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 20년 넘었어도 ‘노동권’은 제자리

2일 이주노동자 대회 열려...단속추방 중단, 노동허가제 등 요구

윤지연 수습기자  / 2010년05월03일 0시26분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 구스웬디 씨는 원단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에게 적은 돈이나마 보내기 위해 낮은 임금을 견디고는 있지만 사장의 욕설은 견디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 십 번 사장은 그에게 ‘XX새끼’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한번은 사장님에게 욕을 하지 말라고 얘기 했지만, 돌아온 것은 더 심한 욕설뿐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디율리 씨는 한국에서 용접공으로 일한 지 벌써 14년째다. 그는 ‘월급날’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3개월 까지 임금이 밀릴 때가 다반사지만, 사장은 ‘돈이 없다’고 한다. 사장의 욕설이나 임금 미지급에 대해 말을 할 수도 없다. 사장은 마음대로 그를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땅에는 가족들이 있지만, 그는 고향에 갈 수 있는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해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2일 2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5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과 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였다. 120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우리는 노동자, 노동자는 하나’라는 슬로건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자 대회가 열린 것이다. 사실 노동절은 하루 전 날인 1일이지만,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토요일까지 근무를 하기 때문에 노동절 다음날인 일요일에 별도의 행사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행사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은 △유엔 이주노동자 협약 비준 △모든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단속추방 중단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출입국법 개악 규탄 △재외동포 자유왕래 보장을 요구했다.


이 날 오후 2시부터 마로니에 공원에는 사회단체들의 갖가지 부스가 차려졌고, 그 사이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악기를 치고 춤을 췄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서는 단속 추방된 이주노동자들의 물건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을 열었으며,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에서는 이주노동자 사진전과 ‘한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이라는 앙케이트 조사를 벌였다. 강북 빈민사목위원회에서는 자발적으로 나와 벼룩시장을 열기도 했다. 행사에 참여한 빈민사목위원회의 한 수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재활용 물건들을 가지고 나왔다”면서 “벼룩시장을 통해 모인 돈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3시부터 시작한 본 행사에서 노우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언어, 국적, 피부색이 다른 이주노동자도 노동자”라면서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을 향해서만 불법적 단속이 합법화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삼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대표는 “한국판 노예제인 산업연수생제도가 폐지되고 고용허가제가 시작이 됐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지지 못하는 등 노동자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은 고용허가제에 대해, ‘이주노조’에서는 이주노동자 노조 조직화를, ‘서울중국동포의 집’에서는 중국 동포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반대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 자리에서 발언에 나선 이주노동자 샤니 씨는 “고용허가제는 정부의 쉬운 관리감독과 사장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면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개와 같이 목을 묶여 인간으로서 대우 받지 못하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정부의 불법단속은 오랜 시간 논란이 되어왔다. 특히 2007년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참사와 이주노동자들의 갖가지 산업재해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국의 낮은 인권 의식을 보여준 참사들이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4월 21일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폐지되었던 외국인 지문날인이 부활, 강화된 바 있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대해 파키스탄에서 온 이주노동자 샤니 씨는 “노동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고용허가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라면서“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인간으로서의 대우와 일한 만큼의 대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