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농성 21일째 노숙일기
(2006. 4. 19.)


(▲ 정오 집회때, 허남식 선거준비사무실이 있는 아이온시티 건물 일대를 한바퀴 돌며 부지매의 정당한 투쟁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어느 날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한겨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혀보니 우리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봄이었나 보네요. 모두가 얇은 옷에 화사한 옷들을 입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동지들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울었습니다. 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화창한 봄날에 이렇게 길바닥에 앉아서 추위에 떨며 침낭을 뒤집어쓰고 있어야하는가를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하루는 병원에 갔다 오니까 한 여성동지가 낮에 피곤에 겨워 침낭을 덮어쓰고 자고 있는 걸 봤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17일 저녁 아이온시티에서 허남식 시장이 우리를 보고 도망을 쳤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을 때 또다시 아파하는 동지가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파해가며 힘들게 투쟁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야 하는가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강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말 또한 맞다고 생각하지만, 동지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이러다간 진짜로 누군가 한명 죽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의 머리를 스쳐갑니다. 저 또한 그런 생각을 해보았기 때문에..

하루하루 힘든 몸을 이끌고 투쟁해나가는 나의 누나, 형, 동생들을 볼 때마다 이 싸움이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지들이 제발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내가 다치는 건 내 몸이 아프면 그만이지만, 동생들이 다치고 누나, 형이 다치거나 아프면 내 마음이 너무나 아프니까요. 내 가족 같은 동지여러분, 누구하나 다치지 말고 이 싸움 함께 승리했으면 합니다.
- 정효중 (2006. 4. 18. 아침)

: 맏형처럼 듬직한 정 동지는 자신의 몸도 지금 말이 아닌데 다른 동지를 건강챙긴다고 바쁩니다.  맏형이 쓰러지면 그 집안도 쓰러집니다.  제발 자신의 건강도 좀 챙겨주세요.  



드디어 아이온시티 건물 안에서 허남식 시장과 맞닥뜨렸다.  그냥 우리의 주장을 요구하러 간 것인데 허남식 부산시장과 보좌관처럼 보이는 수하는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2층에 엘리베이터 앞 구석에 숨어있는 시장을 봤고 우리의 염원인 ‘고용승계’를 외쳤다.  “시장자리에 있을 때,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 때, 제발 고용승계 해달라.”고.  “그래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궁지에 몰려서인지 허남식 시장은 고개만 끄덕였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보지도 못하고 사색이 되어 숨고, 도망갈 곳만 찾는 그런 궁색함을...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장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때릴 것도 아니고, 유괴할 것도 아니고, 우리의 요구 몇 마디 한다고 쫓아갔을 뿐인데...  그래도 시장정도 라면 대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말해보려는, 아니 그 선을 넘어 우리를 멈추게 하고 주위를 평정하고 웃으며 악수하며 당당하게 걸어 나갈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하긴 내가 ‘시장정도 되면’하고 생각하는 인물상이 너무 큰 것이 아닌 가도 생각해본다.  그도 인간이고 우리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생존권인 정치판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인간인 것을...

열시를 넘긴 그 시간에 연락을 몇 명에게 하지 않았을 텐데도 어찌어찌 연락이 되어 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타고 헐레벌떡 뛰어온 우리 부지매 동지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많은 동지들이 정말 고마웠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 때,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뛰어오는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 든든하고 고마움에 눈시울이 젖어든다.  격려, 지원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가 다음 일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발길을 떼지 못하시던 동지들 또한 감사드려요.^-^

우리는 오늘도 비정규직철폐가를 부르며 열심히 팔뚝질하고, 목이 부어오를 정도로 힘차게 구호를 외친다.  정말 비정규직 철폐 되는 날이 오기는 올까?
우리가 고용승계가 되기는 될까?
이 싸움이 끝이 났을 때 우리의 마음속엔 무엇이, 어떤 생각이 남을까?
만약 이 싸움이 패배하더라도, 승리하더라도, 우리와 같이 내 일처럼 연대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눈시울 적셔주셨던 동지들을 잊지 말아야지.
오늘 또 하루가 간다.  소중한 시간들이 내 젊음의 인생이...
오늘도 투쟁.  내일도 투쟁.  노동자가 웃는 날까지 투쟁!
- 박은주 (2006. 4. 18. 아침)

: 부지매의 외곽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동지입니다.  힘들어도 언제나 내색 않고, 씩씩하고 밝게 웃는 동지의 모습에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어제는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난장팀에서 한판 벌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O민 동지가 뛰어와서 허남식 부산시장이 나타났다고 소리쳤다.  우리는 1층 화장실로 뛰어갔고 허남식 시장과 마주쳤다.  눈이 동그래진 그를 보니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지금까지 우리들을 외면하고 있음에 분노를 느끼기도 하였다.  보좌관이 에워싸고 허남식 시장은 2층으로 도망쳤고, 몇몇의 전경들이 달려왔고, 우리들과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다.  1층 로비에서 지역의 동지들에게 연락이 가니 하나, 둘씩 동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2시가 넘어서야 경찰이 철수한다는 조건하에 우리도 노숙현장으로 돌아갔다.  노숙농성을 시작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얼떨떨하고 정신이 없었다.  너무나 안일하게 농성을 했나 싶기도 하고, 다음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 즉각 대응을 할 준비태세를 갖춰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긴장이 풀리자 더 이상 난장을 벌일 생각도 없어 바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따라 귀마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잡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았고, 소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듯 했다.  새벽에 중간 중간 많이 깨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이용재 동지가 말하길, 나의 코 고는 소리에 이용재 동지가 잠을 못 잤다고 한다.  나는 이빨도 심하게 가는 편인데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받는 남편이 되기 위해선 이 두 가지를 고쳐야 하는데, 단시일 내에는 힘들다.  수술로서 보정도 가능하겠지만 한방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면 해야겠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면 덥고 걷어내면 추웠다.  목부터 허리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나를 새벽에 느꼈다.  

이제 21일차다.  3주다.  이 노숙 투쟁도 천막 농성처럼 장기간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 말자.  지금 이 시점의 투쟁도 버거운데 미래까지 생각한다면 나의 머리가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오늘 사수하는 동지들 감기 걸리지 않도록 이불 잘 덮고 자길 바란다.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자.
- 서재관 (2006. 4. 18. 아침)

: 서 동지는 항상 성격도 솔직하고, 일기도 너무나 사실감 넘치게 기록하여 나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자꾸 일기에 손대지 말라며, 저작권 침해에 기분 상한다는 동지.  이번엔 적극 수렴하여 그대로 올렸습니다.  하루빨리 고용승계 되어 사랑받는 남편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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