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 임금 확인서’가 생명 증표인 불법체류자 참파
 
[137호] 2010년 05월 01일 (토) 10:14:14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5월1일은 세계노동절 120주년. 120년 내걸었던 ‘8시간 노동 쟁취’는 여전히 전 세계 많은 노동자들에게 숙제로 남겨져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여전히 법전 안에서만 존재한다. 2004년 8월부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이들의 열악한 작업 조건과 저임금은 ‘상식’처럼 굳어졌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라며 이들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다. 한국인들이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공간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를 선택해야 한다.

방글라데시인 참파(가명·28)씨의 가방에는 비닐로 정성껏 꼭 싸맨 종이 뭉치가 들어있다. 그 종이 뭉치는 참파의 한국생활 10년을 증언한다. 종이에는 참파씨가 손으로 써내려간 체불임금 내역과 회사 사장이 ‘체불임금 갚겠다’라고 도장까지 찍은 각서, 노무사가 작성한 ‘체불 임금 확인서’ 따위가 들어있다.

지난 4월28일 오후 9시, 참파씨가 기자를 만나 앞 뒤 설명 없이 앞장 서 간 곳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 간 일했던 경기도의 한 전사지(인쇄종이) 공장이었다. 제대로 된 문도, 간판조차도 없는 33㎡(10평) 남짓 허름한 공장이었다.

참파씨는 “밀린 월급 달라고 말하러 같이 가요”라고 말했다. 참파씨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500여 만 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고,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사장은 이미 파산 신고를 하고 떠난 상태. 현재 공장은 사장의 사위(공장장)가 운영하고 있었다. 밀린 월급을 달라는 참파씨와 공장장 간 설전이 오고 갔다.

   
ⓒ시사IN 장일호
참파씨는 임금체불 소송을 대리해주고 있는 노무사가 써준 ‘체불 임금 확인서’를 늘 가지고 다닌다.
“진짜 내 월급 줬으면 좋겠어요”
“소송 취하하면 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네가 나를 안 믿어서 벌금 700만원 물었어.”
“벌금 나온 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파산한) 사장님은 월급 준다는 각서에 도장까지 찍고도 약속 안 지켰는데, 공장장님은 말로만 했어요. 법적으로 걸어 놓은 거 취소하면 다음 날 (단속에) 잡혀갈 수도 있어요. 그럼 하나도 못 받아요. 그렇지만 법에 걸려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도 받을 수 있어요. 공장장님은 회사라도 받았잖아요. 사장님 나 생각 안했어요. 한국인이라면 이렇게 했겠어요. 나 외국인이라서 이런 거 잖아요. 돈 없다면서 기계도 샀어요.”
“지금 회사 사정이 말이 아니다. 나도 모르겠다. 회사 물려받아 운영하면서 신용이 나빠져서 더 이상 돈 빌릴 곳도 없고. 나한테 와서 이러지 말고 사장님이랑 법적으로 다퉈라.”

한바탕 공방이 오고간 후에, 참파씨가 긴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참파씨는 19살 되던 2001년 한국에 왔다. 방글라데시 신문에 난 한국 공장의 구인광고가 한국행을 이끌었다. 참파씨는 “방글라데시에 가족이 12명이예요. 정말 먹고 살기 위해서 한국에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가 지난 10년간 방글라데시에 간 건 딱 한 번. 2003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뿐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상담 이유 70~80%는 임금체불

임금체불은 인쇄공장에서 받지 못한 500여 만 원만 있는 게 아니었다. 2008년 접착테이프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참파씨는 그곳에서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 공장에서 밀린 돈은 800만 원. 공장은 문을 닫았고, 참파씨는 이 공장과도 소송을 진행 중이다. 참파씨가 한국에서 일하고 받지 못한 돈은 모두 1300만 원. 이 돈이면 방글라데시에 있는 식구 12명이 편하게 살 수 있는 큰 액수이다. 

이주노조 정영섭 사무처장은 “이주노조로 상담을 요청하는 이유의 70~80%는 체불임금에 관한 건이다. 체불임금 뿐 아니라 최저임금이나 퇴직금, 수당 같은 법에 보장된 권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잘 모른다는 걸 악용하는 사업주들이 많다. 인심 쓰듯이 ‘얼마’를 주는 식이다. 체불임금의 건수와 액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기 전에 입국한 참파씨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 신분이다. 그는 “내가 ‘불법 사람’이라는 거 알고 일부러 월급 안 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재 참파씨는 비닐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주·야 2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받는 돈은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이 가운데 70만 원 정도를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다. 남은 돈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기도 빠듯하지만 참파씨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노숙인들에게도 후원금을 조금씩 보내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 노숙자 많아요. 주로 늙고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어요. 돈 벌면 이런 사람들 도와주고 싶었어요”

   
ⓒ뉴시스
한 이주노동자가 크랙다운(불법체류자 단속)에 항의하고 있다.
숙식은 공장 내에 있는 3.3m²(1평) 남짓 컨테이너 박스에서 해결한다. 방문을 열면 24시간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귀가 멍멍해지고, 비닐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불법체류자 처지에서는 그래도 마음 편하게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사장은 참파씨가 ‘불법 사람’임을 알면서도 고용했다. 한국사람 중에는 지방 공장에 와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공장에는 주간 근무를 끝낸 참파씨의 뒤를 이어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 한 명이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참파씨의 형과 동생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일하러 들어왔다. 그러나 참파씨는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 단속에 걸려 추방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불법 사람이기 때문에 추방되면 다시 못 돌아와요. 그래서 공장 밖으로 잘 안 나가요”

2005년부터 감소세를 보이던 외국인 노동자 강제 출국자는 ‘MB정부’ 출범 이후 늘고 있다. 2009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공개한 법무부의 연도별·국가별 강제출국자 수를 보면 2007년 1만 8462명이었던 강제출국자 수는 MB정부 1년차인 2008년 3만 576명까지 늘었다. 불법 체류자인 참파씨는 언제 ‘크랙다운(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릴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참파씨는 임금체불 소송을 대리해주고 있는 노무사가 써준 ‘체불 임금 확인서’를 늘 가지고 다닌다.

“본 이주노동자는 OO도 OO시 OO구에 위치한 OO산업으로부터 임금을 받지 못해 현재 노동부에서 사건이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본 이주노동자가 체불임금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출입국(또는 보호소)에서 협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대리인에게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파씨에게는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도 없는 이 확인서가 생명 증표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