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 척박한 삶 보듬는 '손가락 의사'
안산 두손병원 황종익 원장
공장지대가 밀집해 있는 안산에서 ‘잘린 손가락 붙여주는 의사’로 명성이 자자한 황종익 원장. 그가 있는 곳은 안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가다보면 반월공단 초입 즈음에 보이는 두손병원이다. 황 원장은 멀리 공장에서 오는 산업재해사고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어 국내 최초로 수부외과 전문병원을 설립,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공장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을 감싸 안은 황종익 원장과의 따뜻하고도 솔직한 인터뷰를 전한다.

경기도 안산시는 반월공업단지와 시흥시 시화공업단지 배후에 계획도시로 성장한 수도권의 대표적 공업도시다. 시화-반월 공단에 집약된 중소기업만 1만5000개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공장 노동자들이 많을수록 더불어 느는 것은 각종 산업재해사고. 각 공장에서 1명만 다쳐도 1만5000명의 환자가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들의 잘린 손발을 치료해주는 ‘전담’ 병원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봉직의 근무시절 노동현장의 이 같은 실상을 목도한 황종익 원장은 1994년 현 두손병원의 전신인 두손성형외과를 개원했다. 당시만 해도 수지접합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독립 개원하는 것 자체가 모험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근래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인근 병원 원장들은 “어떻게 수부외과로 개원할 생각을 다했냐”며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성형외과를 전공한 그가 수부외과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택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왜 수부외과로 오게 됐냐는 질문을 받으면 제 답은 항상 같아요. 사명감 같은 게 아니고 우연히 그렇게 됐다고. 처음에는 2년만 해보고 나와서 미용성형을 할 심산으로 시작했는데, 수부외과만의 매력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죠.”

황 원장은 “절단돼서 시체 같이 허옇게 죽은 빛깔을 가진 팔, 다리를 붙였을 때 붉게 돌아오는 생명의 기운을 확인하는 순간 느끼는 특유의 희열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처음에는 기본 너덧 시간을 훌쩍 잡아먹었던 수술시간도 손이 빨라지면서 차츰 2시간대로 줄었다고.

입원환자 1/3 외국인 노동자

두손병원 입원환자 3명 중 1명은 인근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온 외국인노동자다. 그들의 잘려나간 손가락은 태반이 낮은 임금으로 무리한 초과근무에 시달리다 집중력을 잃어 생기는 사고이거나 낡은 기계 오작동, 기계 조작 실수 등으로 일어나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황종익 원장은 “3D업종으로 분류되는 일이라 그런지 가슴 아픈 사고를 당해서 오는 사례가 많다”면서 “10년 전에 손이 절단돼 왔던 환자가 이번에는 발이 잘려 오거나,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부부가 연이어 절단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들에게 두손병원은 단순히 잘린 손가락을 치료받는 곳 이상의 심리적 안식처가 돼 준다. 국경을 넘어 통상의 의사-환자 관계를 넘어서는 ‘라포’가 형성되는 것이다. 황 원장은 “다양한 국적의 환자들이 오다보니 ‘안녕하세요’ 인사말을 9개 국어쯤 하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 대신 다쳐온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병원에서 의료관광이다 뭐다해서 외국인 식단을 갖춘다고 하는데, 여기는 무슬림인 환자들을 위해 예전부터 식단을 이원화했습니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끼리 입소문을 탄 모양인지 멀리 김해 진양쪽에서도 환자가 찾아와요.”

손가락으로 이어진 한국에서의 인연은 종종 노동자가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계속된다. 십수년 전 황 원장에게 수술을 받은 한 몽골환자는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그를 고국으로 초청, 뭉클한 재회가 이뤄지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간 노동자가 해당 국가의 고유의상을 보내오는 일도 다반사다.

환자와 라포 형성 즐겁지만 반갑지 않은 저수가 그늘

수지접합수술은 의료계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분류된다. 오랜 시간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데 비해 의료수가는 터무니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4년 이전에는 손가락 3개 봉합수술을 하면 2개까지만 ‘값’을 쳐주는 황당한 원칙이 적용됐다. 황 원장은 병원을 개원할 때부터 8년을 줄기차게 투쟁한 끝에 3개 접합수술에 3개 수가를 적용받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을 이끌어냈다.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올해부터 미세혈관문합술과 재접합술 수가를 3% 인하했다. 얼마 전 기존 71만원에서 69만원이 찍힌 영수증을 받고 사실을 확인한 황 원장은 “무슨 이유로 수가가 내려간 건지…”라며 긴긴 한숨을 내쉬었다. 준종합병원으로는 국내 유일하게 수부외과 세부전문의 수련병원 자격을 갖췄지만 전문인력을 끌어들이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저는 처음부터 돈 벌자는 생각은 버리고 시작했지만, 후배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줄 수 없는 점이 안타까워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인데 다짜고짜 블루오션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의 소망은 수부외과를 지망하는 젊은 의사 후배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다. 환자가 몰리고 있는 만큼 전문인력만 확보된다면 분원을 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요원한 문제일 뿐이라고. 미용성형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성형외과 동문들이 빌딩을 샀네, 주유소를 마련했네 등의 얘기를 전해들을 때면 가끔 가슴 한 구석에서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황 원장은 “살면서 2번 정도 수부외과를 선택한 걸 후회해본 것 같다. 한 번은 수개월씩 슬럼프에 빠질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안산시의 유명인사가 된 지금은 ‘과분할 정도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 뿐이란다. “10년 전 저에게 받은 수술이 고마워서 지금도 2~3년마다 직접 수확한 쌀 한가마니를 조용히 주고 가시는 환자가 있어요. 10년이 지나서도 잊지 않고 찾아주니 저는 축복받은 의사죠. 이래봬도 안산 시내를 돌아다니면 알아보는 분들이 꽤 있답니다.(웃음)”

수부외과 의사로 살아온 25년이 마냥 만족스럽고 보람차다는 황준익 원장. 수술 직후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진행한 두어시간의 만남은 그렇게 흘렀다. 돌아오는 버스 창밖으로 지나쳐간 공장단지의 풍경들이 올 때처럼 낯설지 않게 느껴지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이은빈기자 (cucici@dailyme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