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든 이주노동자 소모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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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뚜씨(35)의 명함에는 직함이 여러 개 새겨져 있다. 'MWTV(이주노동자의 방송)' 대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2004년 결성된 '버마행동' 총무, 이주노동자들이 결성한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보컬·작곡·기타리스트… 날래 보이는 작고 마른 몸으로 그는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날라 간다. 어디 한 군데 편히 앉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소모뚜씨는 바빴다. 그와 인터뷰는 이동 중인 전철 안에서 주로 이뤄졌다. 소모뚜씨를 만난 4월29일, 그는 언론시민단체 활동가 14명이 낸 ‘공영방송 국민 컨설팅 보고서’의 공저자로 참여해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오후에는 매주 토요일 방송되는 iFM(옛 iTV 경인방송)<다문화 톡톡>의 진행을 위해 인천으로 향해야 했다. OBS 라디오 <다문화 톡톡>의 김희성 PD는 “이주노동 당사자가 직접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다시 서울로…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보증금 50만 원짜리 작은 단칸방은 집이 아닌 ‘자는 곳’이다. 그는 다음 날 스탑 크랙다운 공연을 하러 대전으로 간다고 했다. 빼곡한 스케줄을 듣고 있던 기자가 놀라워하자, 소모뚜씨가 말했다. “얼굴을 드러내고 다닐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주노동자)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해요. 그 사람들 생각하면 힘들 수가 없어요” 여느 이주노동자들과 달리 소모뚜씨는 이 곳 저 곳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닐 수 있다. 공장 같은 ‘현장’에서 일하기보다, 현장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국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그가 ‘인도적 지위’ 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모뚜 '주임'에서 '활동가'가 되기까지 처음 한국에 와 들어간 곳은 박스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8년을 일했다. 그 공장은 ‘소모뚜 주임’이라는 직책을 붙여준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정부의 미등록 이주 노동자 단속이 심해졌다. 추방되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주임으로 눈 딱 감고 일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성공회 성당 앞에 농성장을 꾸렸는데 ‘주임’ 소모뚜도 그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이 외친 구호, ‘스탑크랙다운(Stop Crack Downㆍ단속을 멈춰라)’은 그대로 밴드 이름이 됐다. “피부 서로 달라도/문화 서로 달라도/우리 서로 아름 다음 동지/혼자 가는 것보다/함께 가면 좋은 걸/함께 사는 이 세상 우리를 위하여.(스탑크랙다운 노래 <와> 中)” 그들은 그렇게 ‘함께 살자’라고 한국말로 노래했다. 농성이 마무리 되면서 소모뚜는 소화기 압력계를 만드는 공장에 들어갔다. 소모뚜의 ‘강행군’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월~토요일까지 일하고, 단 하루 쉬는 일요일이면 밴드 연습을 하거나 공연을 가졌다. ‘버마행동’이 꾸려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2005년 MWTV가 만들어지면서는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사장은 늘 소모뚜를 배려해주곤 했다.
공구 대신 소모뚜씨는 카메라를 들었다. MWTV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그에게 MWTV는 단순히 방송이 아니다. 그는 “MWTV를 통해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찾아다니면서 노동법, 산재, 최저임금법 등을 공부했다. 취재 차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성공회대 민주사회교육원이 운영하는 노동대학에 꼬박꼬박 참여해 강의를 듣곤 한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국내 기업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은 또 한 번 실직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정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수를 제한하는 ‘건설업 취업허가제’를 도입했고, 기존에 회사에서 부담하던 기숙사비와 식대 등을 이주노동자 월급에서 공제하는 방안 도입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시행되던 취학 아동을 둔 미등록 이주 노동자 부모들의 한시적 체류 허용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 됐다. 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도 선 구제하고 후 통보한다’라는 지침을 삭제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체불임금을 상담하러 가면 노동부는 문제 해결에 앞서 법무부에 신고부터 하게 했다. 누구보다 이런 현장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의 ‘속살’을 잘 알고 있는 소모뚜씨는 말한다. “이주노동자들에 나라를 떠나올 때,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것 아니에요.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에 떠나오는 경우가 많죠. 저 역시 그랬구요. 이주노동자들, 한국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싼 값으로 일해요. 미디어에서는 명절 때 TV에 한복 입고 나와 한국말로 노래하고, 한국 음식 잘 먹는…그런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카메라를, 마이크를 놓을 수가 없어요. 아직 알려야 할 현실이 더 많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