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매매 금지주의로 대북공격 나선 미국, 한기총, 여성권력?
- 여성권력계와 한기총은 ‘미국’과 ‘민중’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국제적 수준의 ‘비범죄화’ 내지 ‘합법주의’ 성거래 정책을 도외시한 한미간 성매매 ‘금지주의’ 정책 공조가 국제관계에서 위험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11월 29일 보수적 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주최 '국제 성매매 및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대책회의'(서울프레스센터)에서 미국 국무부 존 밀러 국제 인신매매담당 대사가 주제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나, 이를 기점으로 한기총이 북한을 포함한 국제 성매매 문제에 미국과 공동대처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들이 정교 분리원칙에 입각한 근대법의 정신을 훼손시키면서 또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

- 미국의 북한인권 공격용으로 전락한 성매매 금지주의

존 밀러 대사는 하루 뒤인 30일 조배숙 의원(열린우리당) 초청으로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현대판 노예제인 성매매를 퇴치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선두국가이며, 부시 대통령도 한국의 성매매 근절활동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칭찬했는데, 이는 성매매 특별법 이후 국제사회에서 성거래 여성 ‘다발송출국가’로 소문난 한국 실정과는 전혀 상반된 평가로 ‘금지주의’를 둘러싼 한미간(혹은 종교간)의 맹목적 밀월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이라크에서 포로에 대한 미군의 성적 학대 등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고 질문하자 존 밀러 대사가 “미국의 군사법이 바뀌어 성매매에 관해 한치의 허용도 하지 않는 강력한 법이 도입됐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도 해프닝이었고, 난데없이 북한 인권을 거론하며 “북한에서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중국에 넘어가 많은 수가 성노예와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된다”며 “큰 국제문제”라고 강조한 것은 ‘금지주의’의 정책방향이 종국적으로 북한을 지목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기총(대표회장 최성규 목사)은 지난해 여의도와 시청앞 광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와 북한 민주화 촉구 집회 등을 주최한 반공 집회의 주역이며 ‘삼심운동’(신앙심 애국심 효심)을 주장하는 한국내 대표적인 보수단체로, 10월 10일에는 ‘한국교회 평신도 지도자 120인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었다.

- 한기총과 한 배에 탄 조배숙 집사, 대한민국은 정교일치 국가?

놀라운 것은 이 자리에 성매매 특별법 입법을 주도한 여성권력계의 리더격인 조배숙 의원이 ‘집사’ 자격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열린우리당 소속 여성의원이 친미일변도의 보수적 단체인 한기총과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의 실체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시사하는 바 크다.

이상에서 보듯 성매매 특별법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부시행정부와 국내 보수적 종교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가운데, 이러한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나 혹은 기독교 윤리주의에 경도돼 성도덕 필요성을 절감하는 종교계와 여성권력계에 의해 ‘민의’가 단지 계몽대상으로 전락한 채 강제 입법되었으니, 성거래 정책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하게 정교일치 국가로 전락한 셈이다.

- 미국은 성매매 양산하는 일방주의 국가, 금지주의 말할 자격없는 나라

존 밀러 대사가 말한 것처럼 미 부시행정부가 북한을 중국에서의 여성 인신매매 국가로 강력하게 지목하고 있는 것도 정치적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대목이다. 명분이 없거나 불확실한 상태로 미국이 침공한 지역(아프카니스탄, 이라크)에서 생존이 어려운 많은 여성들이 인신매매형 성매매에 마구 유입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이 가져온 비극이다. 또 중국내 북한 여성들의 성매매 현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탈북문제는 북한의 자체문제 외에도 미국의 대북한 봉쇄정책과 무관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따라서 난마처럼 얽힌 북미관계 앞에서 봉건적 성(性)개념과 미국문화가 혼재된 한국내 여성권력계가 미국의 기독교 성(性)윤리주의적 관점에 선뜻 동조하고 나선 것은 ‘여성주의’ 시각에 갇힌 나머지 국제관계와 섹슈얼리티 계급을 방기한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예컨데, 탈북 여성으로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최진이씨가 친구로부터 ‘성매매’와 관련하여 매우 불쾌한 경험을 당한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최씨는 북한에서 조선작가동맹 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탈북 여성시인이다.

- 한국 주류여성계 극빈 이해 못해, 성매매 당하느니 굶어 죽어라?

최씨는 지난 1월 모 인터넷 기고문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한국친구에게 “북한 여성들 먹고 입고 살만한 조건이 되고 마음씨 착한 남자를 만날 운만 있다면 두세번 성매매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을 뛰쳐나오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뭐? 성매매 당하는 것이 굶어죽는 것보다 낫다고? 그건 말도 안돼!” 라며 즉석에서 맞받아쳤고, 그 후에도 이 주제를 다시 꺼내면 “우우, 말도 안 돼!” “와아. 그건 어림도 없어!”라며 대화자체를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고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최진이씨는 이를 두고 “성매매란 무엇인가? 뼈를 말리는 굶주림에 죽도록 시달리다가 숨통이 끊어지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배척해야 할 것인가?”라며, ‘극빈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여성’에만 집착하는 중산층 중심의 한국 여성주의 운동이 지닌 한계점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사실 최씨의 이런 판단은 한국사회 빈부양극화의 희생자인 성노동자들의 삶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아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주류여성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들이 만든 반민주적 악법에 기대어 단순한 자발적인 성(性)거래(trade)까지 모두를 인신매매(trafficking)인 성매매로 모두 몰아가려는 한국 여성권력계의 노력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하지만, ‘베이징 행동강령’이나 유엔총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의 근절을 위한 선언’ 제2조 등 자발적인 성거래를 인정한 국제사회의 합의에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억지 논리에 불과하다. 물론 그들에게는 미 부시행정부의 ‘성매매 반대서약’이라는 버팀목이 있긴 하지만.

- 미국과 민중 양자 앞에서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할지 성찰하자

미국이 북한인권을 논하는 자리에 인신매매(성매매)가 주요 이슈가 되고 한국의 보수적 교단인 한기총이 합세하는 것은 성매매 특별법이 한국사회를 강제하고 있는 기정사실화된 현실에 논리적 근거를 두고 있다. 더욱이 여성권력계의 거의 유일한 ‘일거리’인 ‘성매매 근절론’은 끊임없이 사회역량을 소모시키는 한편, 미국의 대북 공세에 힘을 실어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 인권외교의 틀이 기본적으로 민중들의 이해와 별개인 ‘정치적 장치’임을 이해한다면, 한국의 보수 기독교와 주류 여성계 특히 여성기독인들은 ‘성매매’ 아니 ‘성거래’ 라는 쟁점을 놓고 미국과 민중 양자 앞에서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할지 치열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유수한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부시의 대리인인 존 밀러 인신매매담당 대사 앞에서 그의 정답(?)이나 기다리는 것은 너무 한심한 일 아닌가? 이참에 베이징 행동강령이나 유엔총회 자료를 찾아 성거래 정책에 관한 우리 사회의 눈높이를 국제수준으로 높여보는 것은 어떤가.

최 덕 효 (한국인권뉴스 논설주간)


민주성노동자연대 (민성노련) http://cafe.daum.net/gksdu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