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협상 때 "외국인 채용 마라"

[중앙일보 2006-08-17 05:54]    




[중앙일보 김기찬] 16일로 48일째 파업 중인 포항건설노조는 사용주인 전문건설협회와의 단체협상에서 특이한 조건을 내걸었다. 포항지역 각종 건설공사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사용자 측은 "경영권과 관련된 사안"이라며 거부하다 결국 받아들였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도 9일 체결된 올해 단체협상에 '외국인 근로자 채용 금지'조항을 넣었다.


올 3월에는 민주노총과 여수건설노조가 "GS칼텍스가 중국동포 3000여 명을 건설현장에 투입하려 하고 있다"면서 이의 철회를 요구했다. 노조 측은 여수시를 찾아가 "중국 인력 대신 지역사회 인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GS칼텍스 측이 "그럴 계획이 없다"고 해명해 물리적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17일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2년이 됐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건강보험 등 4대보험을 적용하고, 퇴직금을 챙겨주는 등 외국인 근로자의 권익은 향상됐다. 하지만 일선 산업현장에선 노조가 앞장서 외국인 근로자의 채용을 가로막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건설부문 단체협상에선 외국인 근로자 채용 금지 조항이 중요한 협상 항목으로 등장했다.


7월 말 현재 고용허가제로 체류하는 외국인력은 12만90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인 4만2000여 명이 건설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건설부문의 특성상 고도의 숙련된 기능공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력이 투입되면 당장 기존 건설인력의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노조들이 이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이 같은 현상이 보편적이다. 미국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은 몇 년 전부터 멕시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멕시코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중국의 인권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AFL-CIO가 이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펴는 배경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멕시코 노동자와 중국인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해당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해 불법체류자의 미국 유입을 막으려는 심사라는 것이다. 멕시코와 중국에서 들어온 불법체류자들로 인해 미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많이 뺏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노동계는 처신하기가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다. 그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18만9000여 명이나 되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인권 개선을 촉구해 왔다. 이들에게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부여하라는 주장도 해 왔다. 하지만 일선 산업현장에선 '불법체류자가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넓게 퍼져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16일 "불법체류자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우리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는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는 법대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기찬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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