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민주노동당에게는 빛나는 도시이지만 그 만큼 그늘도 큰 곳입니다. 2000년 최용규 총선후보의 억울한 패배, 시장후보로 나온 송철호후보의 배신, 작년에는 불파투쟁의 와중에서 최남선 동지의 분신, 그리고 류기혁 열사의 자살이 일어난 곳입니다. 그리고 10.26 재보선의 패배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유세장으로 가기 전에 울산남구청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울산광역시 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조합 동지들을 방문했습니다. 천막에서 공공연맹 울산본부에서 상근직을 수행하고 있는 효성 해고자 최만석동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01년 울산지역연대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동지를 만나서 반가웠고, 해고자로 힘겹게 살아가는 고단한 영웅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아픔이었습니다.

재보선 패배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울산유세, 토요일이고, 주요인사들의 결혼식이 있어서인지, 당원들도 많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유세에서는 많은 후보가 10.26 재보선 패배의 원인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마음을 사지 못한 점을 들었습니다.

울산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다른 지역보다도 첨예하게 진행된 것은 얘기를 단순히 하면 기업별 노조 때문입니다. 현대그룹 노동조합 총연합(현총련)으로 표현되는 기업별 노조의 극성기를 경험했던 울산은 그 만큼 그 그늘과 폐해도 극심했던 곳입니다.

울산은 87년 이후 마창(마산과 창원)과 더불어 임금인상투쟁에서 기준교섭으로 작동했습니다. 막강한 조직력으로 높은 임금인상을 쟁취함으로써, 다른 사업장의 임금인상의 기준을 제시했고, 덕분에 많은 사업장이 스스로의 조직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임금인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대공장노동자들이 희생해서 세상을 평등하고, 풍요롭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현총련 동지들에 대한 노동운동의 평가는 후했습니다. 어느 해엔가 노동자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금강휴게소에 들렸는데, 거기서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현총련 소속이어서 현총련 조끼를 입고 준법투쟁을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들을 보고 한 노동자가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도 현총련 의장 할 수 있겠네요!”

97년 IMF 공황이후 상황은 변했습니다. 비정규직이 먼저 정리해고되고, 뒤이어 정규직도 정리해고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경제가 조금 회복되자 정규직 숫자는 정체된 채 있었고 비정규직이 늘어났습니다. 외부하청 사업장 노동자들은 무늬만 정규직이지 비정규직에 비해 나을 것도 없었습니다. 본사 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소한 노동조합의 보호아래 있었지만 나머지 노동자들의 처지는 급격히 저하되었습니다. 기업별 노조체제가 고착화되면서 대기업의 기업별 노조가 임금과 처우에서 나머지 노동자들의 처지를 끌어 올리는 기준이 되지 못하고, 차별을 일깨우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울산노동운동은 권위와 사랑을 잃었습니다. 정부와 자본가는 대기업 강성노조가 나라 망친다는 악선전을 퍼 부어 댔습니다. 완전히 사면초가의 행색이 된 것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지역노동자와 연대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를 비롯해 현대중공업 비정규직노조, 울산플래트, 자치노조 등 울산에만 10여개의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지역에서 연대투쟁의 구호는 높아졌지만 그러나 당과 단위노조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한 예로 울산광역시 자치단체 비정규직 노조 동지들은 남구청에서 50일 넘게 천막농성을 해도, 해고자들 외에 연대하는 단위가 거의 없다고 토로합니다. 위원장이 민주노동당 중앙위원까지 했음에도 당에서는 얼굴 한번 비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쉽니다. 어찌 당에서 한번도 방문을 안 했겠냐는 생각은 했지만 최고위원 후보라고 인사드리려고 간 저는 참 민망했습니다. 하기야 재작년 순회투쟁 때 저희 때문에 현중 비정규직 노조와 당활동가들이 처음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위선적인 당의 비정규직 투쟁을 비판해 왔지만 울산에서 드는 생각은 위선적이라는 표현보다 무! 심하다는 표현이 나을 듯싶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가장 모순이 첨예한 곳에 정면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하청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보편성을 위협하는 갈등의 현장입니다. 자본과 보수언론들의 악선전 중의 하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상태를 외면하고 대기업 정규직들이 기득권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되는 운동적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히 요구됩니다. 저는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작년부터 민주노총에서 시도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특별교섭, 즉 비정규직 처우개선 요구와 관련한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참여하는 총회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산노동운동의 양심이라 불릴 수 있는 조돈희 동지는 재작년 순회투쟁에서 저와 만나 최소한 비정규직과 관련된 문제에서 만큼은 비정규직이 포함되는 총투표를 실시할 것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주장에 동의하면서 총투표를 넘어 총회투쟁으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총회투쟁의 성사는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본의 현장통제를 뚫지 않고서는 이를 성사시킬 수 없을뿐더러, 정규직 활동가들의 비상한 노력이 경주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 ㏏?都求? 그러나 총회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을 허물고 공동투쟁의 기반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총회투쟁은 이후 전 공장을 망라하는 계급대표성을 지닌 공장위원회 건설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이면 단위노조까지 복수노조 시대가 옵니다. 정부는 교섭창구 일원화를 빌미로 쟁의권이 없는 노사협의회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기도를 넘어서는 우리의 대안은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를 포괄하는 공장위원회의 건설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쟁취를 위한 전공장 파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민주노동당은 현장당원들로 하여금 비정규직과 하나 되는 노동운동에 헌신하겠다는 선언운동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사업제안이 당의 비정규직 철폐운동본부에서 제안되었고, 사업결의가 되었지만 현재까지 특별한 진전은 없습니다. 투쟁현장에 연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고 봅니다. 전당적인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끌어내기 위해 현장의 갈등과 모순에 직접 달려드는 일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사회주의자는 현실에 정직하게 응답하기 위해 용기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저는 최고위원회 선거가 끝나면 당장 현장당원들의 릴레이 선언을 조직하기 위해 다시 전국을 뛰어 다닐 것입니다. 총회투쟁의 성사와 공장위원회 건설을 위한 투쟁이 노동운동을 한 단계 끌어 올리고 운동의 보편성을 회복하는 핵심적 과제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국의 당원 동지여러분! 무심한 울산이라고 말했지만 울산에서는 희망이 커오고 있고, 그 희망은 당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8년만에 미포조선 현장에 복직한 김석진 동지는 이번 집행부 선거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1차 투표에서 1등으로 결선에 올랐습니다. 비록 결선에서는 회사의 부정선거 공작으로 아쉽게 낙선했습니다만 선거결과를 분석하면 관리자나 조반장을 제외하고 현장노동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김석진 동지의 공약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입니다. 김석진 동지는 아시다시피 우리 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이고 광역시의원 후보까지 역임했던 동지입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사무국장을 역임했던 서쌍용 동지는 비정규직 노조 중의 얼마 안되는 당원중의 하나입니다. 넉넉하지만 매서운 동지의 모습은 당의 중핵을 이룰 노동자 당원의 미래를 상징합니다.

어께가 처진 울산을 보듬어주고 운동의 새로운 희망을 가지도록 격려해줍시다.

추신 :

최고위원 유세는 시당 임원선거 후보들의 유세도 겸한 자리여서 울산시당을 이끌 임원들의 면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98년 정리해고 투쟁의 복판에서 온갖 비판의 중심에 있었고 저하고는 동년배이기도 한 김광식후보가 시당위원장으로 단독 출마를 했습니다. 97년 감옥에서 양봉수 열사투쟁의 계승자인 민투위 후보 김광식 동지의 당선소식에 내 일처럼 기뻐했던 저로서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98년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이었던 정윤광위원장님과 함께 울산에 내려가 김후보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고통과 피로가 겹겹이 쌓여 있는 김후보의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노동운동의 한 고비를 개인이 온전히 다 안아야 했던 잔인한 상황에서 연민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김후보를 다시 만난 것은 재작년 비정규직 철폐운동본부 설치를 촉구하기 위해 비정규직 당원모임이 추진했던 전국순회투쟁 때 입니다. 얼굴은 꺼칠했지만 훨씬 편안한 표정의 김후보가 울산시당 비정규직 특별위원장의 신분으로 저희를 맞아 주었습니다. 스스로를 낮추어 편안한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당 위원장 유세 때 김광식후보는 그 때보다 훨씬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0여년 세월 동안 인생의 롤러코스트를 경험한 김후보의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