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떠돌이 머슴살이"…이주노동의 악순환

기사크게보기 기사작게보기 이메일 프린트


‘코리아 드림’을 좇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고국에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한국에서 번 돈으로 고국에 정착해 가족과 잘 살고 있을까?

◈ “나하나 고생하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으니까...”

이미 다른나라에서 두 번의 이주 노동을 경험하고 한국에 온 네팔 출신의 차트라(34)씨.

그의 첫 이주노동은 지난 1998년부터 시작됐다. 비자를 얻기 쉬운 카타르에서 3년간 20만원을 받고 일했다. 옷가게라 일은 편했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2001년 다시 고국인 네팔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5개월 후 또 다시 카타르 행을 택했다.

“처음 받았던 돈 보다 더 준다기에 카타르로 갔다. 2년간 40만 원씩 받고 일했다. 하지만 돈은 모아지지 않았다.”

한 달에 40만 원을 받고는 생활비만 겨우 할 수 있을 뿐 커가는 두 아들의 교육비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2003년 다시 고국에 돌아온 차트라는 다시 한번 힘든 결심을 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한국으로 갈 비자를 얻기 위해 2003년부터 5년 동안 준비했다.

그렇게 지난 2008년 32살에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왔다.

1년 반 째 한국에 체류 중인 그는 현재 김해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카타르에 비해 돈은 많이 벌 수 있지만, 일이 너무 힘들다. 한국말도 서툴러 눈치껏 일해야 하고, 최근에는 허리까지 다쳐 일을 쉬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엄마 약값도 하고 또 최근에는 네팔에 집도 사서 뿌듯하다.”

“몸이 아파도 나만 고생하면 가족 모두가 편해지니까 괜찮다.”

◈ “내가 혼자 벌어요. 내가 번 돈 어디가는지 나도 몰라요”

파키스탄 출신 에머드(34)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고향으로 자진 출국해 지금은 그리스에서 또다시 이주 노동을 하고 있다.

그는 1996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장기간 체류로 인해 불법체류자로 13년 동안 있었다. 신분이 불안정해 일을 쉽게 구할 수도, 마음 놓고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단속 소식이라도 들리면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했고 한 두달 쉬다보면, 자신의 생활비도 감당 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는 내 돈만 기다려요. 7명의 식구들을 내가 먹여 살려야해요. 내가 이렇게 돈 벌어서 보내줘야 우리가족이 살 수 있어요.”

꼬박꼬박 번 돈을 고향에 송금하면서 단속을 피해 일을 구하고 그만두기를 수차례. 결국,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기 2년 전 단속에 걸렸다. 임금도 못 받고 나왔다.

그는 한국에서 더 일하며 돈을 모으고 싶었지만, 언제 내쫓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더 이상 불법체류자로 살아갈 자신은 없어 2008년 6월 파키스탄으로 출국했다.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자마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도 낳았다. 다행히 한국에서 틈틈이 보낸 돈으로 가족들이 공동으로 살 수 있는 집은 마련했지만, 그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과 이제 갓 태어난 아이를 생각하면 또다시 이주 노동자의 삶을 계획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로 가는데 1천 5백만원 들었어요.. 1천 만원 빌려서 나왔어요.. 빚도 갚아야 해요.. 집으로 돈도 보내야 해요...”

그리스로 간지 이제 넉달 째. 말도 통하지 않아 불편하다. 대화를 할 상대도 없고 지금은 마땅한 일자리도 없어 일주일에 한 두 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너무 힘들다.. 갓 태어난 아이가 눈에 아른아른 거린다. 결혼하자마자 또 집을 떠나게 돼 아내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 “한국에 온 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러운 일..”

파키스탄 출신의 라자크(33) 역시 지난 2003년 말레이시아에서 1년 이주 노동 후, 고국에서 1년을 머물다 2006년 한국에 들어와 5년째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다.

말레이시아에서 바로 한국에 오려고 시도했지만, 한국에 오려면 적어도 600~800만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번 돈으로는 불가능했다.

“말레이시아에 가는 것은 돈도 적게 들고,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월 40~50만원 벌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 힘들다. 한국 올 때 돈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빚도 다 갚고 가족들에게 돈도 보내고 있다.”

다행히 결혼을 하지 않아 다른 이주 노동자에 비해 부담은 덜한 편이다.

“불법 체류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곧 고향으로 가야하는데 5년이란 기간이 너무 짧은 것 같다. 기회만 된다면 한국에 오래 있고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으로 오기 위한 비용을 갚기 위해서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또 2년 정도는 고국의 가족을 위해서 돈을 부쳐야 한다. 그 이후에야 겨우 하고 싶은 일과 결혼도 할 수 있는데 남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빚을 내서라도 한국에 와서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낸다. 그곳에서는 열심히 해도 20~30만원밖에 벌 수 없다.”

◈ 소박하고 작은 꿈 “고향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이처럼 고국에 돌아가면 가족과 재결합하고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풀어 귀환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2005년 ‘이주노동자 귀환정착지원 프로그램 개발 컨소시엄’에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송출국 5개국을 방문하여 귀환 이주노동자 374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국내에 거주하는 12개국 1,086명을 대상으로도 같은 내용으로 조사를 벌였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빈곤 극복을 위해 한국에 이주했던 이주노동자 중 86.2%는 귀환 후에도 여전히 경제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오히려 장시간 진행된 자국 사회와의 단절로 인해 60.7%는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또한 조사 대상자의 85.2%는 또 다른 이주노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주 노동자가 1억 8천명이라는 통계에 따른다면, 세계 인구의 3%는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주노동자로서의 고된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