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2달 가까이 끌어오던 여수 화재 참사가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협상 국면으로 일단락되었다. 진상을 재조사하던 국가인권위는 외국인들에 대한 ‘보호’의 의무를 명확히 할 것과 보호소 시설 개선을 골자로 하는 내용의 ‘권고’만을 법무부와 기타 정부 부처에게 던졌을 뿐이었고 출입국관리소장에게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봐도 웃길만한 ‘주의’ 조치만 내렸다. 출입국관리국장은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를 표명했지만 정부에서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검문/검색 강화하는 것으로 화재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유가족들은 1억 천만원에 달하는 보상금으로 합의했으나 방화범으로 몰린 故 김광석 씨의 경우 아예 정부에게 보상조차도 요구할 수 없었다. 생존자들은 천만원의 위로금과 단기 비자 발급, 가족 출입 허용 등의 내용으로 합의를 하긴 했으나 여전히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이주노조가 현재 역량 하에서 있는 힘껏 투쟁을 해왔다 해도 모든 것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고용허가제는 개선이 아니라 분쇄해야 할 것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고 난 지 3년이 지나는 해 초입, 각기 억울한 사연들로 감옥 같은 보호소에 들어왔고 막상 화재가 나고 살려 달라고 외쳐도 묵묵부답이던 정부에 의해 10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이 끔찍한 사태는 단속 추방 정책의 실태가 살인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도 말할 필요 없이, 이미 ‘살인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후퇴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제 때 다 벌지도 못하는 돈으로 살다가 체류 기한을 넘기기 일쑤이며, 언제 감옥에 끌려갈지 몰라 불안한 일상을 산다. 1년간의 계약인생으로 3년을 살 수 있다는 것, 정해진 업종을 벗어나면 불법이라는 것, 회사가 파산 직전에 이르렀을 때 일을 옮길 수는 있어도 이 역시 1달간 다른 일을 구하지 못하면 불법이라는 것 등, 단지 다른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쉽게 불법이 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 사회가 가진 법적 절차는 잔혹하기만 하다.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제도가 주는 노예적 성격을 탈바꿈하기 위해 ‘허가’라는 말로 세련되게 치장하고 있을 뿐 이주노동자들을 쉽게 불법화하여 사업주들이 마음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노예 노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은 변함이 없다. 자본가들의 고용만을 허가하는 제도인 고용허가제 내에서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내용들이 관철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허상’이다. 우리의 요구였던 노동허가제에도 사업장 이동을 산별로 제한한 요구로부터 출발했거늘 한 줌 안 되는 자본가들과 이들을 비호하는 정부의 손으로 만들어진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에게 (현재와 같은 역관계에서) 사업장을 선택할 기회를 부여하겠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원하는 기간만큼 일할 수 있도록 발급될 수 있는 비자이며, 노동 3권이다. 아울러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제반 복지 사항-사회 보험 적용, 가족 출입 허용, 양육권리 보장 등-이지 다른 것이 될 수는 없다.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보장받을 수 있는 선은 최저임금법 및 산재일 뿐이다. 이마저도 사업주 제멋대로였던 임금 지급을 최소한의 법적 틀에 맞추어 이주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해 산재 정도는 보상해야 사회에 필요한 이주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된 것이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여전히 감옥에 가두면서 불법화, 노예화를 가중시키는 틀 내에서의 약간씩의 개선만을 행할 것이다.

선별 합법화? 합법화라 말하지 마라!

자진 출국을 유도한 뒤 재입국하도록 하는 정책에 대해서 이주노조 활동가들은 2004년에도 똑같았다고 이야기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이 미등록이라고 신고하고 나라를 떠나면 다시 들어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들을 고스란히 믿고 떠났다가 못 돌아온 이주노동자들이 태반이었다. MOU를 체결한 국가들(필리핀, 베트남, 태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캄보디아, 최근에 중국이 체결되어 10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자진 신고해 나라를 ‘일단’ 떠난 뒤 다시 들어오면 ‘고용허가제’를 통해 다시 떠나야 한다는 것을 ‘합법화’라 칭하는 것은 말장난이다. 비자를 한국에서 받고 떠나는 것도 아닌데 다시 들어올 수 있는 보장이 어디에 있으며, 돌아온다 하더라도 3년이 지나면 다시 떠나야 하거늘 어떻게 이것을 ‘합법화’라 말할 수 있는가. 이는 명백히 이주노조로의 단결을 깨기 위한 목적이지 진정 이주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려는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정부 정책과의 대립에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 이주노조는 MOU 국가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자진 출국 거부를 조직하고 자진 출국 거부 운동을 확산시킬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투쟁을 확산시키자

우리는 대정부 행동의 일환으로 대중 호소 캠페인과 큰 규모의 집회를 벌였지만 이러한 행동들의 조직적 결과는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행동이 얼마만큼 고양되고 확대되는가에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단속을 중단할 때까지 투쟁하라 한다면 대체 언제까지 어느 수위로 싸워야 하는지가 애매해 대규모 대중 선전전으로만 그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핵을 공격할 수 있으려면 정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을 파괴하기 위한 물리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의 방식은 현장에서의 노동을 멈추는 것뿐이다. 사소하게 침해되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합법적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써 현장에서 집단적으로 작업을 거부하고 나를 탄압하는 사업주와 국가를 향해 조직적으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대정부투쟁은 자기 현장에서 조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조직해야 하는 과업이다.

이미 한국은 FTA를 체결하였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자, 농민들의 생존권이 불안해진다고들 이야기한다. 미국 자본이 경제적 우위를 점하려는 싸움은 협상 몇 차례로 끝났지만 FTA가 체결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측만 난무하고 있다. 지난 2월 여수에서 유독가스에 질식해 억울하게 사망한 10명의 이주노동자만이 아니라 FTA에 맞서 분신한 허세욱 동지마저 보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진 것이 많이도 있는 이들은 점점 소수가 되어서 다수를 지배하고 있으나 저임금으로 팔려 다녀야 하는 노동자들은 자기 목숨마저 내놓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가장 극악한 탄압의 대상의 중심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단속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적 연결망들을 조직하고, 이주노동자들의 현장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조직하자. 이주노동자들의 이슈는 이미 전면에 부각되었으며 이주노동자들의 행동 역시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고무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전면적인 투쟁을 통해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승리의 가능성은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서울경인 이주노조 경기중부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