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인에 비겁한 ‘우월의식’ 유정인·황경상·김지환기자 jeongin@kyunghyang.co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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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외국인 모욕죄 첫 기소’로 본 한국사회
ㆍ따돌림·반말 예사… ‘다문화 인식’ 아직 멀어

방글라데시에서 엄마와 함께 5년 전에 입국한 ㅅ양(13)은 최근 태권도장을 그만뒀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피부도 검고 더러운 아이”라며 도장에서 따돌림을 당한 것이다. 도장의 또래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도 “(ㅅ을) 누나나 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준 한국인이 처음으로 기소당한 ‘후세인 보노짓 사건’을 계기로 우리사회의 ‘인종차별 감수성’에 대한 문제가 본격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이상재 사무처장은 “후세인은 대학교수라는 직함이 있어서 문제라도 제기할 수 있었지만 더 심한 모욕을 일상적으로 겪는 외국인이 숱하게 많다”고 지적했다.

5년 전 한국여성과 결혼해 귀화한 방글라데시 출신 ㅈ씨(38)는 관공서나 택시에서 으레 반말을 듣는다. “어디 가냐” “뭐하는 놈이냐”라며 반말하는 이들에게 “나도 한국사람입니다. 반말하지 마세요”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는 “식당에서 옆자리에 있는 한국 사람이 ‘외국놈들 더러운 냄새 때문에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해 시비가 붙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온 ㅅ씨(45)는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일하던 제조업체를 그만뒀다. 기숙사로 마련해 준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했는데 회사 측에서 다른 이주노동자까지 함께 살도록 한 것이다. 그는 “부부가 사는 곳에 어떻게 다른 사람도 함께 살도록 할 수가 있느냐”며 “기본적으로 우리를 ‘노동 기계’로만 취급할 뿐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종차별의 바탕에는 순혈주의와 동남아지역 외국인에 대한 우월의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7월 발족한 성·인종차별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사무처장은 “우리나라는 순혈주의로 다문화에 대한 학습과 경험이 거의 없다”면서 “외국인들이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됐지만 아직 한국인들의 인식은 이들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거주현황’에 따르면 외국인 주민은 110만6884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한다. 이는 지난해 89만1341명보다 21만5543명(24.2%) 증가한 것이다. 이 중 한국 국적자가 7만3725명이고 결혼 이민자의 자녀도 지난해보다 4만9682명 늘어난 10만7689명으로 집계됐다.

다문화가족협회 정혜실 공동대표는 “다문화라는 것이 말로만 쓰일 뿐 충분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인간과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가 부족한 상태에서 다문화를 이야기하다 보니 다문화정책은 시혜성으로 이뤄지고, 다수인 한국인이 아닌 소수 이민자를 향한 교육에만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정인·황경상·김지환기자 jeongin@kyunghyang.com>

법제화도 ‘걸음마’…‘차별금지법’ 자동폐기 후 개별법안 다시 추진 유정인·김지환기자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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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외국인들이 겪는 인종차별이 사회문제가 됐지만 법제화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지난 7월 버스에 탄 후세인 보노짓 성공회대 교수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박모씨(31)는 형법상 모욕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 현행법상 인종차별을 규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2007년 성별·장애·출신민족·인종·피부색 등 20가지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란 끝에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국회에서는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지난 6일 인종차별금지법안을 제출하겠다고 예고했다. 법안은 인종·국가·민족·피부색 등을 이유로 악의적인 인종차별을 하면 인권위의 시정명령을 거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 의원 측은 1주일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예고제’를 거쳐 이달 중순쯤 발의할 예정이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인종차별금지법 같은 개별법이든 차별금지법 같은 일반법이든 근본적으로 이주민을 배제하거나 노골적으로 배척하는 현행 법제에 대한 전체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설] 인종차별 발언 첫 기소 의미있다  

외국인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한 내국인을 형사처벌한 검찰 조치가 처음 나왔다. 버스에 함께 타고 있던 인도인에게 ‘더럽다.’ ‘냄새 난다.’며 모욕감을 준 30대 남자를 기소한 것이다. 인도인 피해자는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들과 30대 남자의 인종차별 행위를 바로잡아 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도 냈다고 한다. 늦었지만 당면 다문화사회의 진통을 줄여나가는 시점에서 불거진 첫 법적 사례로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근래들어 국제화, 세계화 흐름 속에 순혈주의 전통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국내거주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데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특히 유색인종과 후진국 출신 외국인을 보는 차별의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번 검찰 결정이 우리사회의 평화적 공존이란 큰 틀에서 특히 기대를 모으는 까닭이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한 차원 높은 성숙된 사회로의 진입은 기대할 수 없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체류 외국인은 110만명을 넘어섰고 2050년쯤엔 10명 중 5명이 귀화자나 외국인일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산다는 의식을 키우지 않을 경우 범죄며, 심각한 불협화음이 덩달아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외국인 차별과 인신모욕은 빨리 버려야 할 시대적 과제인 셈이다. 평화와 공존을 향한 인권의식과 함께 외국인 부당대우나 차별에 관한 법적 정비를 통해 성숙한 다문화사회의 진입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외국인 110만 시대 ‘인종차별금지법’ 추진 [중앙일보] 기사나도 한마디 (3)피부색·출신국 다르다는 이유로 악의적 모욕·불이익 땐 처벌토록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 악의적인 인종차별행위를 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법안이 추진된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6일 수치심·모욕감·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포함해 인종·출신 국가·민족·피부색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은 인종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모집·채용의 기회를 주지 않거나 임금을 차등 지급해서도 안 된다. ▶금융기관 대출·신용카드 발급·보험 가입 등에서 불리한 대우 ▶교통수단과 상업시설 이용 제한 ▶주거시설 공급·이용에서 배제 ▶이유 없이 교육기관 지원·입학·편입을 제한하거나 전학·자퇴 강요 ▶수사·재판에서의 차별 ▶진료 거부 등이 금지된다.

법을 어겼을 때의 제재조치도 규정했다. 피해자는 우선 국가인권위에 진정하고, 인권위는 차별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특히 고의성·지속성·피해 내용과 규모로 볼 때 차별 행위가 악의적이면 법원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 법안은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만큼 ‘입법예고제’를 거치게 된다. 인터넷 등을 통해 1주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다. 전 의원은 “국회 내에 인종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 통과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10만 명에 이른다.

백일현 기자

<사람들>`인종차별'에 맞선 후세인씨
| 기사입력 2009-09-06 05:31 | 최종수정 2009-09-06 10:36


`인종차별'에 맞선 후세인씨  

"한국인 인종 편견 심각…싸움 계속한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순혈주의를 자랑으로 내세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일종의 `성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과 `우리'라는 이분법적 혈통 인식 속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무거운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됐고, 특정 인종에 대한 열등감과 다른 인종에 대한 우월감에 기초한 겹겹의 차별의식은 이 사회에 구조적으로 형성됐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진 탓에 누구도 외면해온 한국의 인종차별 관행을 신흥개발국 출신의 외국인이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주인공은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28)씨.

그는 7월 10일 버스 안에서 정장을 입은 30대 한국인 남성으로부터 인종차별적 모욕을 듣고 이 남성을 고소했고, 이와 별도로 인종차별도 범죄 행위로 인정하고 처벌토록 해 달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후세인씨는 6일 연합뉴스 기자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통해 갖게 된 복잡한 심정의 일단을 드러냈다.

경찰과 검찰을 드나들고 매일 이런 경험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은 스트레스였지만, 한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것은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을 보면 그동안 잠복해 있던 인종차별 문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큰 폭발력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는 그는 "수없이 많은 누리꾼이 나의 행동을 비난하지만, 또 그만큼의 누리꾼들은 심정적으로 공감을 표하고 지지한다. 인종차별 문제에 관해 진중한 토론이 오가는 것 자체가 큰 성취다"라고 말했다.

인도 뉴델리의 델리대학에서 현대사를 전공한 그는 2007년 초 한국으로 와 성공회대 아시아비정부기구(NGO)학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이듬해 졸업과 동시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로 임용돼 신자유주의 속 한국과 인도의 노동운동을 연구하고 있다.

후세인씨는 한국에서 경험한 인종차별 사례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말했다.

특히 백인과 비백인을 차별하는 이중적 인종 잣대는 한국인의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고 개탄했다.

그는 "한번은 버스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갔는데 운전사가 발로 툭툭 차면서 내리라고 했다"며 "그는 분명히 나를 보고는 그렇게 해도 될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내가 만약 백인이었다면 그가 그런 행위를 했을지 궁금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한국인들의 행동이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사람들에 대한 `알량한 우월감의 발로'라고 했다.

그는 "한국인은 동남아시아나 남아시아 출신 외국인들이 자신들이 일하기를 꺼리는 작은 공장에서 돈을 버는 `더러운 동물'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들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위험하고 더러운' 중소기업에서 한국의 밑바닥 경제를 살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후세인씨는 한국의 인종차별과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향후 연구 주제도 '아시아의 인종차별과 헤게모니'로 잡았다.

그는 "인간에 대한 차별과 불의가 있다면 국적이 무엇이고 당신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등은 중요하지 않다"며 "내가 어디에 있건 앞으로도 이와 같은 차별에 당당히 맞서 싸워나가겠다"라고 말했다.

cielo78@yna.co.kr