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과 '불법체류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기고]치외법권지대의 존재론을 말한다  

  2007-03-19 오전 9:10:58    


  

  
  지난달 11일 이주노동자 10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참사에 대해 정부 당국은 사실상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 전남지방경찰청은 지난 6일 '당시 갇혀 있던 김광석 씨의 방화'로 결론짓고 관리를 소홀히 한 직원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는 "경찰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방화로 결론 내렸다"며 "경비용역 업체와 하위직 공무원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법무부장관 등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역시 지난 15일 공대위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경찰수사 결과가 너무 부실해 국회 차원에서 재수사를 추진하겠다"며 "6개의 방이 철망으로 구분돼 있고 바닥에는 우레탄이 깔려 있어 화재시 대형참사를 불러올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이 크다"고 말했다.
  
  또 공대위는 참사 이후 재구금된 29명 중 22명이 사건이 일어난 지 채 1달이 지나기 전 서둘러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 보호소 측으로부터 출국을 강요당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공대위는 지난 15일 보호소 의무실장이 화재시 다친 환자들에게 입원한 병원에서 퇴원할 것으로 종용했다고 밝히는 등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공대위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여수 참사의 원인은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쉽게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을 보호소가 아닌 '보호소'에 붙잡아 놓은 뒤 출국을 강요하는 비상식적인 정책이 근본적으로 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정책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던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고병권 씨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그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있는 데도 없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간주된다"며 "유령이 아닌 현실을 볼 때"라고 지적했다. <편집자>
  
  치외법권 지대의 존재론
  
  치외법권 지대란 말 그대로 법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지대를 이른다. 외국 공관 같은 곳이 그렇다. 하지만 이념이 아닌 현실에서 법이 통용되지 않는 곳은 외국 공관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법 위에 군림하거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형성하는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대가 존재한다.
  
  정도 차는 있지만 특권층의 한 발은 언제나 법 위에 있고, 민중들의 한 발은 법 아래에 있다. 그리고 스펙트럼의 양끝을 따라가 보면, 한 쪽에는 "법 바깥에 있는 나는 법 바깥에 아무도 없음을 선포한다"는 최고 권력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법적으로는 존재 불가능한 '불법체류자'가 있다.
  
  '불법체류자 문제'라는 건 없다
  
  미등록이주노동자 아홉의 생명을 앗아간 여수 참사는 이 치외법권 지대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들의 하나에 불과하다. 정부가 통상 '불법체류자'라 부르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행위'가 아닌 '존재'가 불법인 사람들이다. 적극적 범법 행위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시간(3년)과 공간(작업장)에 머무르지 않았기에 그 존재를 부인당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범죄자의 경우엔 재판을 받고 감옥에 수용되지만, 이들은 영장도, 재판도 없이 체포되고 수용된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 이들의 행위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이들이 당하는 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업주가 폭력을 행사하고 임금을 떼먹어도 결국 체포되는 것은 이들이다. 단속 과정에서 정부직원은 사냥하듯 그물총을 쏘고, 한 밤 중엔 기숙사를 덮친다. 사망사고가 생기면 시신조차 함부로 대한다. 어차피 치외법권 지대의 일이라 정부도 업주도, 이념이 아닌 현실에서는 법을 지키지 않는다. 말 그대로 법이 없는 지대이다.
  
  조금 단순화하자면 '불법체류자 문제'라는 건 없다. 치외법권 지대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필요이고, 우리 제도가 양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적 필요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순간 미등록이주자들은 예정되어 있었다. 2003년에 그 비율은 전체의 80%에 달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들 상당수를 합법화시켜주고 나서야 비율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불과 2-3년 만에 비율은 다시 50%에 이르고 있다. 불법체류는 이주자들의 불법행위의 문제 이전에 우리 시스템에 달린 문제임이 드러난 것이다. 산업적으로는 무차별 흡수하면서 법과 정치, 사회상으로는 그 존재를 부인하는 시스템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이제 유령이 아닌 현실을 볼 때
  
  정부와 업체는 한편으로 이들을 사용해 이익을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존재를 부인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정확히 유령의 반대편에 있다. 유령이 '없는 데도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면, 이들은 '있는 데도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빤히 존재하는 것의 존재성을 부인하는 정부의 치외법권적 행동은 온갖 거짓 용어들로 나타난다.
  
  현장에서 명백히 고용된 노동자를 '산업연수생'이라며 학생 취급한다. 체류 목적이 학업이 아닌 취업이고, 고용 목적이 교육이 아닌 노동에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고용허가제도 마찬가지다. 본국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들의 이동을 불법화하지만, 이들이 떠밀려 들어와 하는 일은 본국 노동자들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현실에서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본국 노동자가 아니라, 이 제도를 근거로 이주노동자들을 협박하는 업주들이다. 거짓말의 백미는 이번 참사의 현장, '보호소'일 것이다. 쇠창살과 감시카메라로 이루어진 '감옥'을 정부는 애써 '보호소'라고 부른다. 하지만 '보호소'가 없던 강원도는 얼마나 솔직했는가. 이들을 실제 '감옥'에 가두었으니.
  
  이제는 유령이 아닌 현실을 볼 때다. 유령을 몰아내는 푸닥거리, 단속추방이 아니라, 엄연히 실존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 사라져야 할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아니라 치외법권 지대의 온갖 거짓과 폭력이며, 궁극적으로 치외법권 지대 자체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는 그래서 필요하다. 그들에게 주는 특혜가 아니라 치외법권 지대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실천이기에.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