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중앙아 빈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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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G "이주노동자 대거 귀환으로 사회불안 심화"

(알마티=연합뉴스) 이희열 특파원 = 중앙아시아 가난한 나라들이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휘청거리고 사회 불안이 극심해지고 있다. 오일달러가 넘치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 돈을 벌러 떠났던 노동자들이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고 대거 본국으로 귀환함에 따라 경제가 어려워지고, 그간 실업자 통계에서 제외됐던 젊은 이주 노동자들은 사회적 불안정의 새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강대국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인접한 이 나라들의 아프간 병참기지라는 전략적 역할에만 주목, 무능한 독재정권과 손잡는 일에 급급할 뿐 정치.경제 발전에는 무관심해 극단주의 세력이 사회 불만 층에 손을 뻗을 여지가 넓어지는 등 오히려 불안정성이 더 커지고 있다.

분쟁문제 대책에 특화된 국제적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은 6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세계 금융위기가 러시아와 카자흐로 돈 벌러 간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이주 노동자 500만명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ICG에 따르면, 이들은 그동안 현지인들이 꺼리는 험하고 궂은 노동에 종사하며 고국의 가족과 친척들을 부양해 왔으며, 이들이 송금한 돈은 키르기스와 우즈벡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과 8분의 1, 타지크 GDP의 무려 절반에 달한다.

그러나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와 유가 폭락으로 러시아와 카자흐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건설현장 등에서 일해온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유랑걸식하는 신세가 됐으며, 견디다 못해 귀국한 노동자가 지난해 말까지 최대 1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의 송금이 격감하면서 타지크와 우즈벡, 키르기스 등의 경제는 이미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이 나라들의 독재정권은 이주 노동자들 덕에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갈등을 억제하는 등 자신들의 경제적 무능과 부패를 얼마간 가릴 수 있었으나 해외 생활을 경험한 젊은 귀환 노동자들은 이제 정치적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회적 불안정을 틈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젊은이들에게 손을 뻗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우즈벡, 키르기스, 타지크는 아프간 탈레반과 연계된 이슬람 과격파들의 공격을 받고 총격전까지 벌인 바 있다. 취약한 국내의 정치.경제적 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아프간과의 근접성 때문에 갈수록 이 지역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아프간에 인접한 빈국들인 키르기스와 우즈벡, 타지크에서 뿐만이 아니다. 아직 귀국하지 못하고 러시아 등에서 실업자가 되거나 곤궁한 상태에 빠진 이주 노동자들 역시 극단주의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편견과 냉대는 금융위기 이후 더욱 심해진 상태다. 러시아와 카자흐 경제는 기대만큼 잘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장기 독재가 이어지는 중앙아 지역 국가들의 안정을 위해선 경제 못지 않게 정치 발전이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정치적 움직임은 근년들어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타지크의 경우 잔혹하게 짓밟혔던 시민항쟁의 기억, 키르기스 역시 2005년 `장미혁명' 실패에 따른 좌절과 환멸, 우즈벡의 경우 가부장적 독재 체제의 철통 같은 감시망 등이 정치 개혁 요구의 싹을 자르고 있다.

ICG는 그동안 서방의 압력도 이 나라들에는 효과가 없었다면서 게다가 최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국이 이 나라들의 아프간 병참기지 역할을 중시함에 따라 이러한 개혁과 발전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방의 접근 방식이 앞으로도 유효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한 ICG는 이 나라들이 자체적으로 개혁에 나서고 국제사회도 이 나라들에 압력을 가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그 어느 것도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jo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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