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대신할 다른 말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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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용어 자체가 차별적..필리핀댁 호소

(부천=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아이들은 그냥 한국인이잖아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로 콕 찝어 꼭 밝혀야 하나요. 사춘기 애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어요."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인으로 귀화한 이한나(40) 씨는 이번 겨울이 한국에서 맞는 11번째 겨울이다. 최근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주최한 송년 모임에서 "아이들이 `다문화 아동'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을 때 정말 속상했다"며 "다문화란 말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씨는 8일 자신이 상담원으로 일하는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다문화란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동남아 국가 출신의 엄마가 있는 집으로 통한다"며 "아이들이 '얘는 다문화 애야'라는 말로 따돌림을 받을 때 크게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다퉜을 때 교사가 '우리 애와 다문화 애가 싸웠어?'라고 말했다는 얘길 듣고 화가 크게 치밀었다고 밝혔다.

"애들은 모두 한국인이잖아요. 그런데 '다문화 애'는 편 가르며 따돌리고 '우리 애'는 감싼다면 되겠습니까. 그런 다문화라면 필요 없어요."

그는 나아가 "다문화 공부방을 만들어 다문화 가정 아동만 출입하게 하면 안 된다"며 "공부방은 누구나 다 와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하며, 다문화 출신이든 아니든 문제가 있는 아동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문제없는 다문화 아동인데도 무조건 내려다보며 시혜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아동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부터 먼저 풀어야 한다"며 "저야 어떻게 불리든 운명으로 여기나 애들만은 '다문화'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러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문화라고 지칭하는 순간 그 말 속에는 차별이 담겨 있다"고 지적하며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된다"고 답했다.

그는 11살인 딸이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다문화 아동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듣고 상처받았다고 소개하며 "그때는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는데 최근에야 미안하단 말을 했다"며 "한국 태생이 아닌 어머니를 뒀다는 이유로 차별과 따돌림을 받는다면 어쨌든 미안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새 학년이 돼 학부모 모임에 가면 아무도 자신의 곁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며 "그런 시각과 태도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학교에 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 생활 초기에는 문화 차이 탓에 적응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임신했을 때 먹고 싶어 마련해 둔 필리핀 음식에서 이상한 냄새 난다며 핀잔을 받았던 일이나, 시장에서 판매원들이 자신의 외모를 보고 무조건 반말로 대할 때는 속이 상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영어 학원 강사 시절 무자격임에도 백인 미국인을 우대하는 한국의 풍조를 거론하며 "그 백인과 능란하게 말하는 저를 보고 놀란 학원 원장이 계약을 연장하자고 했을 때 통쾌하게 거절했다"며 "애들을 다문화란 말로 족쇄를 채운다면 진정한 다문화가 이뤄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tsyang@yn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