 참사와 같은 사건에 있지 않다. 전기가 끊겨서 촛불을 켜고 자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도시빈민의 문제,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한겨울 보일러 파손으로 얼어 죽은 장애인 문제,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와 노동하는 빈곤층의 확산이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문제'들이다.
  
  그러하기에 문제시 돼야 할 것은 버지니아 참사에 대한 애도와 위로의 마음이 결코 아니다. 미국의 패권과 침략정책, 제국주의 정책 때문에 미국 시민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외면돼선 안 된다.
  
  다만 버지니아 참사에 대해 미국에 석고대죄를 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희생당한 이라크의 아이들과 민중들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의 민중들에 대해서, 아니 이 땅에서 집단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여수보호소의 이주노동자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에 대해 단 한 번도 위로와 애정의 손짓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사람은 물론이고 국가와 정부의 근본을 규정한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미국 시민들과 그 외에도 인간의 폭력으로 희생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세계 모든 민중들에게 연대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정종권/민주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